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의도 없음’은 혐오 문제의 핵심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7. 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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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가야지” 배재고 사태
의도 없는 혐오는 오히려 위험 신호

최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소속 일부 학생 선수들이 광주제일고를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치는 모습이 알려지며 파문이 일었다. 한 달 전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에서 따온 조롱이다. 학생들은 ‘한 학생이 기존 응원 구호를 개사해 선창하자 다른 학생들이 우발적으로 따라 했으며, 선창한 학생도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의 경위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규연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 교장이 전국 고교야구대회 도중 발생한 상대팀 배재고등학교의 응원 구호 논란과 관련한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를 방문하고 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광주일고와 경기 중 상대 더그아웃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라고 외쳤다. 연합뉴스

‘특별한 의도 없음’은 종종 문제의 핵심이다.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이런 일이 잦다. 멕시코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상대편 골키퍼가 골킥을 하는 순간 ‘푸토’라는 단어를 외치는 관행이 있다. 스페인어로 성매매하는 남성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남자답지 못한 겁쟁이’나 동성애자를 낮잡아 비하하는 속어로도 쓰인다. 일부 멕시코 축구 팬들은 별 뜻 없이 경기 중에 재미로 외치는 구호일 뿐이라고 말한다. 2024년 AP통신과 인터뷰한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한 남성 역시 이 구호에 대해 “재미로 하는 것이며 상대 팀에게 악의를 품어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겁이 많고 남자답지 못한’ 남자와 동성애자를 연결 짓는 일은 뿌리 깊은 편견이다. 이 편견이 반영된 단어를 상대 선수에게 쓰는 것이 동성애 혐오적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 문제로 여러차례 멕시코 축구협회를 징계했고, 멕시코 내부에서도 이 구호를 더는 쓰지 말자는 목소리가 크다.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광주 출신인 상대를 ‘특별한 의도 없이’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 5·18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보편화했다는 뜻이다. 그것이 혐오라는 감각조차 마비될 정도라면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을 수 있다.

경기장 혐오에 맞서온 역사에서
혐오 막을 제도 설계할 방법 찾아야

세계 각국은 스포츠 경기장 내 혐오에 다양한 방식으로 맞서왔다. 영국은 1991년 제정된 축구범죄법을 통해 인종차별적 구호 제창을 금지한다. 유럽축구연맹은 팬들이 동성애·인종을 비하하는 등의 구호를 외치면 홈경기 시 관중석 일부를 비워두도록 하는 징계를 내린다. 때로는 국가와 지역에 대한 혐오도 징계 대상이 된다. 2022년 튀르키예 페네르바체 팬들은 우크라이나 디나모 키이우와의 경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조롱하는 뜻으로 “푸틴”이라고 외쳤다가 관중석 5000석 폐쇄 징계를 받았다. 스페인 라리가에서는 브라질 국적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에게 인종차별 공격을 가한 팬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10번 아담 존스가 2017년 5월 2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당한 인종차별과 관련해 언론과 대화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2017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기에서 볼티모어의 애덤 존스를 향한 인종차별적 욕설이 터져 나오며 큰 파장이 일었다. 이에 보스턴은 볼티모어에 사과하고 일부 관중에게는 보스턴 홈구장 영구 입장 금지 조치를 내렸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혐오 발언을 차단하는 자체 팬 행동수칙을 잇달아 내놨다.

경기장 내 혐오를 용인하지 않는 규칙을 튼튼하게 세우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며 한국 리그에도 필요하지만 불완전하다. 계속 징계를 주고 문제를 제기해도 비슷한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멕시코는 올해 북중미 월드컵 체코전에서 팬들이 또 동성애 혐오 응원 구호를 외치는 바람에 징계 위기에 처했다. 혐오가 경기장 안에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장 내에서의 제재만으로는 사회에 만연한 혐오 그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5·18을 조롱한 학생 선수들의 선수 생명을 끊어야 한다는 식의, 행위자에 대한 소위 ‘사이다’식 일벌백계로는 더더욱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사건을 계기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혐오 자체를 차단하는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 행동수칙에 힌트가 있다. 이 수칙은 모욕적 언어를 ‘타인의 인종, 혈통, 피부색, 민족, 종교, 성별, 성정체성, 성적 지향, 출신 국가, 나이, 장애, 임신과 출산, 참전 용사 자격, 군 복무 등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로 한국에서는 19년째 표류 중인 차별금지법의 ‘차별금지 사유’ 항목과 대부분 겹친다. 경기장의 혐오를 근절하는 방법과 혐오 자체에 방파제를 세우는 일은 이렇듯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 남지원 젠더데스크 somnia@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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