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 강진 르포] 카리브해의 '그라운드 제로'…최악 비극에도 시민들은 뭉쳤다

송광호 2026. 7. 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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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시절부터 추진한 대단지 서민아파트, 지진 충격에 '폭삭'
12층짜리 9개동 순식간에 다 무너져…실낱 희망 놓지않는 구조대원들
지역 초토화로 시신 수습도 난항…"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존자 나왔는데"
고통 속에서도 빛난 연대정신…생존자 목소리 들리면 모든 운전자 시동 꺼
폭삭 주저앉은 미시온 비비엔다 (라과이라주<베네수엘라>=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서민 주택 미션 비비엔다가 주저앉은 모습. 2026.06.30. buff27@yna.co.kr

(라과이라주<베네수엘라>=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미시온 비비엔다'(Mision Vivienda)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부터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까지 이어진 대규모 서민 주택 보급 정책이다. 주로 산동네에 사는 저소득층 서민에게 국가가 현대식 아파트를 지어 거의 무상으로 공급하는 게 정책의 뼈대다. 해외 합작 기업을 내쫓고 국영석유회사(PDVSA)를 완전히 국유화한 차베스 전 대통령은 석유를 팔아 서민들에게 집을 나눠주었다. 다수가 산동네에서 사는 베네수엘라 주민들에게 이 정책은 당연히 인기가 높았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산동네 (카라카스=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30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산동네. 수많은 집들이 산의 좁은 구석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2026.06.30. buff27@yna.co.kr

카라카스에 가면 이런 '미시온 비비엔다' 정책에 따라 세워진 아파트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번 연쇄 지진의 가장 큰 피해를 본 라과이라주(州)에도 상당수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엘카리베 지역에 있는 미시온 비비엔다였다. 현지인들이 이제 '소나 세로'(Zona Cero)라 부르는 곳이다. 영어로 하면 '그라운드 제로'란 뜻이다. 본래 대형 참사의 중심지를 뜻하는 이 단어는 지독한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결국 다시 결속해 일어서는 인간의 숭고한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나 세로'는 이번 지진 피해를 대변하는 상징 같은 건물이다. 3개 동씩 짝을 이룬 12층짜리 아파트 건물 3개 단지(총 9개동)가 순식간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잔해의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켜켜이 쌓인 건물 잔해의 정상까지 올라가서 보니, 마치 돌 언덕 같은 느낌이었다.

1일(현지시간) 오후 그 돌무지 위에서 사람들은 구조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35도를 웃도는 무더운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좁은 돌과 돌 틈 사이로 삽을 이용해 길을 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대원들도 있었다.

대형 건물 잔해 (라과이라주<베네수엘라>=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30일(현지시간) 라과이라주 카라바예다 엘 카리베 지역에 서 있던 미션 비비엔다 건물. 지진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무너졌다. 2026.06.30. buff27@yna.co.kr

현장 구조 감독관 중 한명이 당시 상황을 연합뉴스에 설명했다.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졌어요. 거의 다 못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건물 잔해를 뒤지며 수색작업에 매진하는 구조대의 모습을 보면서 몇 명이 사망했는지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잔해들은 서로 끈적한 엿처럼 엮여 있었고, 두꺼운 파편들과 흩날리는 분진 덩어리는 구조대원들의 시야를 가리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옆에서 지켜봤는데도 목이 칼칼했다. 비좁고 험난한 그 안을 파고들어 생존자를 찾아내기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워 보였다.

그 고투의 현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사람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모두 조용히 해 주세요."

언제 무너질지 모르지만… (라과이라주<베네수엘라>=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30일(현지시간) 라과이라주에서 매몰자를 찾고 있는 구조대원. 2026.06.30 buff27@yna.co.kr

작업자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자, 주위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기계음은 멈췄고, 남미 특유의 수다스러움도 정적(靜寂)에 자리를 내줬다.

이번 강진 피해 지역의 구조 작업을 보다 보면 익숙하게 마주하는 풍경이었다. 현장 상황이 소란스럽다 → 생존자 목소리가 들린다 → 주위가 조용해진다 → 생존자가 낸 소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된다 → 다시 시끄러워진다. 이런 과정은 무한히 반복되는 것 같았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번에도 역시나 생존자를 찾진 못했다. 이미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기적은 왕왕 일어나지만, 그걸 목격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절벽에 세워진 라과이라주의 한 콘도 (라과이라주<베네수엘라>=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30일(현지시간) 지진피해를 가장 많이 본 라과이라주 산등성이에 위치한 콘도. 파란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두 동강 난 수영장. 2026.06.30. buff27@yna.co.kr

무너진 건 '소나 세로'만이 아니었다. 엘카리베 지역 전체가 거의 초토화됐다. 그곳에 서 있던 대부분의 집들이 무너졌다. 일부 아파트는 15도 정도 기울어진 채 아직 중력에 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처럼 운 좋은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할머니를 찾고 있는 엘레나 로드리게스 씨도 그런 경우였다. 로드리게스의 할머니가 사는 집에서 현재까지 나온 시신만 11구. 기자가 방문하기 직전에 이미 한 명의 시신을 흙더미 속에서 건져 올렸다고 한다. 구조대원인 엑토르 오르테가 씨는 "건물 잔해가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존자가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완파된 집 (라과이라주<베네수엘라>=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30일 라과이라주의 집들이 완파됐다. 2026.06.30. buff27@yna.co.kr

거리는 차들로 꽉 막혔다. 인근 다리가 무너지면서 모든 교통량이 이 지역 중심 도로로 몰렸다. 이로 인해 발생한 교통체증도 있었지만, 구조 작업 탓에 차가 더 막히는 측면도 있다. 구조자들이 생존자 목소리가 들린다고 판단될 때는 거리에 있는 차주들이 차와 오토바이 시동을 꺼야 한다. 급한 이들은 시동을 켜지 않은 채 무거운 오토바이를 끌고 이동했다. 운전자들은 거의 1시간 가까이 그렇게 도로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불만을 표출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애타게 바라던 생존자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구조대의 통제에 묵묵히 따랐다. 재앙의 슬픔 속에서도 연대는 빛났다. 낯선 이들에게 선뜻 음식을 건네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고, 전 재산을 잃은 지진 피해자들 역시 작은 먹을거리라도 생기면 이웃과 아낌없이 나눴다. 혼란을 틈탄 일부 약탈 범죄도 있었지만, 대다수 시민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비극을 견뎌내고 있었다. 라과이라주 현장에서 의료지원에 나선 의사 빅토리아 설 씨는 "이번 지진으로 인해 시민들 간의 연대가 더욱 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도보다 안전한 차도 (라과이라주<베네수엘라>=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30일 라과이라주의 한 인도. 한 주민이 인도 대신 차도로 걸어가고 있다. 2026.06.30.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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