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 선입견·집단적 매도… 한 인간을 무너뜨린 마녀사냥[소개합니다]

2026. 7. 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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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건대, 그간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은 나의 음악적 관심 밖에 머물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이 작품을 마주한 순간, 브리튼의 음악은 나를 단숨에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인간의 결함과 별개로, 공동체가 한 개인을 집단적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비극은 이미 시작된다.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그 불편하고도 묵직한 질문을 객석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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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합니다 -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를 보고
서울 서초동 오페라극장의 ‘피터 그라임스’ 안내판 앞에서 필자가 포즈를 취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간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은 나의 음악적 관심 밖에 머물던 인물이었다. 20세기 음악 특유의 화성과 현대적 어법이 낯설었던 탓에, 그의 대표작 ‘피터 그라임스’ 역시 호기심의 영역에만 묻어두고 있었다. 그러나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이 작품을 마주한 순간, 브리튼의 음악은 나를 단숨에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브리튼의 선율은 단순한 미적 흐름을 넘어, 영어의 억양과 인물의 심리를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한 편의 입체적인 독백과도 같다. 인물의 내면과 극적 긴장감을 무대 전체로 증폭시키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묘사다. 특히 프롤로그 초반부터 되풀이되는 현악기의 순환 음형은 압권이었다. 단순한 청각적 자극을 넘어 무대를 지배하는 거친 파도와 끝없이 흔들리는 바다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바다는 그라임스를 압박하는 공동체와 내면의 불안을 동시에 투영한다.

전통적 조성감과 현대적 화성 어법 사이의 긴장을 절묘하게 조율하면서도 전체 구조의 안정감을 유지하는 모습에서, 브리튼이 20세기 오페라를 새롭게 정의한 작곡가라는 평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음악적 완성도가 이토록 높았던 반면, 육중한 선박 구조물을 중심에 둔 무대와 합창단의 안무는 음악적 역동성과 분출하는 에너지를 충분히 시각화하지 못했다. 금관악기가 포효하며 바다의 소용돌이를 몰아치는 대목에서 군중의 안무는 진부하고 어설펐다. 음악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무대가 따라가지 못했다. 그 간극을 메운 것은 성악가들과 연주자들의 기량이었다.

위너오페라합창단은 단순한 군중이 아닌, 피터를 둘러싼 공동체의 서늘한 압박과 집단적 폭력을 온몸으로 구현한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알렉산더 조엘이 이끄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어떤 찬사도 부족할 만큼 빈틈이 없었다. 특히 2막에서 스네어 드럼의 긴장감 넘치는 리듬을 타고 합창과 함께 고조되는 행진곡풍의 음악은 숨을 조여왔다. 그 서슬 퍼런 사운드는 마치 작곡가 브리튼이 군중 심리를 향해 던지는 매서운 경고처럼 들렸다.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는 명백하다. 사랑하는 이와 소박한 가정을 꾸리려 했던 어부 피터는 섣부른 판단과 근거 없는 선입견, 집단적 매도 속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피터 역시 완전무결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결함과 별개로, 공동체가 한 개인을 집단적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비극은 이미 시작된다. 군중의 외침이 높아질수록 마녀사냥의 잔혹한 본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피터는 끝내 바다로 나아가 사라진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의 나를 떠올렸다. 의도와 무관한 오해와 왜곡된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의심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피터의 파멸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비로소 그 시간을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거친 삶의 바다에 완벽한 평화의 항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단 하나일지 모른다. 군중의 목소리에 휩쓸리기보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려는 태도.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그 불편하고도 묵직한 질문을 객석에 남긴다.

김윤정(세종예술고 음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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