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눈감은 ‘아트워싱’, ‘페미니스트’로서 사이렌을 울리다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7. 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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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은영은 지난해 6월 활동가 해초(본명 김아현)에게서 직접 가자지구행 소식을 듣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1학기 강의를 마쳤을 때다. “‘배를 탈 거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죠.” 정은영은 당시 순간을 떠올리며 “저를 너무너무 끔찍하게 만들었다. 그간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동요하지 않고 ‘연루’되지 않으려 한 게 양심에 걸리던 차, 들은 해초의 결심에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고 말했다.

6월 17일 서울 남가좌동 작업실에서 정은영 작가. 김종목 기자

이 각성의 순간은 이듬해 5~6월 ‘퐁피두센터 한화’ 보이콧에 나서는 계기가 된다. 그가 속한 ‘검열에 반대하는 예술인 연대’(이하 ‘예술인 연대’)는 퐁피두센터 한화가 이스라엘 주요 방산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솔루션 등 방산기업 자금 지원으로 만들어진 점을 비판한다. 이 연대는 한화의 ‘아트워싱’을 지적하며 협력 중단 등을 요구한다.

[플랫]청소업 6년, ‘청년여성의 몸 노동 경험’을 기록하다

제자인 활동가 해초의 팔레스타인행에
학살에 눈감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져
방산 기업 자금으로 만든 한국 퐁피두
예술이 폭력을 세탁하는 도구로 사용

정은영은 개관일인 지난 6월 4일 팔레스타인문화연대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퐁피두센터 한화 앞에서 열린 ‘철회하라, 한화’ 집회 중 “피로 얼룩진 자본 위에서 예술하기를 거부한다” “예술이 살인과 폭력, 학살과 절멸의 만행을 세탁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예술을 무력화하는 예술을 거부한다”고 했다.

그는 개인 SNS에서 5월 26일 퐁피두센터 한화에서 열린 ‘샤넬쇼’에 참석한 틸다 스윈턴도 비판했다.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 때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 “예술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한 빔 벤더스 감독을 비판하는 영화인 서한에 참여하고도, 샤넬쇼에 참석한 스윈턴의 이중성을 문제 삼았다. 당시 스윈턴 등은 영화제 측이 이스라엘의 폭력에 침묵하고, 정지 견해를 밝힌 예술가들을 검열한다고 지적했다.

정은영은 2013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2018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이른바 ‘네임드’ 예술인이 ‘이력’에 별 도움 안 될 보이콧 전면에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17일 서울 남가좌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미술작가 정은영의 거대 방산기업 한화와 국제적 미술기관 퐁피두에 대한 저항은 “예술은 곧 실천”이란 오랜 신념과 이어진다. 정은영이 지난 17일 서울 남가좌동 작업실에서 피카소의 반전 작품인 ‘게르니카’의 고통받는 인간 형상을 덧붙인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있다. 벽면 중앙은 독일에서 열리는 개인전 ‘저항극장’ 포스터(2종), 오른쪽 아래는 ‘여성국극 프로젝트’ 중 ‘지연된 아카이브’(2018~2026) 일부다. 김종목 기자

정은영은 인터뷰 때 ‘봉쇄를 끝내고 팔레스타인 해방으로’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해초와 동료 활동가들이 디자인하고, 실크스크린으로 직접 찍어서 제작 판매한 티셔츠다. 그가 이어 말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배를 타겠다고 하는 제자에게 쿨한 척하며 ‘그래 잘 갔다 와’라고 했지만 너무 불안했어요. 올해 또 배를 탔잖아요. 이스라엘 군인에게 고문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정말 안 좋았죠.”

해초에 대한 미안함으로만 보이콧에 참여한 건 아니다. 그가 상기한 건 영국의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이자 리즈대학 지도교수인 그리젤다 폴록의 가르침이다. 1990년대 말 이화여대 대학원을 다닐 때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열심히 읽은 책이 폴록의 <여성·미술·이데올로기>였다.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가 미술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 자체를 전환한 첫 번째 물결이었고요. 미술사에 여성을 끼워넣기 할 것이 아니라, 여성을 기입하지 않는 미술사라는 분과 학문의 구조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폴록의 주장을 담은 이 책이 두 번째 물결을 일으켰죠.” 그는 폴록에게 직접 연락해 리즈 대학원 ‘시각예술에서의 여성주의 이론과 실천’ 과정에 들어갔다.

