후배의 작품 훔치는 주인공, 독자들은 왜 응원할까

임지영 기자 2026. 7. 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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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조은영 작가는 많은 독자를 기대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웹툰이 망할 수밖에 없는 공식을 지켜서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저궤도인간>의 주재열은 궤도에 오르지 못해  불안감을 안고 사는 인물이다.ⓒ네이버웹툰

조은영 작가가 집 근처 유성온천역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조금 늦는다는 문자에 더우니 서두르지 말라며 역 앞 버거킹에서 ‘느긋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평일 오전,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사람은 작가 한 명이었다.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각이다. 웹툰을 연재하는 동안에는 집에 머물며 하루 18걸음 정도 걷던 그가 요즘 1부 연재를 마치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대전 그의 집, 방 한 칸이 작업실로 쓰인다. 방에 들어서자 모니터 두 대와 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만화책과 고전, 글쓰기 책까지 다양했다. 벽에 붙은 메모지에는 연재 중인 웹툰에 대한 온갖 스포일러가 담겨 있으니 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내용 대신 정갈한 글씨체만 훔쳐보았다. 주 3회 근력운동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조은영 작가는 “시작부터 부끄럽게 만드는 질문”이라며 웃었다. 답변은 “아직”이었다. 마침 휴재 기간에 근력운동과 산책을 하겠다고 독자들에게 알린 지 딱 한 달 되는 날이었다.

조은영 작가는 지난해 7월부터 네이버웹툰에서 〈저궤도인간〉을 연재하고 있다. 공식적인 작품 설명은 이렇다. ‘대학교 시간강사이자 무명작가인 서른아홉의 주재열. 궤도에 오르지 못한 삶에 불안이 커져가던 어느 날 후배의 죽음으로 주인 없는 행운을 쥐게 된다. 마침내 그도 궤도에 오를 수 있을까.’ 주재열은 작가로서도, 교수 임용을 꿈꾸는 강사로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자꾸만 고꾸라지는 인물이다.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데만 몰두하던 문예창작과 후배 이동재의 죽음 이후, 재열은 우연히 그의 유작을 발견한다. ‘한국문학상’ 정도는 노려볼 만한 작품이라는 찬사 앞에서 자신이 쓴 작품이 아니라는 걸 밝힐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평소 호감을 가졌던 출판사 편집자 장예주와 출간 작업을 함께한다.

언젠가부터 SNS에서 〈저궤도인간〉에 대한 감상평과 추천 글이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불안과 결핍,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 작품을 두고 ‘웹툰 사이에 작품이 있다’ ‘대사 한 줄 한 줄이 별 조각 같다’ ‘얼마나 높이 올라갔다가 추락할지 벌써부터 가슴이 아프다’ ‘가장 육각형에 가까운 만화’ ‘대학원생이 보면 PTSD 올 만큼 핍진성 미쳤음’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결과적으로 후배의 작품을 훔치게 된 주재열을 독자 대부분이 응원한다는 사실이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조 작가는 많은 독자를 기대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웹툰이 망할 수밖에 없는 공식을 지켜서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웹툰은 매체 특성상 호흡이 빠르고, 독자들 역시 부담 없이 즐기기 위해 찾는 경우가 많다. 〈저궤도인간〉은 비교적 진입장벽이 높다. “웹툰은 보통 1화 안에 사건의 구심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등장한다. 그런데 〈저궤도인간〉은 5~6화까지 그 과정을 끌고 갔다. 그래야 이후 이야기가 더 재밌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초반에 많은 독자를 끌어모으기는 어려울 거라고 각오했다.” 실제 독자 수에 비해 반응이 뜨거웠다. 작품을 향한 감상이 댓글로 이어졌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조은영 작가가 웹툰 연재 지각 공지문에 쓴 자신의 캐리커처. ⓒ네이버웹툰

모두 다 아는 감정, 불안감

작품의 초안은 7~8년 전에 잡았다. 중간에 다른 작품을 만나 잠시 접어두었다가 다시 마음먹고 기획과 시나리오를 쓰는 데 1년 넘게 걸렸다. 저궤도는 중력의 영향이 커서, 속도가 조금만 느려져도 지구로 추락할 수 있는 낮은 고도를 선회하는 인공위성 궤도를 뜻한다. 작품 구상 당시 조은영 작가는 가장 불안했던 과거의 자신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창작자로서의 본인이다. 만화 그리는 일을 진심으로 대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바로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혹시 내가 허튼짓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내 기준을 잘 믿고 가다가도 그런 순간엔 공포감 비슷한 걸 느낀다.”

그 불안감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모두 인생 내내 안고 살게 되는 감정이기도 했다. 이야기 너머, ‘모두 다 아는 감정’에 집중했다. 그렇게 웹툰의 1차 타깃 독자층을 넓게 잡았다. 특히 불안을 더 오래 경험해본 30~40대 독자들이 작품에 더욱 공감하리라고 예상했다. 등단을 준비하는 이들이나 교수 임용을 앞둔 당사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다니며 그들의 고민과 심리를 들여다봤다. 문예창작과 졸업생을 직접 만나 해당 분야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독자들은 왜 주재열을 응원하는 걸까? 조은영 작가가 설정한 재열은 ‘숨통이 트일 여지가 조금만 있었어도 도작을 했을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사회에서 배제되는 경험’이 켜켜이 쌓여 한순간의 선택을 만든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에 애초에 계획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신념을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왔으나 너무 힘주어 버텨온 탓에 현실의 불안에 잠식되고 결국 힘이 빠져버린 인물로 그렸다.” 독자들이 그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그가 입체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조은영 작가는 사건 자체보다 심리적 개연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독자들이 주재열이라는 인물을 멀리서 바라보거나 사건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겪는 상황을 내가 겪는 것처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조 작가가 평소 품고 있던 이야기에 대한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온갖 재밌는 일들이 세상에 많은데도 이야기가 끝까지 살아남는 이유는 이야기에서 느끼는 재미가 다른 데서 느끼는 재미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에 몰입할 때 다른 사람의 삶을 체험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재열의 감각을 공유하며 만화에 빠져들게끔 하고 싶었다.” 독자들이 정확히 자신의 의도대로 작품을 읽어내는 모습을 보며 신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궤도인간〉의 댓글 창에는 “내면을 언어화하는 데 익숙한” 독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실제로 그중에는 문학 공모전 수상자도 있다. 문예창작과 출신인 한 독자가 〈저궤도인간〉을 읽으며 PTSD가 올 정도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댓글을 남겼고 그 글이 다른 독자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다. 문장 구성과 표현력 등을 칭찬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순수하게 웹툰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남겼다가 오히려 응원을 받게 된 거다. ‘한번 다시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문학상 대상을 받게 되었다. 그분 인생 드라마의 조연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웹툰을 보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작가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 중 하나다.

