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사라져도 나무는 남았다···하제마을 ‘마지막 주민’ 600년 팽나무[현장]

김창효 기자 2026. 7. 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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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100여명 모여 ‘66회 팽팽문화제’
천연기념물 지정 이끌어낸 시민들 연대
황석영 소설 <할매>로 피어난 상실의 기록
문정현 신부 “이 땅의 생명 끝까지 지켜낼 것”
27일 전북 군산시 옥서면 옛 하제마을 천연기념물 팽나무 앞에서 열린 제66회 팽팽문화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은 사라진 하제마을의 기억을 되새기며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기원했다. 김창효 선임기자

전북 군산에는 상제·중제·하제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들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섬이었는데, 일제가 비행장을 조성하면서 상제마을이 사라지더니 해방 이후 미군기지가 들어서며 중제마을도 자취를 감췄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하제마을 역시 미군기지 탄약고 확장과 새만금 방조제 건설로 포구 기능을 잃었다. 이주 대상이 된 664가구는 2009년부터 마을을 떠났고 하제마을은 결국 폐촌이 됐다.

지난달 27일 군산 옥서면 옛 하제마을. 미 공군기지 인근 철조망과 무성한 잡초 사이로 수령 600년 된 팽나무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팽나무 밑동에는 깊은 홈이 남아 있다. 마을 앞이 포구였던 시절, 주민들이 배를 묶어두며 생긴 흔적이다. 나무는 마을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지켜봐 왔다.

팽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는 ‘팽팽문화제’로, 이날 66회를 맞았다. ‘지난 600년, 나아갈 600년! 팽나무 아래, 하늘에 고하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문화제는 개발과 군사시설 확장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연과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27일 제66회 팽팽문화제 참가자들이 김제 동학농민혁명 원평집강소가 마련한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2020년 10월 시작한 팽팽문화제는 기상 악화로 열리지 못한 두 차례를 제외하고 매달 이어지고 있다. 팽팽문화제 조직위원회가 주축이 돼 전북작가회의 등이 함께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팽나무와 숲의 안녕을 비는 고천문 낭독으로 막을 올렸으며, 시인들의 시 낭송과 시민 발언 등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새만금 개발로 훼손된 생태계와 밀려난 생명의 존재를 되짚으며 사라진 마을의 기억을 나눴다.

하제마을 역사를 기록해 온 문화예술인들도 함께했다. 영화 <수라>를 연출한 황윤 감독은 “미군기지 탄약고와 인접했다는 이유로 수천 명 주민이 삶의 터전을 떠나면서 마을은 사실상 사라졌다”며 “지금은 600년 된 팽나무가 마지막 주민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오는 9월 공개 예정인 영화 <하제>(가제)에도 마을과 팽나무 이야기를 담았다”며 “팽팽문화제를 통해 하제마을 역사와 현실이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팽나무는 미군 공여지 안에 홀로 남아 고사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자 시민단체와 군산시의회, 시민 8000여명의 서명운동에 힘입어 2024년 10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문정현 신부가 27일 전북 군산시 옥서면 옛 하제마을에서 열린 제66회 팽팽문화제에 참석해 하제 팽나무 보존의 의미와 생명·평화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하제마을 팽나무는 황석영 작가의 소설 <할매>를 통해서도 세상에 알려졌다. 이 소설은 팽나무를 화자로 내세워 간척과 전쟁, 군사기지 확장, 개발로 사라져간 마을의 역사를 그렸다. 여기서 할매는 사람이 아닌, 600년 넘게 하제마을을 지켜온 팽나무를 가리킨다.

소설은 한 신부가 철조망 안에 남은 팽나무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신부의 실제 모델이 ‘길 위의 사제’로 불리는 문정현 신부로, 그는 1997년부터 환경·평화운동가들과 함께 하제마을 보존 활동에 참여해왔다. 문 신부는 이날 문화제에서 “마을이 사라진 뒤에야 이 팽나무 가치를 알게 됐다”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만큼 앞으로도 잘 보존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거문고와 가야금 병창 공연, 간디학교 몸짓패 ‘펴라’ 춤 공연,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의 플루트 연주가 이어졌다. 문화예술계 인사와 시민 1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김제 동학농민혁명 원평집강소가 마련한 음식을 나누며 연대의 의미를 되새겼다. 행사장에는 팽나무를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정동철 전북작가회의 회장은 “팽팽문화제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라며 “개발 논리 속에서 위협받는 자연과 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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