“처음 영어를 너무 못해 이론 공부가 무척 힘들었어요. 읽을 게 많으니, 실기를 미뤄달라고 했죠. 그 말을 듣고는 역정을 내시며 ‘페미니스트는 실천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 아니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 너는 작업을 해야 한다. 안 할 거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거죠.” “예술은 곧 실천”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정은영은 이 각성의 순간도 다시 떠올린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계속 죽어가는데 이 문제에 어떻게 계속 눈감을 수 있는가 생각했죠. 제가 해온 작업들이 늘 실천에 관한 것이라 이번에 실천하지 않으면 양심을 위배하는 것으로 결론 냈죠.”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앞장설 생각은 없었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 온 많은 이들이 있는데 발언자로 나가 얘기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그나마 미술계에 이름이 조금 나 있는 제가 해주길 바란다는 동료들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명품 업체가 지원하는 전시는 하면서
팔레스타인 외면하는 예술가들에 의문

극도로 상업화된 미술계와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들의 이중성도 행동에 나선 계기다. 네덜란드 작가 요나스 스탈과 라다 드수자가 2023년 광주비엔날레의 네덜란드관에서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 멸종 전쟁’을 열고, 이스라엘의 방산기업 엘빗 시스템즈 등과 협력 관계인 한화를 피고로 지목한 점을 예로 들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들도 다 초대한 총감독과 관련자들이 지금 퐁피두 한화로 이직했어요. 요나스 스탈 등 당시 참여 작가와 스태프들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예술인 연대의 출발점은 2025년 서울시립미술관의 평론가 남웅의 원고에 대한 검열 사태다. 남웅이 그해 3월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전시 도록 수록을 위해 쓴 글에 윤석열 12·3 불법 계엄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게재를 거부당했다. “다양한 검열의 문제들을 다루면서 예술인 연대 조직이 자연스레 이루어졌다”고 한다. 검열 반대 조직이 한화의 아트워싱 규탄 집회에 나선 것을 두고 ‘조직 이름과 집회 성격이 안 어울리는 것 아닌가’라는 기자 질문도 받았다고 한다. 정은영은 6월 4일 연대 발언 때 “이 질문에 무척 놀랐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예술 검열이 횡행해 온 배경에는 언제나 권력과 자본의 입맛에 맞도록 예술과 예술인을 길들여온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기자님이 모를 리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의 역사를 세탁하는 행위인 ‘아트워싱’ 또한 예술 검열처럼 누군가의 정치적, 자본적 이득을 위해 폭력의 실상을 가리는 파렴치한 행위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6월 4일 퐁피두센터 한화 앞에서 ‘철회하라, 한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홍지영 제공

‘퐁피두센터 한화와 같은 거대 기관의 권력으로 인해 작품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없는가’라는 내용의 질문도 받았다. “문화예술의 자생력과 회복력, 그리고 예술인들이 지켜온 최소한의 윤리적 가치를 믿기에, ‘아니요. 두렵지 않다’라고 답하기로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누가 ‘작업’이라는 예술가의 주체적 실천을 막을 수 있는가.”

인터뷰 때도 여러 차례 예술과 실천의 문제에 관해 말했다. “작가들은 현실에 벌어지는 일들에서 영감을 받아요. 대부분의 작가가 자기가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죠. 예술을 한다는 것, 작업을 한다는 것은 세계를 만드는 일이죠. 그런데 팔레스타인 학살 같은 복잡하고, 구체적인 세계의 이야기를 두고는 ‘나랑 관계없다’는 식으로 선을 긋고들 해요.” 그는 “왜 작가들이 그 세계를 향해서 눈감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말했다.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많은 예술가들이 명품 회사가 지원하는 전시는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팔레스타인을 얘기하는 건 금기시하는 게 이상하죠. 샤넬 지원을 받더라도 팔레스타인 얘기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4·3을 언급할 수 있는 것처럼.”

모두가 무관심한 건 아니다. 예술인 연대 등이 진행한 ‘집단학살 아트워싱에 반대한다’ 서명운동엔 지난 6월 4일 기준 국내외 작가, 평론가 등 1400명이 참여했다. 한국 작가 중엔 김화용, 김희천, 남화연, 노순택, 방정아, 이미래, 임흥순, 이강승, 차재민, 최고은 등이 서명했다.

