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최태원은 왜 ‘호남행’ 응했나…‘조건부’ 화답의 속내

조문희 기자 2026. 7. 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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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대란 속 신규 공장 증설 ‘필수 과제’
“조건 맞춰 단계적 집행”…화답 속 철저한 실리 계산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4755조원. 이재명 정부의 '호남 반도체' 구상에 삼성전자와 SK가 화답한 총 투자 규모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는 2655조원, SK는 2100조원을 국내에 투자하며, 이 중 호남 반도체 공장에 직접 투입되는 금액은 800조원 수준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양사 회장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였을 만큼, 두 총수의 결단은 이번 정부 구상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응했을까. 천문학적 화답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철저히 '사업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양사 곳간에 막대한 현금이 쌓이는 지금, 신규 생산 거점 확보는 어차피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인센티브를 활용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다만 양사는 시장 수요를 면밀히 살피며 투자를 단계적으로 집행하겠다는 단서도 함께 달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어차피 지을 공장, 정부가 멍석까지 깔았다"

6월29일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호남 투자 배경으로 '메모리 대란'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AI 수요에 대응하기엔 부족한 상황"이라며 "새로운 단지를 준비해야 할 시점도 앞당겨졌다"고 했다. 최 회장도 "용인과 청주 투자를 앞당겨도 계속 공급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며 신규 단지 조성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실제 메모리 반도체 수급 상황은 '비상'에 가깝다. SK하이닉스가 올해 생산 물량을 두고 "사실상 완판"이라 밝혔을 만큼 공급이 빠듯한 상황이다. 품귀가 심해지자 가격은 급등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조사 전문 기관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가격은 1년 새 약 10배 뛰었다. 양사의 영업이익이 '단군 이래 최고' 수준으로 부푼 이유다.

양사의 곳간은 그만큼 두둑해졌다. 올해 1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57조2000억원, SK하이닉스는 37조6103억원을 기록했다. 전망치는 갈수록 높아진다. 최소 2027년까지는 반도체 대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라, 그때까지 양사의 영업이익은 합산 최대 1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쉽게 말해 새 공장을 지을 실탄이 이미 확보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정부가 제시한 강력한 인센티브도 투자 결정에 힘을 실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요금을 핵심으로 꼽는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막대한 전력을 쓰는 만큼 전기료 부담이 상당한데, 정부는 호남 유치 조건으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카드를 꺼냈다. 이 대통령은 "전기요금에 있어 확실히 메리트가 생기도록 하겠다"며 "반도체특별법을 통한 지방 우선 지원으로 정부가 확실히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또 기존 10년 이상 소요되던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하는 인허가 패스트트랙도 도입해 기업의 사업 착수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인프라 부담을 정부가 떠안아주는 구조여서, 기업으로선 투자에 응할 유인이 충분했던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에게 인사하는 모습. 왼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先인프라 後투자…"관건은 속도"

다만 기업들은 대규모 반도체 투자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정부의 '호남행' 구상에는 분명한 선결 조건을 달았다. SK는 호남권 클러스터의 구체적 부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이사회 승인 등을 거쳐 투자를 단계적으로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 역시 "시장 수요를 면밀히 관측해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인프라 등 제반 조건이 갖춰지는 속도에 맞춰 투자 보폭을 조절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삼성은 '호남 특혜' 논란을 의식한 듯 '지역 균형 발전' 카드를 함께 꺼내 들었다. 이재용 회장은 광주를 신규 반도체 단지 후보지로 지목하는 동시에, HBM(고대역폭메모리)·첨단 패키징은 충청권, AI 데이터센터·로봇은 경북 구미, 전고체 배터리·ESS(에너지저장장치)는 울산, 패키지 기판은 부산, 바이오는 인천 송도에 배치하는 전국 단위의 산업 지도를 제시했다. 정부의 호남 구상에 화답하되 광주만 단독 부각하지 않음으로써, 특정 지역 몰아주기라는 정치적 부담을 분산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체적으로 호남 지역의 인프라 확충을 강하게 요구하는 발언도 나왔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전력과 용수는 AI 시대 가장 중요한 산업 인프라"라며 "국가가 직접 산단까지 공급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도 "지방 사업장에는 많은 협력업체가 동행하는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교육"이라며 "우수한 초·중·고등학교가 있어야 정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주 여건 개선을 필수 과제로 꼽았다.

결국 이번 투자 구상이 화려한 청사진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의 후속 조치 속도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공장 가동의 필수 요소인 전력 및 용수 이슈에 대해 정부가 호남권이 하루 100만 톤 용수 공급망, 용인 산단 전력망 지중화 및 송배전망 신속 구축을 공언했다"며 "향후 정부의 예산 집행 속도와 지자체 간 인허가 조율 과정이 이번 반도체 투자의 실질적 실행 가능성을 결정할 핵심 변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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