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로 채운 매대서 직원들은 “죄송합니다”…홈플 월드컵점은 지금 [르포]
5달째 대금 묶인 입점주 결국 폐업
“홈플러스 파산 땐 연쇄 실업 위기”

[헤럴드경제=박연수 기자] “5번 코너인데, 제품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월드컵점. 고객들은 우유와 휴지 등 생필품 위치를 물었다. 직원들은 상품 진열 위치를 안내하면서도 “재고가 없을 수도 있다”며 먼저 사과했다. 한 직원은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10여분 동안 세 차례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상품이 없어도 직원들은 매대 앞을 지켰다. 물건이 비어 있어도 현장을 지켜야 하는 직원들의 고충은 본사 방침 탓이다. 매대를 지키던 A씨는 “오전 조회에서는 서비스 점수가 낮다고 지적을 받기도 한다”며 “물건이 없어 고객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는데 그 스트레스까지 모두 현장에서 감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원들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비어 있는 진열대를 최대한 감추기 위해 남아 있는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앞으로 당겨 진열하는 작업이 반복됐다. 직원들은 본사에서 빈 매대가 보이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직원은 “상품이 없는데도 계속 진열을 바꿔야 한다”며 “보여주기식 진열을 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매장에서 만난 직원들의 근속연수는 대부분 20년을 훌쩍 넘었다. 아이들 학원비를 벌기 위해 입사한 사람도 있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회사를 지켜온 사람도 있었다. 협력업체 직원으로 시작해 직영 직원이 된 이도 있었다. 저마다 사연은 달랐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은 같았다.
23년째 홈플러스에서 일하고 있는 B씨는 “나이 탓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다”며 “월급이 200만원인데 제때 안 들어오고, 언제 문을 닫을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22년 근무한 김모 씨도 “내년이 정년이라 버티고 있지만, 이제 모르겠다”며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홈플러스마트산업노동조합에 따르면 현재 홈플러스를 지키는 사람은 1만2000여명이다. 기업회생 전에는 2만명에 달했지만, 희망퇴직과 점포 축소를 거치며 계속 감소했다. 협력업체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상품 진열과 판촉행사가 줄면서 현장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입점업체 부담은 더 가중됐다. 월드컵점에서 11년째 매장을 운영해 온 한 입점업체는 이날 영업을 종료했다. 매장 관계자는 “5개월째 판매대금을 정산받지 못했다”며 “매장이 사라지면서 실업자가 됐다”고 했다. 홈플러스 POS를 이용하면 정산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 자체 POS를 설치해 운영하는 입점업체도 있었다.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는 지난달 30일 법원이 정한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 사흘을 앞두고 수정 회생계획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이 요구한 2000억원 조달 계획은 감감무소식이다. 홈플러스는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에 2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DIP) 대출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메리츠 측은 1000억원 대출을 조건으로 나머지 자금은 MBK가 마련하라는 입장으로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홈플러스 일반노동조합은 “수많은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생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유보해 달라”면서 “MBK와 메리츠금융이 책임 공방을 멈추고 책임 있는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 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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