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전문가'가 'AI'도 만든다…한국콜마의 자신감
배형진 한국콜마 AI앤이노베이션팀장 인터뷰
한국콜마, 자체 개발 AI 화장품 접목
화상 치료 디바이스로 CES 최고혁신상으로
스마트폰 진단부터 마이크로바이옴 분석까지

내 피부 상태를 정확히 알려면 보통 피부과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면봉으로 피부를 슥슥 문질러 시료 몇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만으로 5분 만에 답이 나온다면 어떨까.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꼭 닮은 이 기기는 피부에 사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이 깨졌는지 여부를 읽어 그날그날의 피부 컨디션을 알려주는 '카이옴(CAIOME)'이다.
이 피부 마이크로바이옴 진단 플랫폼을 개발한 것은 한국콜마 융합기술연구소 AI앤이노베이션팀이다. 2019년 신설된 융합기술연구소는 화장품과 제약, 건강기능식품의 기술 경계를 허물고 융합 연구를 하는 조직이다.
그 안에서도 AI앤이노베이션팀은 AI 기술을 연구개발 현장에 적용해 새로운 소재와 제형, 뷰티 디바이스와 플랫폼을 개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화장품과 피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AI 모델까지 직접 설계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배형진 AI앤이노베이션팀장을 만나 들어봤다.
맞춤형 화장품의 진화
한국콜마 융합기술연구소 AI앤이노베이션팀은 AI 모델을 자체 개발해 다양한 디바이스와 플랫폼에 적용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카(SCAR) 뷰티 디바이스'다. 이름 그대로 상처(Scar)를 진단하고 치료하면서 동시에 피부 톤에 맞는 메이크업까지 입혀 주는 기기다. 상처 부위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AI가 상태를 분석해 치료제를 뿌리고 피부 톤에 맞는 메이크업까지 해 주는 데 10분이면 끝난다.
이 디바이스는 화장품 개발이 아니라 화상(火傷) 환자의 치료를 돕기 위한 연구에서 출발했다. 화상은 단계와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치료제를 바를 때의 물리적 마찰이 환자에게 통증을 더한다는 문제가 있다. 병원에 미세한 입자의 약물을 멀리서 쏘아 뿌리는 분사형 디바이스가 있지만 거리 조절이 까다롭고 적용할 수 있는 약물도 한정적이다.

배형진 팀장은 "마침 AI앤이노베이션팀은 맞춤형 화장품을 연구하면서 내용물을 정밀하고 균일하게 분사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며 "이 기술을 화상 치료에 적용하면 환자의 상처에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필요한 성분을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화상 환자만을 위한 디바이스로는 사업 영역이 좁았다. 한국콜마 AI앤이노베이션팀은 화상 외에도 일상에서 생기는 상처와 흉터 관리까지 가능한 디바이스를 검토하게 됐다. 계기가 된 건 흉터로 오랫동안 콤플렉스를 겪었다는 한 연예인의 사연이었다.
배 팀장은 "상처는 초기부터 적절하게 관리해야 흉터로 남을 가능성을 낮출 수 있고, 이미 생긴 흉터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치료뿐 아니라 회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려주는 기능까지 하나의 디바이스에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치료에 메이크업까지
이렇게 개발된 것이 흉터 치료와 메이크업이 모두 가능한 스카 뷰티 디바이스다. 이 디바이스에는 두 개의 AI 기술이 접목돼 있다. 하나는 상처 사진을 분석해 깊이와 상태를 진단하고 어떤 약을 얼마나 뿌려야 할지 판단하는 '의사결정 지원 모델'이다.
그는 "환자의 상처 이미지를 분석해 상처의 유형과 깊이, 면적, 조직 상태, 삼출액 정도 등을 평가하고 분석 결과에 따라 적합한 내용물과 분사량, 분사 범위 등의 조건을 제안하도록 설계했다"며 "의료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의료진의 판단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다른 AI는 '맞춤형 파운데이션 조색 및 생성 모델'이다. AI가 사용자의 피부 톤을 읽어 그에 맞는 파운데이션 색을 직접 조합하고 상처 부위가 티 나지 않도록 분사한다. 파운데이션 색상 조합 가짓수는 180여 개에 달한다. 배 팀장은 "AI가 없었다면 상처의 상태와 피부색, 내용물의 특성, 분사 조건 등의 복잡한 변수들을 동시에 판단해서 빠르게 처방을 내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디바이스는 지난 1월 'CES 2026'에서 뷰티테크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이 상을 화장품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이 받은 건 처음이다. 디지털헬스 부문에서도 혁신상을 받았다. 배 팀장은 "CES 현장에서는 병원이 멀고 비용도 비싼 미국에서는 가정용 디바이스로 즉각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이 컸다"고 밝혔다.
이 디바이스는 치료제 분사, LED 케어링, 맞춤형 메이크업 베이스 분사 세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AI앤이노베이션팀은 이 세 가지를 조합해 의료기기, 맞춤형 화장품, 뷰티 디바이스 등 고객사 니즈에 맞는 다양한 형태로 사업화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발 중이다.
피부 진단도 AI로
이처럼 AI앤이노베이션팀은 맞춤형 화장품을 위한 기술에 AI를 접목하고 있다. AI 피부 진단 플랫폼 '아임(I'MMM)'이 대표적이다. 아임은 스마트폰으로 얼굴을 찍어 올리면 맞춤형 화장품을 추천해 주는 웹 플랫폼이다.
과거에는 피부를 정밀하게 진단하려면 전문 촬영 장비가 필수였다. 지금도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전문 장비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이 간극을 AI가 채울 수 있다. 한국콜마는 오랜 시간 화장품을 개발하면서 전문 장비로 찍은 많은 피부 사진과 분석 데이터를 갖고 있다. 이를 AI에 학습시켜 AI가 피부 상태를 진단할 수 있도록 했다.

