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진동하는 사물들과의 북촌 여행

도시는 오래 머물러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떠나 있다 돌아왔을 때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래서 서울에 갈 때마다 나는 시민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이방인이 된다. 발터 베냐민이 말한 플라뇌르(산책자)처럼, 나는 도시를 소비하기보다 읽으려고 한다.
안국역에 내려 미쉐린에 실렸다는 라면집으로 향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직업과 나이가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의 국물을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 기다림조차 경험으로 만드는 도시. 좋은 음식은 혀보다 시간을 설득한다는 말을 이해하게 하는 그런 맛.
라면집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걸을 때 가장 많은 것을 보여주는 도시를 읽는 일은 하나의 미적 체험이 된다. 오래된 담벼락의 빛, 유리창에 겹쳐진 얼굴, 골목의 작은 식물들은 도시가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의 풍경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내 나의 목적지인 국제갤러리에 도착해 사진가 구본창이 기획한 9인의 그룹전 ‘진동하는 사물들’ 안에 한참을 머물렀다. 무엇보다 궁금했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이 왜 진동한다고 할까? 구본창 선생이 오래전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진은 사물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물 안에 남아 있는 시간을 만나는 일이라고 했던. 그러니까 진동은 사물 속에 축적된 ‘시간의 진동’이고, 그걸 느끼는 ‘시선의 진동’일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 사진가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발명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구본창의 고요한 시선이 말해주는 전시 같았다. 그렇게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태도가 된다고. 무엇을 찍었는가보다 무엇 앞에서 오래 멈추었는가가 중요해진다고.
그런 생각을 품고 다른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놀랍게도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두 전시는 서로를 설명하는 거울 같았다.
메이플소프는 사진이 얼마나 완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꽃은 대리석 조각처럼 단단하고, 육체는 르네상스의 조각처럼 빛을 받아낸다. 그는 카메라로 조각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형식은 완결돼 있고, 아름다움은 흔들림 없이 정교하다.
그런데 ‘진동하는 사물들’은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완벽한 사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선을 묻는다. 사물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함께 흔들리는 감각을 말한다. 클래식이 된 사진과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사진. 완성과 과정. 형식과 관계. 두 전시는 마치 인공지능(AI)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한 건물 안에서 나란히 보여주는 시간의 단면 같았다.
생각해보면 베냐민은 오래전에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기계 복제 시대에 예술은 달라질 것이라고. 그는 아우라가 사라진다고 말했지만, 오늘의 우리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AI가 무한히 이미지를 생산하는 시대에 아우라는 정말 사라지는 것일까.
오히려 반대인지도 모른다. 희소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시선이다. 희소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는 시간이다. 희소한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감각이다. 그래서 사진의 미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에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김경 오별아트 디렉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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