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마른 설계사들, 재건축으로 몰렸다…송파·대치 ‘문전성시’

오유진 기자 2026. 7. 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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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경기 침체에 민간·공공 일감 감소…정비사업으로 수주 쏠림
강남·목동 등 사업성 높은 단지에 경쟁 집중…설계시장도 양극화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설계사무소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 서울 송파구 재건축 3대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올림픽훼밀리타운은 최근 재건축 설계사 선정 입찰에 무려 18개 업체가 참여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았다. 지난달 30일 주민총회에서 설계사 선정 투표를 진행했지만, 참여 업체가 너무 많아 과반 득표자를 가릴 수 없었다. 자치구인 송파구는 상위 4개 업체를 대상으로 재투표를 진행할 것을 권고했지만,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최다 득표 2개 업체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시행할 계획이다. 설계사가 한 사업장에 대거 몰리면서 오히려 업체를 선정하지 못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 이달 18일 주민총회를 앞둔 서울 강남구 대치미도아파트 재건축사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설계사 선정 입찰에 총 11개 업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약 10년 전 대치동 대표 재건축 단지인 은마아파트 설계 공모 당시 3개 업체만 참여했던 것과 비교하면 경쟁이 크게 치열해졌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와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등 대형 설계업체들도 일제히 입찰에 참여하며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정비사업 수주 경쟁이 건설사를 넘어 설계사무소까지 번지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민간 건축시장과 공공 발주가 동시에 얼어붙자, 설계사무소들이 안정적인 일감을 찾아 재건축 사업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수주액은 221조1268억원으로 2022년(248조3552억원)보다 11% 감소했다. 한때는 사업 기간이 길고 변수도 많아 기피했던 도시정비사업이 이제는 건축사무소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시장으로 떠올랐다.

설계사들이 재건축 시장으로 몰리는 것은 단순히 일감이 줄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비사업 속도가 빨라지면서 수주 이후 장기간 발이 묶일 수 있다는 부담이 크게 줄었고, 설계비 규모도 과거보다 커지면서 수익성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들어 서울 주요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재건축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목동에서는 14개 단지 가운데 상당수 사업장에서 3~5개 업체가 경쟁하거나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에 나서는 사례가 잇따랐다.

특히 사업성이 높은 대단지 재건축은 설계사들에게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재건축 시장에서는 외관 디자인과 조경, 커뮤니티 시설, 대형 문주 등 단지의 상품성을 높이는 특화 설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설계비도 과거보다 크게 늘어나는 추세여서다. 1만2000여 가구 규모의 둔촌주공 재건축은 최초 설계 계약 당시 설계비가 약 37억원에 그쳤으나, 올해 발주된 목동7단지 재건축 사업의 설계비는 약 18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단지 규모가 커진 데다, 고급화 설계 경쟁까지 본격화되면서 설계사들의 수익성도 과거보다 크게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이런 호황도 모든 설계업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설계비는 총공사비에 비례하는 만큼 공사 규모가 작거나 사업성이 낮은 정비사업장은 여전히 외면받고 있다. 결국 대형 정비사업에는 설계사가 몰리고, 중소 규모 사업장은 설계사조차 구하기 어려운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빅4 설계업체들까지 도시정비사업 수주에 혈안이라는 건 그만큼 건축시장 일감이 줄었다는 방증"이라며 "조합 입장에서는 다양한 제안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업계 전반으로 보면 과열 경쟁과 과도한 특화 설계 제안이 결국 공사비 상승이나 사업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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