배 팀장은 "AI 기술로 스마트폰과 전문 장비의 해석 능력 차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다"면서 "전문 장비를 완전히 대체한다기보다는 전문적인 피부 진단 기술을 소비자의 일상으로 확장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단순한 진단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아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소비자들이 단순히 자신의 피부 상태를 아는 것보다 '왜 오늘 피부가 달라졌는지'를 알고 싶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이어 "설문 기반의 진단은 소비자가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의 피부 특징을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광학 진단도 피부가 왜 그렇게 변화했는지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피부 상태 진단을 넘어 '왜'를 찾는 기술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다음으로 내놓은 게 AI 기반 피부 진단 플랫폼 '카이옴'이다. 면봉으로 채취한 시료를 키트에 떨어뜨리면 피부에 사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균형이 얼마나 깨졌는지를 읽어낸다. 광학 진단에서 더 나아간 '바이오' 진단을 하는 셈이다. 배 팀장은 "이 아임과 카이옴의 기술을 활용해 현재 즉시 관리해야 할 요소와 향후 변화를 예측해 관리해야 할 요소를 함께 제안하는 통합 피부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델도 직접 만든다
한국콜마는 아임과 카이옴 같은 기술을 직접 개발한다. 배 팀장은 "무엇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정의할지, 어떤 데이터로 연구할지가 매우 중요한데 이를 가장 잘 아는 건 화장품과 피부, 제형을 깊이 이해하는 연구자들"이라며 "이런 연구자들이 단순히 데이터를 정리해 개발자에게 넘기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현장에서 쓸 수 있는 AI 모델을 만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런 이유로 한국콜마가 수십 년간 쌓아온 연구개발 데이터와 제조 노하우, 연구원의 경험을 모델로 전환하며 내재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런 내재화에는 어려움도 많다. 그는 "목표가 명확해도 AI를 학습시킬 만큼 충분한 양과 품질의 데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데이터가 있어도 수집 조건이나 형식이 달라 바로 쓰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앤이노베이션팀은 내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한편 전문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연구기관과의 오픈이노베이션도 확대하고 있다.
AI 기술 내재화는 제품 개발을 넘어 한국콜마의 생산 현장으로도 향하고 있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산업통상부의 'AI 팩토리 얼라이언스' 사업에 화장품 기업 중 유일한 주관기업으로 선정됐다. 생산시설에도 AI 기술을 접목해 자율 제조 시스템을 갖추고 효율성과 품질을 끌어올리는 프로젝트다.

배 팀장은 "지금은 생산 후 품질을 검사하고 이상이 있으면 원인을 추적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며 "앞으로는 원료 특성과 배합 조건, 공정 온도, 설비 상태 같은 전 공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품질 이상을 생산 전에 예측하고 공정을 선제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콜마와 배 팀장이 그리는 K뷰티의 미래도 이런 AI를 기반으로 한다. 그는 "K뷰티는 그동안 소비자 니즈를 빠르게 캐치해 상품화하는 신속성으로 경쟁력을 키워왔지만 앞으로는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것"이라면서 "AI가 도입되면 국가와 인종, 기후에 따른 피부 데이터를 분석해 세계 각 지역의 소비자를 더 정밀하게 이해하고 화장품뿐 아니라 피부 진단, 디바이스, 사용 후 효과 데이터까지 연결한 글로벌 뷰티테크 생태계를 K뷰티가 선도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콜마의 최종 목표는 진단과 추천을 넘어선 '실효성'이다. 배 팀장은 "진단이나 솔루션 추천은 AI로 어느 정도 마련됐지만 소비자가 디바이스와 화장품을 함께 썼을 때 그 효능을 즉각적이고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우리 팀의 최종 목표"라면서 "단순 화장품 ODM 기업을 넘어 AI와 데이터, 소재, 제형, 디바이스를 하나의 기술 체계로 연결하는 글로벌 뷰티테크 플랫폼 기업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청년미래적금 갈아타봤더니…수익률 11.2% vs 8.7%
- '스포티함 한도초과에 웅장하기까지'…확 달라진 아반떼
- [단독]대한항공, 에어부산 등 인수 검토…'지주사 규제 피하자'
- '가격 부담 충분히 상쇄' 8세대 아반떼 가솔린모델에 담긴 승부수
- 7월부터 안면 인증…통신업계 "준비 끝났지만 당장은 글쎄"
- '단백질 25g' 믿고 마셨는데…프로틴 음료의 함정
- 김해관광유통단지 옆 신문지구에 '아이파크' 1380가구
-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4주간 집값 6% 뛴 이 동네
- 70% 떨어진 리플…'1달러' 지켜낼까
- BYD 또 '갓성비' 승부수…3700만원대 'PHEV' 한국 상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