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자율주행 핵심은 '통신 인프라'…'플랫폼 구축·V2X' 확산 시급
산·학·연 "데이터 플랫폼 구축·V2X 확산 병행해야"

| 서울=한스경제 박정현 기자 | 자율주행 시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차량사물통신(V2X, 차와 도로 환경의 소통 기술)'이 국내에서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어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V2X 확산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은 통신 반도체와 차량용 통신모듈, 노변기지국(RSU), 차량 단말기 등 V2X 산업 생태계를 대부분 갖췄지만 통신방식 논란과 정책 공백으로 자율주행 시대 대비가 늦춰진 상태다. 반면 중국과 유럽은 V2X를 기반으로 차량과 도로,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AI 기반 디지털 도로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글로벌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1일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코딧 글로벌정책실증연구원, 한국C-ITS산업협의체(KCITSA), 한국ITS학회가 공동 주관해 개최한 '더 안전한 자율주행을 위한 디지털 인프라 정책 과제' 세미나에서 산학연은 한국도 자율주행을 대비한 V2X 인프라 확산을 서둘러야 미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송기헌 국회의원은 "자율주행은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안전에 한계가 있다"며 "정부는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운을 뗐다.
송혜영 코딧 글로벌정책실증연구원장은 "한국은 글로벌 자율주행차 3대 강국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왔다"며 "자율주행이 안전한 서비스로 자리잡으려면 도로와 차량, 보행자가 연결되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 韓 V2X, 사실상 멈춤...정책 뒷받침 부재
V2X는 차량과 차량(V2V), 차량과 도로 인프라(V2I), 차량과 보행자(V2P) 등이 실시간으로 위치와 속도, 주행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이다. 차량 센서가 인식하지 못하는 위험 상황까지 통신을 통해 공유해 사고를 줄일 수 있어 자율주행 시대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다만 이날 세미나에서는 한국이 V2X 기술력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지만 정책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C-ITS산업협의체 대표를 맡고 있는 웨이티즈 정홍종 대표는 자율주행을 완성하는 건 AI 도로 인프라지만 정책 추진 공백과 투자 지연으로 해당 산업이 위축돼왔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2014년 대전~세종 91㎞ 구간에서 RSU 95대와 차량 단말기 3000대를 활용한 C-ITS 실증사업을 진행했으며 미국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오히려 더 완성도 높은 서비스를 구축해 해외에서도 사례를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실제 코딧이 발표한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해당 구간에서는 V2X 기반 서비스를 적용한 이후 5년간 평균 사고 건수와 사망·부상자 수가 약 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후 사업은 사실상 멈췄다.
정 대표는 "2021~2022년에는 경부고속도로와 수도권 일부 구간에 RSU 500대를 구축했지만 사업 예산은 130억원 수준으로 줄었고 2024~2025년에는 16억원 규모의 파일럿 사업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정체의 원인으로 통신방식 논란을 꼽았다. 국토교통부는 웨이브(WAVE)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LTE-V2X를 각각 추진하면서 수년간 논쟁이 이어졌고 2023년 말 LTE-V2X가 단일 통신방식으로 결정됐지만 이후에도 본사업은 재개되지 못했다.

▲ 중국·유럽은 국가 전략 추진...한국도 서둘러 준비해야
대표적으로 중국과 유럽이 있다. 중국은 차량과 도로, 클라우드를 하나로 연결하는 플랫폼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해 세계 최초로 신차 안전도 평가에 V2X를 반영했다.
유럽에서는 폭스바겐이 200만대 이상의 차량에 관련 기능을 적용했고 BMW 등 유럽 완성차를 중심으로 향후 1000만대 규모까지 확대를 추진 중이다. 유럽 15개국이 참여하는 DFRS 플랫폼은 차량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클라우드에서 분석한 뒤 주변 차량에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정 대표는 "기존 C-ITS는 공사 구간이나 사고 등 미리 정의한 상황을 차량에 알려주는 '룰 기반' 서비스에 머물렀다. 앞으로는 V2X와 CCTV, 레이더, 라이다 등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데이터 플랫폼으로 전환해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에는 통신 반도체와 통신모듈, 차량 단말기, 보안, 인프라까지 산업 생태계가 모두 구축돼 있다"며 "현대·기아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어 확산 속도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 V2X 재추진 공감대…'속도' 놓고 산업계·학계 온도차
참석자들은 자율주행 경쟁의 중심이 차량 자체의 성능에서 차량과 도로,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통신 기반 디지털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들은 C-ITS를 자율주행 기술에 국한하지 않고 운전자와 보행자, 교통약자를 아우르는 디지털 교통안전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며, AI 기반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V2X 확산이 병행돼야 한국이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그 추진 방식에서는 산업계와 학계가 다소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한국모빌리티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구민 국민대학교 교수는 사업 재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는 "멈춘 사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거처럼 대규모 본사업부터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동차 업계 입장에서는 통신 규격이 변경되면 차량과 칩셋에 대한 테스트를 다시 수행해야 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여러 국가의 사례와 기존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테스트베드에서 충분히 검증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산업계는 기존 기술과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조속히 본사업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광주 아이티텔레콤 대표는 "2007년부터 축적해 온 기술과 표준을 처음부터 다시 검증하는 것은 산업계 부담이 매우 크다"며 "통신의 물리계층만 변경됐을 뿐 상위 서비스와 플랫폼은 기존 기술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연구기관은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데이터 중심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홍복의 국토교통부 디지털도로팀장은 "2030년까지 AI 기반 ITS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방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자율주행 시대에는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서비스 개념과 역할을 보다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강경표 한국교통연구원 자율협력주행기술연구팀장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데이터 기반의 효과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 결정자를 설득하려면 예산 규모보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중요하다"며 "사고 감소 효과와 서비스 효용성을 데이터로 입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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