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먹다 엄마를 만나듯, 그렇게 첫 문장을 만났다

한겨레21 2026. 7. 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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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글쓰기]고명재의 시 ‘화채\'에서 기후위기까지… 익숙한 감각이 데려다주는 낯선 이야기들
신비복숭아. 게티이미지뱅크

신비복숭아를 샀습니다. 초여름이 제철이래요. 짙은 붉은색 사이사이 노란빛이 번진 껍질은 매끈하니 천도를 닮았습니다. 천도의 신맛이 떠올라 턱밑에 침이 고이다가 한입 베어 물면 백도만큼 달콤한 과즙이 손을 타고 팔목까지 흘러내립니다. 복숭아 향이 부엌을 물들입니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과육을 씹으며 신비복숭아는 어떤 신비 속에서 탄생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신비(神祕), 이름 그대로라면 쉽게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를 품고 있는 상태겠지요. 복숭아를 먹으며 그 신비를 찾고 싶었습니다. 결국 제가 발견한 건 엄마였어요. 백도든 천도든 자두든 신비복숭아든 자식이 먹기 좋게 껍질을 벗기고 씨를 발라내 접시에 내어주던 엄마. 너무 익숙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사랑입니다. 신비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몰라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거대한 사랑을 받아먹으며 삶의 신비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음식은 식탁 위에 사람을 앉힌다

이렇게 음식은 종종 사람을 데려옵니다. 복숭아를 먹다가 엄마를 떠올리고, 미역국을 먹다가 생일 아침을 떠올리고, 김치찌개를 먹다가 하루치 고단함을 함께 털어내던 동료를 떠올립니다.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앞에 누군가를 앉혀놓습니다. 사소하게 보이는 음식은 많은 것을 품고 있습니다. 사람과 관계, 기억과 계절, 사회, 시대, 역사, 문명까지도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식이 좋은 글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고명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난다 펴냄, 2026)을 읽었습니다. 제철 시집이에요. 사람을 향한 마음을 발견하게 하는 시집입니다. ‘뭇국’ ‘표고’ ‘다슬기’ ‘호떡’ ‘솥밥’ ‘국화빵’ ‘호두’ 등 제목만 봐도 군침이 도는 시들이 가득합니다. 시는 사철 메뉴이지만, ‘화채’를 읽고는 ‘제철’이란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름이 오면 그대는 항상 오미자물을 우려서 한 사흘은 냉장고에 차게 두었다 크고 실한 수박을 사고 체리를 씻고 착실하게 속을 다 파내는 것이다 수박은 일단 귀부터 시원해지지 숟가락 끝에서 눈 밟는 소리가 가벼이 들리지 우리는 수박을 파내며 설원 한가운데에 있다가 참외 배 능금 자두 설탕을 넣고 아카시아꿀을 휘휘 세 바퀴 둘렀다 먹기 전에 그대는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아가야, 화채는 원래 꽃 화(花)를 뜻해 그래서 내가 준비했지 비닐 속에는 그대가 산천에서 뜯어온 꽃잎이 있었다 그대는 화채 위에 꽃을 뿌리며 우아(優雅)라는 개념을 직렬로 주었고 우리는 머리를 아주 가까이 맞댄 채 얼음이 가득한 오미자물을 잔뜩 삼켰다 그때 내 어금니에는 벨벳 같은 게 부드럽게 씹히면서 짓이겨졌는데 그게 장미 씹는 순간임을 단번에 알았다 그때 나는 이 시를 이미 만나고 있었다

―고명재, ‘화채’

화채를 만들기 위해 사흘 전부터 오미자물을 준비하다니요. 정말 ‘착실한’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박을 파내며 설원을 떠올리는 감각에 감탄하다가도,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정성을 만나면 함께 애틋해지고 맙니다. 화채 위에 꽃잎을 띄우는 장면에서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 마음을 자연스럽게 건네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요. 덕분에 독자는 여름의 맛을 넘어 사랑을 배우고, 마침내 ‘시를 만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또 각자가 가진 화채에 대한 기억을 건져 올리겠지요. 음식을 소재로 삼아서도 좋지만, 음식 앞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더 좋습니다.

