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숙 총리의 '샤라웃'…코르티스에 중·장년이 '죄책감' 잊고 빠져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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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사리지 않고 신호등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 것에 맞춰서 과감하게 울타리를 넘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코르티스 음악을 듣는 중·장년은 예상외로 많았다. K팝의 주 소비층이 20, 30대인 점과 데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인 그룹이란 점을 고려하면 코르티스를 향한 중·장년의 높은 관심은 이례적이다.
중·장년의 호기심을 자극한 코르티스의 '레드 레드'는 5월 한 달 동안 멜론을 비롯해 지니뮤직 등 8개 음원 플랫폼에서 K팝 아이돌 그룹 노래 중 가장 많이 재생(써클차트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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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에서 코르티스로... 정치인들이 바꾼 K팝 좌표 <1>

"몸 사리지 않고 신호등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 것에 맞춰서 과감하게 울타리를 넘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성숙 국무총리가 지난달 8일 인사청문회 준비 첫 출근길에 밝힌 각오다. K팝 그룹 코르티스의 노래 '레드 레드'를 인용했다. 가사 중 "도가니 사리기 레드 레드, 신호등 바뀌었어 그린 그린, 넘어가 울타리 그린 그린"이란 대목이었다. '레드 레드'는 코르티스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그린'에, 버려야 할 태도를 '레드'에 빗대 풀어낸 노래다.
한성숙 총리가 이 노래를 언급한 사연은 이랬다. 한 총리는 "동생이 요즘 코르티스 팬이어서 (나도 그) 노래를 듣고 있다"며 이 곡에 주목한 계기를 설명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해 대선 출마 선언을 할 때 1990년대를 풍미한 가수 서태지를 언급하며 '시대교체'의 표상으로 활용했다면, 한 총리는 지난해 데뷔한 신인 그룹 코르티스를 소환해 '행정 칸막이를 허물겠다'는 다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이 변화를 부르짖으며 차용하는 대중문화 좌표가 기성세대의 추억(서태지)에서 현 K팝(코르티스)으로 옮겨간 셈이다.

한 총리는 85학번이다. 그의 나이(59세)를 고려하면 코르티스 노래를 들었다는 동생도 40~50대일 가능성이 크다. 코르티스는 방탄소년단처럼 그룹명이 널리 알려진 팀은 아니다. 그런데도 국무총리(한성숙)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밝힌 첫 메시지에서 K팝 신인 그룹을 사실상 '샤라웃(shout out)'한 것이다. '샤라웃'은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감사와 존중을 표현한다는 의미다. 이는 코르티스가 더 이상 10대 팬덤만의 그룹이 아니란 점을 보여준다. 코르티스는 시대 변화를 설명하는 문화적 언어로 활용됐다. 환갑을 앞둔 국무총리와 그의 동생이 즐겨 듣고 삶의 방향을 떠올리게 한 K팝이라니. 중·장년 사이에서 코르티스를 둘러싸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감옥 갈까봐 몰래" '늙크크'의 반란
코르티스 음악을 듣는 중·장년은 예상외로 많았다.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에서 일간(6월 22일 기준) 세대별 스트리밍(재생) 비중을 확인해 보니, '레드 레드'는 40대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였다. 40~60대의 재생 비중도 43%에 달했다. K팝의 주 소비층이 20, 30대인 점과 데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인 그룹이란 점을 고려하면 코르티스를 향한 중·장년의 높은 관심은 이례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중·장년의 '코르티스 앓이' 고백들이 굴비 엮이듯 줄줄이 올라왔다. "(그룹 멤버인) 건호와 성현, 내 첫째 딸과 동갑(17세)이다. 딸들과 같이 코르티스 덕질 중"이라거나 "'늙크크'라고 놀리는 아들도 이겨내고 성현 덕질 중"이란 식이었다. '늙크크'는 젊은 세대의 문화적 코드를 이해 못 하는 중·장년을 일컫는 말로 '영크크'의 반대말로 쓰인다. '영크크'는 젊고 유행에 발 빠른 사람이란 뜻으로, 코르티스 노래 '영 크리에이터 크루' 가사 속 줄임말인 '영크크'에서 파생됐다.
코르티스 다섯 멤버의 평균 나이는 18세. 일부 장년 팬들에겐 손주 또래에 가까운 나이다. 그래서일까. "감옥 갈까 봐 몰래 (코르티스 '레드레드' 뮤직비디오를) 본다"는 반응도 나왔다. 중·장년 팬들이 자식 혹은 손주뻘 되는 K팝 아이돌그룹을 좋아하는 것을 괜스레 민망해하면서도 '덕질'을 멈출 수 없는 심리를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다.
코르티스도 '늙크크'의 이런 관심을 신기하게 여겼다. 멤버 성현은 "홍대랑 동묘에선 한 (길거리) 게릴라 공연에선 팬분들만 계신 게 아니다 보니 (관객들이) '저희 스타일 대로 놀아주실까?'란 걱정을 했다"며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한 손을 들고 뛰고 계셔서 가서 손을 잡기도 했다"고 말했다.
중·장년의 호기심을 자극한 코르티스의 '레드 레드'는 5월 한 달 동안 멜론을 비롯해 지니뮤직 등 8개 음원 플랫폼에서 K팝 아이돌 그룹 노래 중 가장 많이 재생(써클차트 집계)됐다. 10, 20대에서 시작된 입소문이 중·장년으로까지 퍼진 결과다.

"분절되지 않고 쭉 들려" K팝 '세가지 공식' 지운 변화
폭넓은 인기의 비결은 뭘까. 코르티스의 음악엔 K팝의 오랜 흥행 공식처럼 여겨졌던 '세 가지'가 없다. ①복잡다단한 세계관 ②신비주의 ③퍼포먼스를 부각하기 위해 육중한 비트와 금속성 소리로 중무장한 '쇠맛'이다.
무거운 세계관이 사라지자 음악은 한결 가벼워졌다. 날카롭고 차가운 쇳소리 대신 코르티스 음악엔 옛 오락실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뿅뿅 거리는 아날로그 전자 음악(노래 '아사이'·'고!')이 흐른다. "팔랑귀 팔랑귀, 눈치나 살피기"('레드 레드'), "요즘 왜 안 오니? 섭하신 동묘 할머니"('패션')처럼 랩도 어렵지 않고 친근하다. 곡 구성도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기존 K팝은 멤버들을 한 명씩 돌아가면서 보여주려다 보니 곡 구성이 너무 분절돼 있잖아요. 그래서 퍼포먼스로 보는 건 몰라도 음악으로 듣기에는 몰입이 좀처럼 안 됐죠. 코르티스 '레드 레드'는 일단 하나의 노래처럼 쭉 들려요."(45세 '늙크크' 고모씨)
중·장년이 코르티스 음악을 듣기 편하게 여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추억을 자극하는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세대 간 접점은 더욱 넓어졌다. 코르티스는 서울 동묘 구제 시장에서 막 집어 온 듯한 예스러운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고, 오래된 달력과 누런 차림표 등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노포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멤버들 역시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 유행했던 음악에 영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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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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