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디스코 시대

‘디스코(Disco) 시대’의 정점을 연 1977년 미국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는 음울한 영화다. 뉴욕 브루클린의 노동계급 청년 토니(존 트라볼타)와 친구들이 춤으로 현실을 잊은 채 방황하는 일상이 줄거리다. 인종차별,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 풍요의 시대가 저물고 닥쳐온 경기 침체의 고통이 화면을 채운다. 그룹 비지스의 사운드트랙과 토니의 화려한 춤으로 기억되는 영화 속 디스코의 속살은 실상 청년세대의 절망이었다.
흑인·히스패닉·동성애자들의 댄스음악으로 시작된 디스코는 당시 주류 음악인 록에 반발한 일종의 하위문화였다. 디스코와 나이트클럽은 해방구이자 도피처였다. 그러다 보니 클럽 안은 성적 일탈과 ‘디스코 비스킷’으로도 불린 마약의 유통공간이기도 했다. 직전 세대(히피)를 지배했던 반전 같은 저항 언어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문화현상이 디스코였다.
전설적 디스코 그룹 ‘빌리지 피플’의 리드 싱어 빅터 윌리스가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났다. 경찰관 제복을 입고 메가 히트곡 ‘YMCA’를 열창하며 디스코 붐을 이끌던 그를 기억한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 중고등학교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면 카세트에서 보니엠·비지스의 노래와 함께 흘러나오던 ‘YMCA’의 흥겨운 리듬을 추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당초 ‘빌리지 피플’은 1976년 윌리스가 음반제작자 자크 모랄리와 함께 뉴욕 그리니치빌리지 나이트클럽의 개성적 인간군상을 보며 만든 밴드였다. ‘YMCA’가 “Young man, there’s no need to feel down(젊은이여, 낙담할 필요는 없네)”로 시작하는 게 우연이 아니다. 낙담하던 디스코 세대를 향해 말을 거는 노래였다.
윌리스의 죽음에 ‘디스코 세대’를 떠올리는 건 시대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 반세기 지난 지금 청년들이 겪는 상실감이 당시와 많이 닮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과 그 끝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무력감, 그래서 연애·결혼 같은 생의 중요한 것조차 포기해야 하는 절망감이 그러하다. 음악이 흐르던 토니의 도피처는 이제 SNS·쇼트폼 같은 화면 속 현실로 바뀌었다. 반세기 전 토니들이 춤이라는 몸의 언어로라도 서로 기댔다면 지금의 그들은 유사 현실 속으로 은둔만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크다.
김광호 논설위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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