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버티고, 평양은 배웠다[미·이란 전쟁이 드러낸 3개의 균열]③

조형국 기자 2026. 7. 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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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첫 북·미정상회담 당시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트루스소셜 갈무리

자칭 ‘핵보유국’ 북한이 미국·이란 종전 양해각서(MOU) 협상 과정을 예의주시했을 것이라는 데 이견이 많지 않다. 북한에 이번 전쟁은 먼 타국의 분쟁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벌어질지 모를 충돌에 대비한 실전 교범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일 경향신문이 취재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북한은 미·이란 전쟁으로 크게 두 개의 ‘전훈’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핵을 쥐어야 산다”는 확신과 “미국은 언제든 바뀐다”는 불신이다.

북한의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북한은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새 헌법에 “군사중시기풍을 세우고 전민항전준비를 빈틈없이 갖춘다”는 내용의 제61조를 신설했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이 일으킨 ‘12일 전쟁’에서 대패한 이란이 이후 사실상 전시 체제로 향후 충돌에 대비해온 것과 비슷하다. 항시적 전시 체제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안으로는 내부 통제와 결속을 꾀하고, 대외적으로는 “함부로 도발하지 말라”는 경고 신호를 내려는 의도로 읽힌다.

핵무력 지휘권과 사용 권한을 별도 기구에 위임하는 내용의 제89조 신설도 의미심장하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유고 시에도 핵 반격이 가능하다는 선언을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이는 대외 경고에 방점을 찍은 행보로 보인다. 핵 위임 절차는 이미 북한이 2022년 제정한 핵무력정책법에 대부분 반영돼 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 등 지도부 상당수가 제거되는 모습을 지켜본 북한이 “김 위원장 유고 시에도 핵은 작동한다”는 경고를 개헌을 통해 미국 등을 향해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면초가에 몰리더라도 대응한다는 인식, 이란처럼 상대해선 안 된다는 경고를 미국에 심어주려는 의도”라며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미·이란 전쟁의 전훈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란이 가진 비장의 카드인 ‘호르무즈 해협’이 북한에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반도에서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무너지고 데이터센터·인공지능(AI)·로봇산업 등 신성장 동력 산업이 멈춰 설 수 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원유 수급 차질과는 또 다른 형태와 규모의 충격이다. 북한이 기뢰를 매설하거나 해상 위협을 가하는 등 엄포만으로도 한국의 물동량에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최근 북한은 5000t급 구축함 최현호를 서해에 배치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한국·일본이 호르무즈 해협보다 더 강력하게 전 세계 경제를 볼모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이런 배경에서 최근 대남 공세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APEC 앞두고 북미 대화 재개 여부 초점···한국은?

미·이란 전쟁 이후 북핵 협상의 문턱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미·이란 전쟁에서 증명된 ‘핵 억제의 역설’은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에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불신은 여느 때보다 높다. 핵 협상 도중 공습을 벌이고, 이란의 문명 종말까지 거론하다가 협상으로 돌아서는 미국의 대이란 전략을 보면서 북한이 북미 대화 재개에 최대한 신중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미국 등으로부터 ‘비핵화’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게 목표인 데다, 미·이란 MOU 협상 과정을 보며 불신을 재확인할 가능성도 크다”며 “북미 관계가 재개되기 굉장히 어려운 구조적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면 북미 대화 재개의 실마리도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외교 성과를 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관계와 만성 경제난에 시달리는 김 위원장의 상황이 11월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맞물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MOU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은 미·이란 전쟁을 보고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활용하면 충분히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북미 대화가 시작될 여건은 더 좋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미 협상을 한국이 주도하기는커녕, 관여할 여지조차 많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중층적 위기 구조에서 ‘비핵화 프레임’에 갇힌 단선적 접근으로는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성훈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지난달 26일 보고서에서 “두 차례 전쟁을 함께 치른 동맹국 이스라엘의 국익까지 여지없이 침해하는 MOU를 체결한 것이 트럼프 행정부”라며 “우리가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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