〈저궤도인간〉의 또 다른 중심 인물은 출판사 편집자 장예주다. 책 만드는 일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과 열정이 대단한 인물로 어떤 작가든 그와 일하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 장예주 같은 ‘업무 텐션’을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판타지적 인물이지만 또 어딘가 있을 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기 가장 힘든 인물이기도 하다. ‘예쁜 사람’을 그리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조금만 선이 이탈해도 이미지가 달라진다. 장예주는 이 만화에서 가장 입체성이 덜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어딘가 결함이 있고 찌질한 인물들의 캐릭터성을 살리는 게 더 쉽다. 실제로 장예주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만화에 표현되었을 때 너무 납작한 캐릭터로 보일까 봐 고민이 있었다.”

“찐득한 소통은 독자와 한다”

지난 5월, 약 80회 분량 중 절반에 해당하는 1부 연재가 끝났다. 그동안 지각 공지를 여러 차례 올렸다. 거의 매주 ‘탈옥이 불가능한 무수면 고문실’에 갇힌 사람처럼 잠도 안 자고 작업을 했지만 마감일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글부터 그림까지 모든 걸 혼자 하는 조은영 작가가 시간이 부족할 때 가장 먼저 버리는 건 인물의 명암이다. 옷의 무늬나 디자인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고 단색으로 채운다. “독자들이 재밌게 보는 지금의 웹툰을 유지하기 위해 시나리오와 콘티 단계에서 더 시간을 줄일 수는 없다. 그 고민이 줄면 대사와 감정선이 뭉툭해지기 때문에 작화 시간을 더 확보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조은영 작가의 작업실. ⓒ조은영 제공

〈저궤도인간〉은 조은영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하는 두 번째 작품이다. 2021년 미주 여성 독립운동가를 다룬 웹툰 〈아임프롬조선〉을 연재했다. 많은 독자들이 조은영 작가를 두고 문예창작과 출신일 거라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그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서사 예술의 매력에 빠져 만화로 진로를 틀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쓰고 싶었고 팀 작업보다 혼자 일하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웹툰으로의 진로 수정은 표현 예술에서 서사 예술로의 변화를 의미했다. 서사 예술에서 그림은 “이야기에 잘 기능하는 도구로서 활용”된다. 조은영은 작가 어머니의 이름으로, 본명이 아니다. 조은영 아닌 본명으로 일러스트 작업과 웹툰 연재를 한 적도 있다.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었다. “회의감이 든 적도 있다. 웹툰은 일주일 안에 작업을 해내야 하는데,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인지 전혀 각이 안 보였다. 혼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진심으로 공부했는데 ‘나에게 이 시장은 불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겁을 줄이고 물리적으로 일단 달려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연재였다. 노동을 몸에 배게 하고 싶었다.” 그는 첫 번째 작품 이름을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저궤도인간〉은 조은영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일단 스스로 생각하기에 제일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화다. 잘 아는 심리,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담아냈다. “무슨 만화를 하든 〈저궤도인간〉만큼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 ‘찐득한 소통’을 경험하게 해준 작품이다. “평소에도 나를 잘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그 질과 농도가 또 다르다. 작품에 몰두하며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여러 번 재련해 끝내 남겨진 정수의 농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진짜 찐득한 소통은 독자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은영 작가 개인이라면, 재열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겪어보기 전에 재단 내릴 수 없지만 지금으로선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내가 보는 내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끌어안고 살아야 할 텐데, 내 스스로 받아줄 만한 사람이어야 안고 살아갈 수 있다.”

인터뷰를 하기 전, 조은영 작가는 본인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나이대나 성별을 비롯해 작가의 신상에 대한 정보가 가급적 노출되지 않길 바랐다. 독자들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작업을 할 때 작가에 대한 정보 때문에 독자가 어떤 해석을 하게 될지, 그것까지 고려하고 싶지 않다. 표현할 때 좀 더 자유롭고 싶다.” 대사나 내레이션으로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기보다 장면을 통해 독자들이 충분히 ‘목격’할 수 있게 하려는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조 작가는 1부를 마치며 2부 연재의 시작을 5개월 뒤로 약속했다. 연재를 재개하기 전 여섯 편 이상 미리 작업을 해놓는 것이 목표다. 어쩐지 근력운동과는 계속해서 요원할 것 같지만, 작품의 독자들은 ‘범죄의 성공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재열의 평안을 바란다’라는 작가의 말을 새기며 다음 회차를 기다리고 있다.

<저궤도인간>에서 장예주는 유능한 출판사 편집자로, 주재열과 함께 출간 작업을 한다. ⓒ네이버웹툰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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