커피젤리를 처음 먹어봤습니다. 아래에는 쌉싸름한 커피젤리, 위에는 아이스크림과 휘핑크림이 올라가 있습니다. 왜 이제야 먹어봤을까요. 이 음식은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일본 삿포로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늘었습니다. 2025년 10월 일본 삿포로 ‘마크 커피 클럽’(Mark Coffee Club). 박은지 제공

무심히 삼킨 계절 뒤 존재들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먼 곳까지 우리를 데려갑니다. 화채 한 그릇을 다시 떠올려볼까요. 오미자, 수박, 참외, 자두, 아카시아꿀, 그리고 산천에서 뜯어온 꽃잎까지. 마트에서 장을 보면 금세 모을 수 있는 재료입니다. 새벽배송으로 문 앞에서 받아볼 수도 있지요. 너무 쉽게 손에 들어오다보니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잊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저절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수박을 심고 거둔 사람, 아카시아꽃을 오간 꿀벌, 꽃잎을 뜯으러 산에 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그릇의 화채 안에는 여러 존재의 노동과 시간, 그리고 계절이 담겨 있습니다.

신비복숭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숭아를 먹다가 엄마를 떠올리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하지만 복숭아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어떤 땅에서 자랐는지, 누가 수확했는지, 어떤 길을 건너왔는지 묻게 됩니다. 사적인 기억에서 출발한 생각은 노동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향해 뻗어나갑니다.

해마다 여름은 더 길어지고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과일의 출하 시기가 변하고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기후가 달라지면서 제철도 허둥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가 기억하는 음식의 맛도 달라질 것입니다. 엄마가 여름마다 깎아주던 복숭아의 맛을 다음 세대도 같은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두려워지기까지 합니다. 음식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닿아 있습니다.

첫 문장이 막막할 땐, 복숭아 한 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음식 이야기를 많이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먹방과 요리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매일 새로운 맛집과 누군가의 밥상이 올라옵니다. 음식을 찍고, 소개하고, 평가하는 말이 끊이지 않습니다. 칼로리와 당을 계산하고, 가격도 꼼꼼하게 따집니다. 그런데 그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재료는 누가 길렀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묻는 이야기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는 데는 익숙하지만 들여다보는 데는 서툰 것 같습니다.

글쓰기도 비슷합니다. 좋은 글은 대상을 오래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것들, 당연해서 질문하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 말입니다. 처음부터 기후위기나 노동, 돌봄 같은 주제를 붙잡으려 하면 막막해지지요. 거대하고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첫 문장 앞에서 망설이게 되지요.

그럴 때는 복숭아 한 알이면 충분합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아주 익숙한 것. 복숭아를 먹다가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를 떠올리다가 돌봄을 생각하고, 돌봄을 생각하다가 그 돌봄을 가능하게 한 땅과 날씨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요. 아직 독자는 기후위기보다 복숭아 맛을 먼저 기억합니다. 익숙한 감각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낯선 곳까지 데려갈 때 공감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매일 먹는 것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는 것. 냉장고에 남은 반찬, 편의점 삼각김밥, 제철 과일, 제철 생선, 철과는 관계없이 해마다 어느 때면 생각나는 음식들. 그 안을 자꾸 기웃거리다보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신비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박은지 시인·‘여름 상설 공연’ 저자

독자 글

지난번에는 글에 이름을 불러와보자는 과제를 드렸습니다. 실명이든, 지어낸 이름이든, 사람 이름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지요. 보내주신 글을 읽으며 이야기를 여는 문으로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이 반가웠습니다.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말했듯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대상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번에 보내주신 글들도 그랬습니다. 이름을 통해 세계의 해상도를 높여주신 네 분께 감사드립니다.

