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 ‘AI 사용’ 표기 놓고 설전… 주홍글씨냐, 소비자 알 권리냐

인간 창작물과 AI 창작물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가운데 미국 게임사 밸브 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PC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AI(인공지능) 사용 여부를 공시하도록 한 정책을 두고 게임업계에서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공시가 AI 사용에 반대하는 게이머들의 반발을 키워 개발사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과, 소비자의 당연한 알 권리를 보장하는 조치라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글로벌 게임 전문 매체 PC 게이머와 한 인터뷰에서 내놓은 발언이었다. 스위니 CEO가 밸브의 AI 사용 고지 의무화 결정이 개발자들의 개발 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스팀에 출시해야 하는 개발자들이 제품에 ‘AI 주홍 글씨’를 달아야 한다”며 “이로 인해 헤이터(혐오자) 커뮤니티의 공격을 받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AI가 ‘에셋 스토어’나 ‘포토스캐닝’처럼 고유한 에셋(3D 자산)을 제작하는 수단일 뿐, 진정한 가치는 에셋 자체가 아닌 게임의 내러티브와 게임 플레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발자는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를 포기해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스위니 CEO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1인칭 슈팅 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 2′의 맵 리메이크에 참여한 밸브 소속 아티스트 아이 산체스는 “(스위니 CEO의 발언은) 식품에 성분 표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며 “소비자는 제품에 포함된 내용물에 따라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AI 사용 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게임이 성의 없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자들”이라며 “현명한 소비자라면 모조품 대신 독창적인 진짜(original)를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산체스의 비판을 재반박하는 주장도 제기됐다. 식품이나 가전제품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잠재적 위험이 있지만, AI로 만든 게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스팀은 2024년부터 개발 과정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한 게임은 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AI를 코드 작성을 돕는 이른바 ‘코드 헬퍼’ 등 개발 보조 도구로 활용한 경우에는 공시 대상이 아니지만, 게임 내 에셋이나 마케팅 자료에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포함됐다면 이를 이용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넥슨의 글로벌 흥행작 ‘아크 레이더스’는 로봇의 이동 애니메이션과 텍스트음성변환(TTS) 시스템에 AI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스팀 페이지에 공시하고 있다.
게임 개발에 AI가 활용되는 것을 둘러싼 게이머들의 반감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AI가 게임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MS) 산하 액티비전이 지난해 출시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7’에는 손가락이 여섯 개인 좀비 산타가 등장해 AI 생성 이미지의 전형적인 오류라는 비판을 받았다.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게이밍 PC 가격까지 오르는 등 간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게이머들의 반발이 갈수록 커지자 생성형 AI가 만든 결과물을 게임에 활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게임사도 등장했다. 게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제작사 캡콤은 “AI로 생성된 에셋을 게임 콘텐츠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놨고, 아샤 샤르마 엑스박스 신임 CEO도 “영혼 없는 AI 콘텐츠로 생태계를 채우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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