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은 거래로, 관세는 무기로…우리가 알던 미국은 없다 [Deep Spot]
1945년 2차세계대전後 세계질서 설계
2026년 트럼프 주도 포식적 패권국化
동맹·무역·달러 등 전방위 美우선주의
NATO 동맹국에도 안보대가 비용 청구
자유무역 수호자서 보호무역주의 돌변
金, 美국채 제쳐 달러중심 질서도 흔들
“한국·EU·印·캐나다 등 새 협력 모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2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메리카 250(America 250)’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02/ned/20260702112824831ekyx.jpg)

미국은 한때 세계질서를 설계하는 나라였다. 달러를 공급했고, 바닷길을 지켰으며, 동맹을 보호했다. 자유무역이라는 규칙을 만들고 국제기구를 세웠다. 그렇게 미국은 세계를 이끄는 대가로 세계 최대 경제력과 영향력을 얻었다. 그러나 오는 7월 4일 독립 250주년을 앞둔 미국은 과거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미국이 다른 나라를 위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
제 47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은 동맹국에도 관세를 부과하고, 안보 비용을 요구하며, 달러의 영향력마저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1945년 이후 세계질서를 재편했던 미국이 2026년에는 미국 자신을 먼저 챙기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미국은 독립선언 채택 250주년을 맞는다. 기념행사는 단순히 건국의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가 아니다. 1776년 자유를 외쳤던 미국이 1945년 세계질서를 만들고 2026년 국익을 앞세우는 국가로 변화한 과정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고 있다.

고립에서 패권으로…세계질서를 만든 미국
1776년 독립한 미국은 처음부터 세계 패권국이 아니었다. 건국 초기 미국은 유럽 강대국들의 분쟁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고립주의를 외교 원칙으로 삼았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고별연설에서 유럽 국가들과의 영구적 동맹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환점은 1865년 남북전쟁이었다. 내전 이후 연방 체제가 확립되면서 미국은 하나의 통합 국가로 거듭났다. 이후 철도와 제조업이 급성장하며 산업국가로 변모했고, 19세기 말에는 세계 최대 경제권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은 미국이 처음으로 세계 정치의 중심에 발을 들여놓은 사건이었다. 미국은 전쟁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국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럽에서 행진하는 미군. 전쟁 승리 이후 미국은 국제질서의 핵심 강국으로 부상했다. [게티이미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02/ned/20260702112825695qkuh.png)
특히 1945년은 미국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의 분기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 이후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설립하고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해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1949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하며 동맹 중심 안보 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미국이 제공한 것은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었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서 경제성장을 이뤘고, 기업들은 달러 중심 금융체제 속에서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미국은 세계 공공재를 제공하는 대가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확보했다.
냉전이 끝난 1991년 이후 미국은 사실상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던 시기다. 당시 미국의 국익과 세계질서는 대체로 같은 방향을 향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나서며 막대한 전쟁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사진은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붕괴 당시 모습. [AP연합]](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02/ned/20260702112825957bhtc.png)
동맹은 거래가 되고 자유무역은 관세가 됐다
하지만 미국이 만든 질서가 영원할 것 같던 시절도 오래가지 않았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은 막대한 비용과 피로감만 남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내부의 불만을 폭발시켰다. “우리가 만든 세계화가 결국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결정타는 중국의 부상이었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편입시킨 중국이 미국의 최대 전략 경쟁국으로 성장하면서 기존 국제질서에 대한 회의론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정서를 정치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구현한 인물이다. 그는 자유무역은 미국 제조업을 약화시켰고, 동맹은 미국 안보에 무임승차했으며, 세계화는 미국 중산층의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국제질서 유지보다 거래 조건 재설정에 집중한다. 유럽에는 국방비 증액을 압박하고, 아시아 동맹국들에게는 더 많은 안보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동맹 관계에서도 “얼마를 부담할 것인가”가 핵심 의제가 됐다.
무역 분야 변화는 더욱 상징적이다. 1945년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 질서의 최대 수혜자이자 수호자였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관세를 활용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일본, 캐나다 등 전통적 우방국에도 관세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때 미국은 관세 장벽을 낮추라고 요구했지만 이제는 관세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화를 만든 나라에서 세계화를 재협상하는 나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 약 3000억달러를 동결했고, 이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준비자산의 지정학적 위험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러시아 중앙은행 본부. [AP]](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02/ned/20260702112826279ttgm.png)
공공재에서 지정학적 무기가 된 달러
달러를 둘러싼 변화도 같은 흐름 속에 있다. 1945년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달러는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공공재 역할을 해왔다. 미국 국채는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았고 각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액 상당 부분을 달러 자산으로 보유했다. 국제 무역과 원자재 거래, 글로벌 금융시스템 역시 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달러 패권의 핵심은 단순히 미국 경제 규모가 아니었다. 미국 국채시장의 압도적인 유동성과 법치, 군사력, 동맹 체제가 결합되면서 달러는 사실상 세계 경제의 운영체제가 됐다.
