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 강진 르포] "쉿 조용히…아기 울음소리 들리나요?"
아기 발견했는지 잠시 조용…곧이어 크레인 소리만 돌아가
닷새째 밤샘 작업…자원봉사자들은 음식 만들어 나눠줘
금 간 건물 탓에 아파트 주민들은 '텐트 살이'

(카라카스=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우렁찬 크레인 소리, 콘크리트를 타격하는 해머 소리, 건물 잔해를 옮기는 자원봉사자들의 부지런한 발걸음 소리, 이곳저곳에서 구슬프게, 하지만 간헐적으로 들리는 울음소리, '치지직', 붉은빛을 밝히며 돌을 일직선으로 자르는 구조 대원의 용접 소리.
혼란스럽고, 정신없이 시끄러운 지진 피해복구 현장에서, 이 모든 소음과 탄식, 회한과 울음소리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빛처럼, 정적 속으로 순식간에 스며들어 갔다.
"잠시 조용히 해 주세요. 여기 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곧이어 구조대원들은 녹색 담요를 건물 잔해 옆에 깔아두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쥐 죽은 듯이 구조대의 작업을 지켜봤다. 하지만 희망은 믿을 수 없이 가까운 것 같다가도, 알고 보면 한 없이 멀리 있었다. 지진 같은 무소불위의 자연재해 앞에서 작은 희망을 품는 것조차 인간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수군거렸고, 크레인은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녹색 담요는 현장에서 치워졌다.

29일(현지시간) 연쇄 지진으로 무너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산베르나디노 지역의 '에디피시오 리타' 앞. 사고 발생 후 닷새가 지나가는 이날 밤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여전히 자원봉사자와 구조대원들은 건물 잔해를 치우며 생존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환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원봉사자인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씨는 "5일째 밤샘 작업 중인데 잔해 속에서 20명의 시신만 끄집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물이 붕괴한 지 닷새째여서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무너진 에디피시오 리타는 1967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로 현지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1967년 카라카스에 큰 지진이 발생한 후 물탱크를 옥상에 놓는 걸 당국이 금지했는데, 옥상에 있었던 걸 보니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건물 잔해 가장 위에는 물탱크가 반쯤은 부서진 채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에디피시오 리타 옆 건물들의 사정도 그리 나아 보이지 않았다. 이들 건물에는 '출입 금지'라고 쓰인 노란 선이 출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건물 외벽은 심하게 훼손됐고, 주민들은 모두 대피해 빈 건물로 남아 있었다. 건물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선 텐트촌이 형성돼 있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대피 주민은 "지금 너무 힘들지만, 여기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 위해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힘이 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그의 가족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원봉사자들은 이 동네 인근에만 수백 명에 이르렀다. 밤 10시가 다가오는 시간임에도 이들은 바리바리 싸 온 음식을 구조대와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 그리고 현장에서 무엇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눠주고 있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평소보다 3배쯤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무너진 에디피시오 리타 주변은 온통 금이 간 건물들투성이였고, 텐트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알타미라 광장과 그 주변에선 경찰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한 경찰은 "건물들이 무너질 수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한국인 한 가족이 살던 아파트도 붕괴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이 가족은 곧 이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아파트에서 한 블록만 가면 '알타미라' 지역에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22층짜리 건물 '레지덴시아 페투니아'가 있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이 건물의 출입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었으나 베네수엘라 지진 피해 소식을 알리기 위해 머나먼 길을 왔다고 하니, 고민 끝에 안으로 안내했다.
건물은 이미 연쇄 지진 탓에 그 형태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흙더미와 돌 잔해, 그리고 한때 건물의 뼈대 역할을 했던 앙상한 철근들만 옛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드러내고 있었다. 이 거대한 잔해 앞에서 굴착기도 무용지물로 보였다. 일부 구조대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압도된 듯, 건물 잔해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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