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제품 만들기 전 실패해보는 곳"… 외국인 몰려드는 중국 창업 실험실
부품·엔지니어·공장 연결 '원스톱' 창업 요람
"창업에 중요한 건 실패 경험과 제조 인프라"
선전의 혁신 비결… "오류 나면 다시 하면 돼"
편집자주
'짝퉁'과 '탈취'만으로 중국의 첨단기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인공지능(AI)·로봇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국 혁신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한국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짚어봤습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혁신도시인 광둥성 선전시 화창베이의 한 건물. 전자부품 상가가 빽빽한 거리 한복판에 외국인 창업자들이 모이는 작은 작업실이 보였다. 하드웨어 창업 인큐베이터 '트러블메이커'가 조성한 공간이다. 5월 7일 방문한 이곳에선 LED 디스플레이를 만들고 로봇을 개발하는 회원들이 보였다. 뇌파로 컴퓨터를 제어하는 장치를 개발한다는 회원도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인 트러블메이커 창업자 헹크 베르너는 이곳을 "외국인 창업자들의 인큐베이터이자 상공회의소, 영사관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창업자가 선전의 제조 생태계에 처음 진입할 때 어디서 부품을 사야 하는지, 어떤 엔지니어에게 설계를 맡겨야 하는지, 어느 공장과 거래를 해야 하는지 막막할 수 있다. 계약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믿을 만한 프리랜서를 어떻게 찾을지도 걱정거리다. 트러블메이커는 이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중간 플랫폼 역할을 한다. 베르너는 "필요한 자원을 소개하지만 수수료는 받지 않고 회원비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베르너가 선전에 끌린 것은 이 도시의 '미친 속도' 때문이었다. 그는 2009년 LED 디스플레이 회사 직원으로 처음 중국 땅을 밟았다. 이듬해 두 달간 공장에 머물렀고, 매주 미국·유럽·중동·남미 등 세계 각지 고객이 공장을 찾아 대량 주문을 넣는 장면을 봤다. 그는 "두 달 동안 선전의 모든 것에 빠져들자 이주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는 화창베이에 트러블메이커 사무실을 차리고 외국인 창업자와 선전의 제조업 생태계를 연결하고 있다.

현재 트러블메이커 회원은 20여 명. 장기 회원도 있고, 일주일짜리 프로젝트를 위해 머무는 이들도 있다. 이곳의 목적은 처음부터 완벽한 완제품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베르너는 “중국의 제조업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문제는 부품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했다. 먼저 시제품을 만들어 실패하고, 그 실수에서 배우는 것이 이곳의 방식이라는 얘기다.
트러블메이커에서 만난 미국인 창업자 재커리 해니도 같은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그는 예술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운동 관련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 해니는 "여기에는 작업 공간이 있고, 필요한 도구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품을 만들 때 레이저 커팅이나 3D 프린팅 장비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와서 손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공장 가기 전 단계'였다. 해니는 "중국에서는 생산 단계에 들어가면 매우 편리하지만, 디자인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공장을 찾는 것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트러블메이커에서 시제품과 목업(모형)을 만들며 설계를 다듬은 뒤 공장으로 넘어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타오바오와 핀둬둬 같은 전자상거래 플랫폼 덕분에 작은 부품도 며칠 만에 구할 수 있다. 해니는 "오류가 있어도 비용 부담이 크지 않고, 다시 재료를 사서 시도하면 된다"고 말했다.

트러블메이커는 거대한 국가 주도 창업단지는 아니다. 외국인 창업자들이 화창베이의 부품 시장, 프리랜서 엔지니어, 공장 네트워크에 접속해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바꾸는 실험실이다. 선전의 강점이 큰 공장만이 아니라, 실패와 수정의 비용을 낮춰주는 이런 작은 연결망에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지척의 실리콘밸리를 두고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선전으로 왔다는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한 미국인 창업자에게 선전행의 이유를 물었다. "소프트웨어 창업의 성지가 실리콘밸리라면, 하드웨어 창업 도시는 선전이에요. 모든 자원이 연결돼 있고 필요한 것을 빠르게 구할 수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제품으로 쉽게 만들어낼 수 있죠. 한번 자리를 잡으면 떠나기가 쉽지 않아요."

2026 차이나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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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 중국 과학굴기 해부: 인재 도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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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2> 중국 과학굴기 해부: 우리가 외면한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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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3> 중국 과학굴기 해부: 중국의 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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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4> 중국 과학굴기 해부: 마피아와 카피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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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5> 중국 과학굴기 해부: 기술 포비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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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6> 중국 과학굴기 해부: 공산당의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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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7> 중국 과학굴기 해부: 어두운 한국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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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한국일보 '차이나 리포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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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8> 중국 과학굴기 해부: 활기찬 중국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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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9> 중국 과학굴기 해부: 실패할 자유
선전= 이혜미 특파원 herstory@hankookilbo.com
선전=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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