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수장들, AI 낙관론에 제동…“어떤 시나리오도 안전하지 않다”
은행 대출·사이버 보안·노동시장까지 감독 과제 급부상
(시사저널=김혜인 디지털팀 기자)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수장들이 인공지능(AI)을 금융 안정의 새 변수로 지목했다. AI 투자 과열이 자산 거품을 만들 수 있고 알고리즘이 시장 조작과 은행 대출 판단까지 흔들 경우 기존 감독 체계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막을 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중앙은행 포럼에서 이민·기후·감독 등 주요 의제를 관통한 핵심 주제로 다뤄졌다고 보도했다. 참석자들은 AI가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은행 대출·보안·전력 수요 등 폭넓은 영역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번 포럼에서는 AI가 예상하기 어려운 충격을 만들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부각됐다. 로이터는 데뷔 무대에 오른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마저 사흘 동안 이어진 논의에서 AI 이슈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워시 의장은 AI가 경제 구조를 바꾸는 초기 단계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은 각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라며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우버 운전사 150만 명이라는 새 일자리가 생길 줄 누구도 예상치 못했으며 우리는 아직 이 혁명의 초입에 있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자산 거품과 가격 조작이 주요 위험으로 제시됐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AI 투자 열기의 규모와 속도가 1840년대 영국 철도 투자 붐·1920년대 투기 열풍·닷컴 붐 등 과거 거품 붕괴 사례와 닮아 있다며 단기 하방 위험을 경고했다.
AI 인프라 투자가 이미 미국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렸다는 진단도 나왔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로크는 대부분 AI 인프라에 투입되는 자본지출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1%포인트 높였고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AI 관련 주식 거품이 최근 몇 주 사이 조정을 받고 있다고 봤다.
슬로크는 AI가 성공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모두 금융 안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가 예상보다 큰 성과를 내도 반대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해도 금융 안정에는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어떤 시나리오도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알고리즘이 시장 가격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이타이 골드스타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AI 알고리즘이 가격 조작 경로를 공모해 거품을 만들고 폭락을 야기하는 능력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며 "이것이 금융 안정에 더 심각한 함의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은행 대출 영역에서는 AI가 판단 과정을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토비아스 아드리안 국제통화기금(IMF) 국장은 "감독 당국이 AI 에이전트의 대출 결정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지가 문제"라며 "결정 과정이 블랙박스처럼 보일 수 있고, 왜 그런 판단이 내려졌는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 핵심 감독 과제"라고 말했다.
사이버 보안과 투자 과열도 중앙은행 관계자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세라 브리던 영란은행 부총재는 사이버 공격에 취약한 금융기관을 보호하기 위해 예금보험 제도와 유사한 장치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한편 AI 투자 조정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티프 맥클렘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인터넷은 예상하지 못한 새 산업을 만들어냈지만 닷컴 거품까지 막지는 못했다"며 AI 투자 과열 이후 조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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