기업의 예술인이나 예술기관 후원은 복잡다단한 사안이다. 정은영도 2013년 이른바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주는 상을 받았다. “당시 어떤 선생님이 저한테 ‘보이콧할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급전이 필요해 할 수 없다고 답했죠. 저도 단일한 철학을 지키며 순수하게만 살지는 않았어요.” 그는 다만 “어떤 맥락 속에서 지켜야 할 선은 고민했다. 에르메스재단은 기업과 잘 분리됐고, 예술가들을 존중했다. 퐁피두 한화의 이번 건은 선을 넘은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은영은 에르메스상을 받았으면서 퐁피두 한화의 문제를 왜 제기하냐는 식의 질문 자체가 “초점을 벗어난 얘기”라고 했다. “‘다 같은 부류 아닌가요’라는 말로 결국은 사안을 가리는 거죠. 이런 식의 양비론은 우리가 몰두해야 할 진지한 주제를 가리게 돼요.” 이번 일에 나서면서 어떤 자리, 지위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예술계에서 누가 발언하면, 결국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쉽게 의심받는 것 같다. 이런 의심이나 의문도 천착해야 할 사안을 가로막는다. 그것에 응답하는 순간 사안이 가려진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도 이 사안은 이슈다. 예술가와 철학자 100여명이 퐁피두센터와 한화그룹 간의 협력 관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지난 5월 27일(현지시간) 리베라시옹에 기고했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 팔레스타인계 유대인 비평가 아리엘라 아이샤 아줄레,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 작가 알리 체리, 퐁피두센터의 마르셀 뒤샹상 수상 작가 릴리 레이노-드와, 세자르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배우 아델 에넬 등이 성명에 참여했다. 르몽드도 지난 5일 개관 소식을 전하며 집회 내용을 전했다. 6월 11일엔 주디스 버틀러, 아델 에넬, 엘리자베스 르보비치, 릴리 레이노-드와르, 셀린 시아마 등 수백 명의 해외 저명인사들이 퐁피두센터에 한화와의 관계 단절과 팔레스타인·레바논 예술가 지원 기금 마련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두고 대체로 조용하다. 경향신문 등 몇몇 언론만 집회 개최 사실을 보도했다. 퐁피두 한화의 ‘샤넬쇼’ 보도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한화 등 방산주 등락에 관한 기사 개수도 마찬가지다. ‘코스피 9000’의 시대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K방산주’는 지켜야 할 대상이 된 것일까. 정은영은 “‘방산주를 사니 전쟁을 기대하게 되더라’는 내용의 글도 봤다”고 한다.

정은영은 이런 시대 상황과 분위기에 경고음을 내는 존재 같았다. 영어 이름 ‘siren eun young jung’에서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 인물에서 따왔다. ‘사이렌’의 어원이다. “1994년 대학 내 페미니즘 운동 시작 때 붙인 이름이다. 아버지 성을 버리고, 불리길 원하는 이름을 지어 자신을 정치화하는 일종의 운동이었다”고 한다. “신화의 세이렌은 뭔가 특정될 수 없는 존재죠. 권위의 남성들을 위협에 빠뜨리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해외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다 소문자로 적었다. 국적, 인종, 젠더를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의미였다. 서구식으로 불리지 않으려는 의도도 포함했다.

국극 연구자로 드라마 ‘정년이’ 자문
“이상한 급진성과 비규범성”에 매료
다시 명맥 끊길 위기에 마음 조급해져
정은영이 수집한 국극 관련 옛날 사진. 김종목 기자

해외 미술계에선 더는 이 이름을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20여 년간 여러 국가에서 단체전·개인전을 진행했다. 이름을 해외에도 널리 알린 게 2008년부터 진행한 ‘여성국극 프로젝트’다. 앞서 2007~2008년 기지촌에서 벌어지는 섹슈얼리티와 젠더 문제들을 다루는 ‘동두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성노동자 여성들을 만나면서 자기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중산층 가정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랐고, 예술가로 가난하긴 해도 안전하게 예술을 하는데, 위험한 곳에서 그 일을 하는 여성들 문제를 다루는 게 너무 기만적이라고 느꼈어요. 예술 자체를 관두려고 했어요.”

미술계를 떠나는 걸 고민하던 당시 친한 선배(현 한신대 교수 김지혜)가 시작한 여성국극 연구를 별생각 없이 도우러 간 게 일생의 업이 됐다. 정은영은 여성국극 멤버들의 “이상한 급진성과 비규범성”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 노인들은 젠더를 넘나드는 연기를 해왔던 분들이어서 ‘이상한 생각’을 많이 하시는 거예요. 저를 처음 보고는 ‘결혼했냐’ 같은 질문이 아니라 ‘네가 하는 예술이 뭐냐’고 물으시는 거죠. 나중 뭐든 다 받아주시고, 비밀 얘기까지 다 해주시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러시는 거예요. ‘너 예술가라며? 우리도 예술을 하는 사람인데, 서로 자기 세계를 쌓으려고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설마 네가 우리한테 사기를 치겠냐’고요. 이런 통찰에 놀라곤 했죠. 그래서 20년 가까이 그 작업을 해온 거예요.”

