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선주민 ‘해조류 공동체’는 왜 ‘다시마 사촌’을 양식할까
뉴욕 시네콕 선주민의 ‘바다숲 주권’

2024년 10월 말 가을 하늘이 높던 어느 날, 나는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동쪽 끝에 있는 ‘켈프’(Kelp, 다시마목·갈조류에 속하는 대형 해조류) 종묘장에 들어섰다. 이곳은 뉴욕 동부 햄프턴 지역의 해조류 양식 공동체인 ‘시네콕 켈프 파머스’(Shinnecock Kelp Farmers)가 운영하는 곳이다. 공동체는 시네콕 선주민 여성 5명이 이끌고 있다. 뉴욕주 롱아일랜드는 1640년 영국 정착민이 동부에서 가장 이른 시기 자리 잡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원래는 시네콕족 등 13개의 선주민 공동체가 거주하던 곳이다.
종묘장 안 기다란 수조에는 50m 새끼줄이 감긴 원통형 파이프 마흔여 개가 들어 있었다. 새끼줄에는 현미경을 비춰야 보일 정도로 작은 포자가 붙어 있다고 한다. 종자를 기르려면, 가을 두 달 동안 수조의 온도는 차갑게, 여과된 바닷물은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별도의 영양분도 공급한다. 그래야 가느다란 ‘켈프 아기들’이 바다로 옮겨 심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난다.
“시네콕만을 켈프로 뺑뺑 둘러싸서 보호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켈프 농부 가운데 한 명인 다니엘 홉슨 베건이 말했다. 그의 이런 바람은 해수면 상승과 초대형 폭풍 같은 생태적 위협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반도를 켈프로 둘러싸고 싶어요. 그러면 바닷속 생명이 다시 살아나고,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공동체의 또 다른 일원인 도나 콜린-스미스도 다큐멘터리 영화 ‘해조류 이야기’(Seaweed Stories, 2024년)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니엘과 도나가 기르는 슈거켈프(Sugar Kelp)는 한국 미역·다시마의 사촌격이다. 롱아일랜드를 포함한 대서양에서 자라는 여러 해조류 가운데 하나인데, 이 지역 선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여러 해조류를 음식으로 먹고, 약으로 쓰고, 집 단열재로, 밭의 비료로 사용해왔다.
해마다 봄이 되면 60㎝ 이상 자라나는 슈거켈프는 연한 올리브색 잎을 뽐내며 물속에서 빛난다. 나는 올해 4월과 5월 자원봉사자로 수확에 참여했다. 수확 첫날인 5월17일 수온이 20도까지 올라와, 작업복을 입고 들어가니 시원한 봄 바닷물이 나를 껴안아 주는 것 같았다. 양식장에는 50m 길이 새끼줄 22개가 늘어서 있었다. 큰 녀석들은 벌써 1m가량으로 자랐다. 열댓 명이 함께 하자, 절반을 수확하는데 3시간이 채 안 걸렸다. 미역이나 다시마보다 얇은 슈거켈프는 봄 햇볕에 말리면 반나절 만에 바짝 마른다. 이렇게 말린 후 잘게 부숴 천연비료로 지역 내에서 판매된다.
시네콕 해조류 공동체가 기르는 것은 단순히 켈프만이 아니다. 그들이 돌보는 것은 바닷물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실천되는 주권이다. 시네콕만 인근 바닷물은 과도한 개발과 화학 비료 유출로 인해 질소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지 오래다. 해조류는 자라면서 수중 질소와 탄소를 흡수해 무너진 에너지와 생명의 순환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과연 해조류가 생태 복귀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들이 해조 양식을 시작한 지는 5년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양식장 주변에 가리비와 새들이 돌아오는 것이 관찰됐다. 가리비는 1990년대 개체 수가 이전 대비 10% 수준으로 떨어진 뒤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해조를 기른다는 것은 바닷물을 돌보는 일이고, 결국 물속 생명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해조는 이 선주민 공동체에서 2차 세계대전 후부터 거의 사라진 자급자족의 삶을 다시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롱아일랜드의 개발 역사는 길다. 지금은 부유한 뉴요커들의 몇백억짜리 호화로운 여름 별장이 늘어선 햄프턴으로 잘 알려졌지만, 원래 이 땅은 시네콕 사람들의 땅이었다.
1600년대 초 유럽 정착민들이 처음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시네콕 사람들은 이주민들에게 8제곱마일(약 20㎢)의 땅을 내줘 정착할 수 있게 했다. 그 땅이 지금의 ‘사우스햄프턴 타운’이 됐다. 그러나 백인 이주민들은 정착 초기에 맺은 여러 조약을 무시하며 점점 더 많은 땅을 차지해갔다.
