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조사’ 막는다지만…직장 내 괴롭힘 징계는 여전히 사용자 몫

김남희·김태희 기자 2026. 7. 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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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광주 여성소방관 사망 사건에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의 ‘셀프조사’ 사실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정부가 괴롭힘 행위자로 신고된 사용자가 사건을 직접 조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간호사 ‘태움’ 사망 사건처럼 노동당국이 괴롭힘이 있었다고 인정해도 징계는 여전히 사업주 재량에 맡겨져 있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2일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신고된 경우 조사 과정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 개정안을 공개했다. 노동부는 개정안에서 조사위원회의 기피·회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사업장이 자체 조사 결과와 판단 근거를 신고인에게 충분히 설명하도록 권고했다.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사례도 대폭 보강했다.

그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사업장의 자체 조사가 우선이었다. 노동청은 조사 절차가 적절했는지 등을 사후에 감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문제는 회사 대표 등 사용자가 가해자로 지목된 경우였다. 사용자가 조사 과정에 직접 관여하거나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셀프조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광주의 한 여성소방관이 직장 내 갑질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에서도 가해자로 지목된 간부가 감찰부서장 자격으로 괴롭힘 여부 조사를 진행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국무조정실은 조사 대상자와 조사 책임자가 사실상 동일한 구조에서 감찰이 이뤄져 조사 초기부터 공정성과 독립성이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노동부는 지난 4월 괴롭힘 행위자가 사업주나 친인척인 경우 노동감독관이 직접 조사하도록 지침을 바꾼 데 이어, 이번 매뉴얼에도 조사 배제 원칙을 명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충혈된 눈으로 발언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하지만 괴롭힘이 인정된 뒤 가해자를 어떻게 징계할지는 여전히 사업주 판단에 맡겨져 있다.

최근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발생한 간호사 ‘태움’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숨진 간호사는 지난해 4월 퇴사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노동청에 신고했고, 노동청은 가해자로 지목된 3명 중 1명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해 병원에 시정을 지시했다. 그러나 병원은 해당 간호사에게 ‘훈계’ 처분만 내렸고 나머지 2명에게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후 피해자는 숨졌고, 노동부는 해당 병원에 대한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SNS에서 “태움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이라며 “제도적 보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되면 사용자가 행위자에 대한 징계나 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조치’의 수준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노동당국도 괴롭힘 해당 여부를 판단하고 시정을 요구할 뿐, 사업주가 어떤 수준의 징계를 내릴지까지 강제할 권한은 없다.

전문가들은 노동당국이 괴롭힘을 인정했는데도 가해자가 가벼운 처분을 받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신하나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노동부가 시정조치를 요구한 이후에는 사내 조사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어떤 수준의 조치가 내려지는지 사실상 관여하지 못하는 구조”라며 “괴롭힘이 인정된 사건의 후속 조치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괴롭힘학회 부회장인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태움 문화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가 만들어지는 직접적인 계기 중 하나였다”며 “당시에는 우선 법부터 만들고 부족한 부분은 나중에 보완하자는 취지였는데 그 이후 법 개정 논의가 사실상 멈춰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은 사용자가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대부분 사용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며 “매뉴얼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후속 조치와 피해자 보호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이날 간호사 태움 사망 사건과 관련해 20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편성하고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숨진 간호사 유족과 동료 등의 진술을 청취하고 휴대전화 등을 확인해 실제로 태움이 있었는지를 파악하고, 조만간 정식 수사 전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남희 기자 nami@kyunghyang.com,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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