성호님은 겨울이와 여름이를 데려왔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추상적인 갈등은 사라지고 두 아이의 얼굴과 표정이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이름은 한 사람을 끝까지 이해해보려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죽일 놈은 없다’는 제목도 그래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종승님의 글에는 깁스를 한 채 후배의 도발을 견뎌야 했던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꽃무늬 고무신을 신고 놀림을 받았던 후배가 등장합니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요. 마지막에 두 사람이 서로의 기억을 통해 연결되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부끄러운 기억이 상처로만 남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는 힘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숙연님의 시는 이번 과제에서 가장 정면으로 이름을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큰지영’ ‘작은지영’ ‘뚱아영’ ‘빼아영’을 읽으며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름이 어떻게 한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지, 이름이야말로 부모의 사랑과 소망이 담긴 선물이라는 생각도 전해졌고요. ‘이름값 한다’라는 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였습니다.

정선님은 사람 이름 대신 새의 이름을 불러왔습니다. 뻐꾸기와 소쩍새의 이름을 따라가다보면 이름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고, 또 이야기가 이름을 풍성하게 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름 하나가 불러온 풍경과 기억을 함께 만나보시지요.

바야흐로 지금은 나의 호시절

요즘 날마다 뻐꾸기의 노래를 듣는다. 산 깊은 곳 먼 데서 노래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고 제법 크게 가까이에서 들려올 때도 있다.

산자락을 깎아 들어선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나에게 사계절의 변화는 산이 갖가지로 변하는 모습에서 감지된다.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초봄, 짙푸른 초록이 넘실대는 여름, 가을의 수채화 같은 단풍과 진눈깨비에 휩싸인 맨몸의 나뭇가지들의 모습…. 그리고 이맘때면 펼쳐지는 갖가지 새들의 노래의 향연. 내가 살고 있는 동(棟)이 산과 맞닿아 있는 제일 위쪽에 있어서 더욱 생생하게 잘 느낄 수가 있다.

뻐꾸욱 뻐꾸욱 울림과 여운이 있게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불러댄다. 아마도 자신의 짝을 찾아 목청껏 부르는 것이리라. 뻐꾸기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그 새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지금 들려오는 저 소리의 주인공이 뻐꾸기라는 건 누구나 알 수가 있다. 산비둘기가 뻐꾸기의 소리로 울 리가 없고, 뻐꾹뻐꾹 우는 건 뻐꾸기밖에 없으니까.

그런가 하면 밤이 되면 소쩍새가 구슬프게 운다. 소쩍소쩍 하는 그 새의 울음소리는 어찌나 애달픈지 저리 울다 목청이 어찌 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이다.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우는 게 저런 게 아닐까. 소쩍새는 올빼밋과의 새여서 야행성이라 밤에 우는 거라고 하는데 저 새에게 그 울음소리에 걸맞은 소쩍새라는 이름이 붙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소쩍새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옛날 며느리를 미워한 어느 시어머니가 작은 솥을 주며 밥을 짓게 하여 식구들을 먹이고 자신은 먹을 밥이 없어 굶주리다 죽은 며느리가 소쩍새로 환생하여 소쩍소쩍(솥이 적다(작다)) 운다는 이야기. 이 또한 소쩍새의 독특한 울음소리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새 이름은 이야기를 부른다!

이정선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이번 주제는 ‘음식’입니다. 제철 과일도 좋고, 김치찌개 한 그릇도 좋고, 편의점 삼각김밥도 좋습니다. 음식 앞에 앉아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 음식은 누구를 데려오는지, 어떤 계절을 데려오는지, 어떤 장면을 데려오는지요. 맛집 소개는 사양합니다. 대신 그 음식이 품고 있는 사람과 기억, 관계를 만나고 싶습니다. 음식을 따라가다보면 뜻밖의 곳에 닿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나 돌봄일 수도 있고, 노동이나 기후일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시든 에세이든 형식은 자유입니다. 여러분의 식탁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주제: 음식

분량: 에세이는 1천 자 내외, 시는 분량 제한 없음

마감: 2026년 7월12일

보낼 곳: ha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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