여성국극이 다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급하다. “20년 전 1세대 배우 10여 분이 계셨는데, 지금은 딱 2분 남았다. 94세, 96세다.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마음도 급해진다”고 했다. 원래 작업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지만, 20여 년을 함께 봐온 이들의 목전에 둔 죽음 앞에서는 초연할 수만은 없다고 한다. “감정적으로 분리해야 한다지만,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가끔 찾아뵌다. 최소한 할 수 있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정은영이 수집한 국극 관련 옛날 사진. 김종목 기자

<정년이> 자문가로 알려진 뒤 공중파와 유튜브의 여러 방송에도 나갔다. “부르면 그냥 갔다. 여성국극 배우들과 커뮤니티 덕에 계속 작업을 해왔다. 방송에 나가는 게 제가 그 빚을 갚는 일로 봤다”고 말했다. “여성국극에 대해서도 작가로서 더 날서게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대중적, 친화적으로 가게 된다면, 제가 기대한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제가 사용돼야 한다면, 한다였죠. 그것이 이 할머니들의 마지막 삶의 중요한 일이라면, 제가 하겠다는 거죠.”

정은영은 반골 성향이 강한 듯했다. 대학원 때 ‘서울대파’ 남성 교수 3인이 기획한 미술제 운영 등을 공개 비판했다가 “싹을 밟아버리겠다”는 말을 들었다. “논쟁으로 받아들여주지 않더라고요. 식물을 좋아해서 화분을 잘 돌봐요. 나중에 ‘식물을 기르는 걸 좋아하는데, 싹이 밟히거나 뿌리가 잘려도 제법 잘 자란다. 나 아직 살아 있다’는 취지로 글을 써 공개하기도 했죠. 교수 3명이 대학원생 하나를 완전히 짓밟는데, 다들 모른 척을 하던 것도 기억나요.” 그는 “미술판에서 잃을 게 많은 사람이 침묵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명예훼손 소송이 걸린 성희롱 관련 실명 고발도 개인 SNS 상단에 고정으로 해뒀다. “특정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더 나쁜 소문들이 돈다. 또 다른 피해자들이 생기고, 그들(가해자들)한테 더 좋은 기회가 가는 걸 여러 차례 봤다. 이런 문제를 한 번에 좀 끊어내고 싶다. 그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이화여대와 한예종 등 여러 대학에서 강사로 일했다. 지금은 서울여대와 성균관대에 출강한다. 한때 교수로 임용되려고 노력했다고도 한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제도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웃음). 제가 다루는 주제가 편파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어요. 제가 (사람, 제도와) 불화할 거라고도 여기는 듯했고요.” 그는 이런 불화는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는 “대학 출강을 줄이고, 작업하는 시간을 좀 더 확보하려 한다”고 했다.

페미니즘, 젠더, 퀴어 작업에 더 천착하겠다는 뜻의 말이다. 2023년 윤석열 탄핵 집회를 목도하며 “퀴어와 소수자 공동체가 스스로를 ‘시민’화하고, 민주주의를 재조직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 문제를 다룬 게 <병든 서울>(2026, 4K 비디오, 사운드, 21분)이다.

“탄핵 집회 때 너무너무 많은 퀴어들이 나온 거예요. 국가가 계속해서 자기들을 배제하고, 생존·인권 문제를 등한시했는데 왜 이들은 국가와 민주주의를 다시 한번 살려내는 일에 이토록 진심일까를 들여다본 거죠. 이들이 가지려는 시민권이 시민운동과 저항을 통해 기필코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라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를 계속 생각했어요. 이들의 저항은 단순하지 않아요. 제가 여성국극 배우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배운 어떤 ‘변칙적인’ 저항이기도 하더라고요.”

정은영에게 ‘변칙’은 “‘반칙’도 ‘수용’도 아닌 그 어디쯤에서 규범에 균열을 내는 전략”이다. 그는 여성국극의 특징과 중요점을 “전통을 존중하는 척하면서 실은 새로운 실험들을 한다”는 데서 찾는다. 그는 “현재 퀴어 커뮤니티가 천착하는 ‘시민권 운동’도 규범적인 민권을 쟁취하겠다는 취지라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에 시민권이 어떻게 정의·인정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지난 4월 슈투트가르트의 쿤스트페어라인(Wu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에서 개최한 대규모 개인전 타이틀이 ‘저항극장(Resistant Theatre)’이다. 7월 이 전시의 퍼블릭 프로그램인 ‘저항극장, 저항을 퀴어링하기’를 진행하러 다시 슈투트가르트에 간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계속된다.

▼ 김종목 기자 jomo@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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