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숙제 싫어하는 팔레스타인 어린이 ‘바나’의 그림, 전쟁과 분단을 넘다

권혁철 기자 2026. 7. 2. 05: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짬] 팔레스타인 시민단체 ‘시즈’ 타사메 라마단 이사
팔레스타인 시민단체 ‘시즈’의 타사메 라마단 이사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어린이평화그림전 ‘드로잉 호프’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그림 앞에서 있다. 권혁철 기자

“다른 나라를 갔을 때보다 한반도에 오니 훨씬 동질감을 많이 느낍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청소년 공동체 교육을 하는 시민단체 ‘시즈’의 타사메 라마단 이사는 지난 25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만나 한국과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의 공통점으로 전쟁과 분단을 꼽았다. 타사메 이사는 대북 지원단체 ‘어린이어깨동무’가 창립 30주년 행사로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팔레스타인 등 분쟁 지역의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국제평화프로젝트 `드로잉 호프' 전시회에 참석했다.

그는 “한국의 이산가족처럼 팔레스타인에도 장벽과 검문소 사이로 가족이 갈라져 사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점령하고 곳곳에 ‘테러로부터 이스라엘 국민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분리 장벽을 세웠다.

타사메 이사는 가족의 안부를 손끝으로 확인해야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연한 현실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이웃 중에 벽으로 가로막혀 떨어져 지내는 엄마와 딸이 있다. 이들은 벽의 틈이나 작은 구멍을 찾아 손가락으로라도 서로를 만지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벽에 막혀 이산가족이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손끝 상봉’이라도 하려고 벽의 구멍을 찾아 헤맨다고 한다. 그는 이 장면이 분단된 한반도의 비무장지대(DMZ), 철조망, 이산가족, 자유로운 왕래의 단절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한국과 팔레스타인이 겪는 전쟁과 분단의 원인과 형태는 다르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긴장과 적대가 일상이라는 점에서 닮았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서 청소년 공동체 교육
응급처치법 등 생존 기술도 가르쳐
“총격·검문소·가족과의 단절 겪으며
어린이들 고립감·좌절 켜켜이 쌓여”

전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어린 시절 기억까지도 잔혹하게 잘라낸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이스라엘의 검문소, 총격, 가족과의 분리를 겪는다. 타사메 이사는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이스라엘군이 총을 쏠 수도 있고 옆 친구가 총에 맞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다친 친구를 응급처치할 수 있는 능력이 팔레스타인 사람한테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즈’는 청소년들에게 응급처치, 폭발물 대응 같은 비상훈련도 가르친다. 언제 총격이 시작될지, 언제 사회기반시설이 무너질지 모르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에서 이런 준비는 생존의 기술이 됐다.

타사메 이사는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가장 힘든 점을 “어린 시절을 빼앗긴 삶”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14살에 처음 외국에 갔을 때, 도시를 이동할 때 검문소가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는 어디든 이동하려면 검문소를 지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상처와 좌절, 고립감은 켜켜이 쌓이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살아남는 일이 급해, 어린이들의 이런 트라우마를 돌보고 마음을 치유하는 일은 늘 뒤로 밀려난다.

지난 25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 어린이 평화그림전 ‘드로잉 호프’ 에 걸린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그림. 바나(11·왼쪽)는 여느 나라 또래 어린이처럼 “학교랑 숙제를 정말 싫어”한다고 털어놓았고, 사라(6)는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타사메 이사는 ‘드로잉 호프’ 프로젝트에 참여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희망’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받는 과정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림이 만들어내는 연대의 방식이었다. 아이들은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아느냐”, “우리는 혼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고, 그림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도 중요하지만, 어린이들의 그림은 더 직접적으로 마음에 호소한다”고 말했다.

대북지원단체 어린이어깨동무 주최
분쟁지역 어린이 그림 전시회 참가
“그림 통해 세계와 연결은 큰 의미”

이날 인터뷰를 통역한 김동진 어린이어깨동무 이사는 “드로잉 호프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전쟁과 분열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다른 지역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어린이들의 시선을 통해 공동의 인간성과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가 처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과 희망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드로잉 호프’에 전시된 팔레스타인 어린이 바나(11)의 “학교랑 숙제를 정말 싫어해”란 솔직한 인사에서, 어른들은 걸치고 있던 분열의 옷이 얼마나 헐벗은 것이었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이기범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전쟁과 갈등의 벽을 어린이들이 평화의 그림으로 넘어서려고 한다”며 어린이들이 그림을 통해 서로 다른 갈등의 역사를 가진 사회의 친구들에게 전하는 행사 의의를 강조했다. 국회 전시를 마친 어린이 그림들은 이달 31일까지 경기 임진각에서 전시된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어린이어깨동무 30주년 기념식에서 이 단체 이기범 이사장(왼쪽)이 지난해 국제 어린이 평화그림전 ‘드로잉 호프’ 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전시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미쉘 윈트럽 주한 아일랜드 대사에게 어깨동무 평화상을 주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 페이스북

드로잉 호프 그림전은 어린이어깨동무의 남북 어린이 그림 교류사업에서 시작됐다. 어린이어깨동무는 1996년부터 분단으로 만날 수 없는 남북 어린이들이 자화상을 그려 교환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활동은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로 확대돼 2001년부터는 ‘동아시아 어린이 평화그림전’으로 발전했다. 이후에도 용기와 평화 메시지에 공감하는 세계 곳곳의 연대를 통해 2023년부터는 세계 각국 어린이가 참여하는 드로잉 호프로 확장됐다. 전시는 202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2024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지난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지난 30년간 어린이어깨동무는 남북의 어린이가 어깨동무하고 뛰어놀 수 있는 한반도를 만들려고 애썼다. 어깨동무를 하려면 키도 비슷하고 마음이 통해야 한다. 어린이어깨동무는 남녘 어린이가 평화롭게 자랄 수 있도록 평화교육을, 북녘 어린이가 건강하게 자라나 같은 키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도록 인도적 지원과 대북협력 활동을 하고 있다.

타사메 이사는 한국 청년들에게 “분단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서 벗어나, 그것이 만들어진 구조를 인식해달라”고 부탁했다. 타사메 이사는 한국 청년들에게 “팔레스타인으로 놀러 오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국 청년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놀러 갈 수 있는 평화의 시대가 빨리 오길 바라는 염원이었다.

글·사진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