해조와 해초류를 둘러싼 분쟁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세기 중반 정착민들이 시네콕 사람들이 모아둔 해초 더미를 허락 없이 가져다 비료로 사용한 사건이다. 분쟁은 시네콕 사람들의 땅·바닷가 사용권이 인정되면서 마무리됐다. 이 ‘해조 분쟁 사건’은 훗날 시네콕 부족이 연방 정부로부터 그들의 주권을 공식 인정받는데 중요한 역사적 증거가 된다.
미국은 ‘연방 인정’(federal recognition) 제도를 통해 특정 선주민 집단을 ‘부족’으로 인정해, 정부 대 정부 관계로 자치권을 부여한다. 부족 주권이 인정받는 동시에 연방 서비스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이 제도의 기준 자체가 정착식민주의 국가가 규정한 혈통과 공동체 개념에 따라 선주민의 존재를 증명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이다. 연방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방대한 역사 자료와 문서를 제출해야 하고, 길고 값비싼 법적 싸움을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롱아일랜드의 여러 선주민 부족 가운데 연방으로 인정된 부족은 시네콕이 유일하다. 그것도 2010년에야 이뤄진 일이다. 현재 약 1500명이 사는 시네콕 마을은 약 4k㎡ 규모의 보호구역(reservation)에서 공동주권을 영위하고 있다.
미 동부 해안에 의존해 살아온 선주민 공동체들에, 유럽인 정착 이전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보존하거나 되짚어 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 지금도 살고는 있지만, 이전에 누리던 삶터에 비하면 이제 그들에게 남은 땅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땅의 주권만이 아닌, 뭍에 대한 접근권, 바다, 그리고 바닷물을 돌보는 일을 아울러 생각하면 어떠한가. 이 질문을 따라가 보니 뜻밖에도 해조류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네콕 켈프 파머스의 또 다른 창립 멤버인 베키 제니아에게 주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관할권, 연방 인정, 토지권리 같은 법적인 이야기를 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베키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주권은 양날의 검일 수 있어요.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억압적인 것이 될 수도 있죠.”
이들이 겨울 바다에 들어가 해조양식 밧줄을 돌볼 때, 그들은 “주권을 함께 가지고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것은 소유를 주장하는 선언이 아니라, 물에 들어갈 때마다 실천되는 어떤 것이다. 19세기 해조 분쟁 사건 이후, 그리고 최근의 연방 인정 이후, 바닷물과 그 안에 사는 생명을 돌볼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능력은 시네콕 사람들에게 분명 주권의 문제다.
다니엘에게 주권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조상 대대로 이어진 바다에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자기 몫 이상을 가져가지 않을 때만 가능한 권리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 단어를 이렇게 표현했다. “호혜성.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일곱 세대를 생각하는 것.”
도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주권은 책임에서 시작돼요. 사용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수도 있죠. 또한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어린 시절 항상 보호구역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그는 친척들을 방문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진짜 집에 왔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에게 주권은 축적하는 게 아니었다. 자격을 주장하지 않아도 되는 소속감에 가까웠다. 이처럼 땅 또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었다. “아무도 나를 여기서 쫓아낼 수 없어요.”
시네콕 선주민 활동가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컨션스 포인트’(Conscience Point, 2019년)에서 지역 역사학자 코리 돌곤은 이들의 투쟁을 토지 소유권 이전 요구가 아니라 “그들의 역사 정신으로 땅을 되돌려 놓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시네콕만에서 그 ‘정신’은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실천처럼 느껴진다. 그들이 켈프를 기르는 방식, 과도하게 자연을 착취하지 않는 자세, 아이들에게 가져간 만큼 되돌려주라고 가르침으로써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해조 자체도 이미 그러한 호혜성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해조는 롱아일랜드의 바닷물이 감당하지 못하는 유출된 비료와 과도한 질소를 흡수하고, 그것을 성장으로 되돌려준다. 주권은 추출과 착취가 아니라 순환이라고 해조류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닷물과 그 안의 생명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존중하는 순환, 그리고 돌보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순환 말이다.
이처럼 롱아일랜드에서 내가 본 주권은 국경선이나 토지 소유 증서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닷물 한가운데 들어가, 바다가 다시 자신을 스스로 길러낼 수 있도록 얼마를 가져가고 얼마를 남길 것인지를 아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솔 미국 뉴욕 스토니브룩대 교수(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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