그러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을 동결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세계 각국은 달러가 단순한 국제통화가 아니라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지정학적 수단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달러의 영향력마저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동 전쟁 과정에서는 이란 동결자산 반환 문제가 협상 카드로 활용됐고, 관세와 안보 협상 과정에서도 금융 영향력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공공재였던 달러가 점점 미국 국익을 위한 전략자산의 성격을 띠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유럽중앙은행(ECB) 보고서에서도 드러난다. ECB는 “금이 세계 중앙은행 준비자산에서 미국 국채를 제치고 2위 자산으로 올라섰다”고 분석했다. 중앙은행들이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비해 금 보유를 늘리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각국 중앙은행은 최근 3년 연속 연간 1000톤 안팎의 금을 매입하며 과거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의 금 매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러시아 자산 동결 이후 신흥국 중앙은행들을 중심으로 준비자산 다변화 움직임이 빨라졌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다. 그러나 러시아 외환보유액 동결과 반복되는 금융제재, 미국 우선주의 강화는 각국 중앙은행들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국이 만든 질서 안에서 움직일 수는 있지만, 그 질서에 모든 것을 의존할 수는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확대 역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250주년, 단순 기념행사 아닌 ‘미국 정체성 전쟁’
이 같은 논쟁은 250주년 기념행사 준비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원래 미국의 독립 250주년 기념사업은 2016년 연방 의회가 설립한 초당적 기구 ‘아메리카250’이 주도해왔다. 이들의 기획은 미국의 다양성, 이민자의 역사, 민주주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서사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은 별도 조직인 ‘프리덤250’을 출범시키며 기념행사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외신들은 이를 단순한 행사 주관권 다툼이 아닌 ‘미국이란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를 둘러싼 역사적 서사 경쟁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250번째 생일 행사가 점점 트럼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립기념일 행사와 각종 기념 프로젝트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와 결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악관은 ‘그레이트 아메리칸 스테이트 페어’, ‘아메리카 이즈 백’ 행사, UFC 경기 개최 등을 통해 건국 250주년을 애국주의와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워싱턴 내셔널몰에서 열린 250주년 기념행사 개막 무대에서도 경제 성과와 이란 전쟁 승리 등을 강조하며 사실상 선거 유세에 가까운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독립 250주년을 둘러싼 논쟁을 “미국의 기억과 역사를 둘러싼 전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을 기념하고 누구를 미국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억할 것인지를 놓고 미국 사회가 다시 갈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질서 수호자 어디로” 국제사회·미국내 한목소리
이러한 변화에 대해 가장 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미국인들이다.
독립 250주년을 앞두고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사회의 자신감 약화와 정체성 혼란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AP통신과 NORC 공공문제연구센터가 올해 4월 미국 성인 11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민주주의가 미국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답한 비율은 68%로 2021년 조사 당시 80%에서 크게 낮아졌다.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고 답한 비율도 27%에 그쳤다. 또 AP-NORC가 이달 공개한 ‘아메리카250’ 조사에서는 미국인의 87%가 표현의 자유, 86%가 투표권을 미국 정체성의 핵심 가치로 꼽았지만, 투표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보는 응답도 약 3분의 1에 달해 미국 사회의 분열상을 보여줬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미국인 81%가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정책뿐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치 양극화가 미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건국 250주년이 국가적 축제보다 정치적 논쟁의 장이 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미국의 역사 자체가 국민을 하나로 묶는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무엇이 미국의 가치이고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는지를 놓고도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질서 전반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최근 ‘포식적 패권국(The Predatory Hegemon)’이라는 제목의 분석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와 경제적 압박, 금융 영향력을 적극 활용하며 국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패권 행사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과거 미국이 자유무역과 동맹, 국제기구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다면 이제는 관세와 제재, 경제적 압박을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다니엘 해밀턴 선임연구원은 최근 “트럼프는 원인이라기보다 증상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 포퓰리즘 확산, 경제적 불평등 심화, 기후변화와 팬데믹 같은 초국경적 위기 등 이미 국제질서를 흔드는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트럼프는 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 인물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 80년간 유지된 전후 국제질서는 미국과 유럽이 혼란스러운 세계를 관리하기 위해 구축한 체제였지만, 이를 떠받쳐온 가치와 제도들이 급변하는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동맹 체제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는 가운데 기존 질서가 더 이상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이언 하스 존 L. 손턴 중국센터 소장은 앞으로의 국제질서가 미국과 중국 중심의 양극 체제가 될지, 여러 강대국이 경쟁하는 다극 체제가 될지, 혹은 더 분열된 형태로 재편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모두 자국 중심 전략을 강화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 인도, 일본, 한국, 캐나다 등은 강대국 경쟁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협력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776년 미국은 자유를 위해 탄생했고, 1945년 미국은 세계질서를 만들었다. 독립 250주년을 맞은 2026년 미국은 더 이상 세계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를 묻기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를 어디까지 바꿀 것인지를 선택하는 기로에 서 있다. 그 선택은 미국뿐 아니라 지난 80년간 이어진 국제질서의 향방도 함께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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