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홈플러스…“최저시급 노동자인 우리, 버림받는 느낌”

장현은 기자 2026. 7. 1. 05: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잠정 영업중단 뒤 폐업이 결정된 인천 서구 홈플러스 가좌점 1층 매장에서 29일 영업 종료롤 모른채 방문한 손님이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지난 29일 오후 인천 서구 홈플러스 가좌점. 손님으로 북적였던 마트는 비닐천으로 입구를 막았고, 매장 내 임대 업체 몇 곳만 불을 밝혔다. 4층 옥외 주차장에는 승용차 한대만 덩그러니 서 있다. 지하 1층 주차장은 아예 문을 닫았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풍경 속에서 친숙한 ‘홈플러스 로고송’이 홀로 정적을 깨고 흘러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가좌점이 마지막 영업을 했던 지난 5월9일, 한 손님이 건넨 인사에 추은숙(57)씨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가좌점을 포함한 전국 37개 홈플러스 매장은 다음날부터 잠정 영업 중단을 시작했고, 이후 36개 매장은 결국 폐점이 결정됐다. 몇몇 직원은 다른 점포로 전환 배치를 신청했다. 추씨는 사표를 냈다. 추씨의 정식 퇴사일은 7월3일로 정해졌다. 법원이 정한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이다. 전환 배치된 동료들을 포함해 홈플러스 직영 직원(2만여명)과 협력업체 직원, 입점업체 관계자 등 총 8만여명(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추산)의 앞날도 풍전등화다.

추씨는 가좌점 비식품 매장에서 15년 동안 상품 판매, 재고 관리, 계산 업무 등을 했다. 세금 떼고 180만원, 최저임금 수준을 벌었다. 홀로 가족을 부양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지만, 버티고 조금씩은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현금 서비스 대출 빚 2천만원을 갚았고, 4년 전부터는 적게나마 적금도 시작했다.

2015년 ‘엠비케이(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마트가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느낌은 여실했다. 인수 자금 7조2천억원 가운데 4조3천억원을 대출로 조달한 엠비케이는 혁신을 앞세운 다른 대형마트와 달리 빚을 갚는 데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 3월, 홈플러스는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추씨에게도 곧장 타격이 됐다. 올해부터는 월급이 아예 한두달씩 늦게 지급됐다. 4월 월급 75%와 5월 월급은 지난 23일 나왔다.

지연된 월급은 일상을 구멍 냈다.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퇴근 후 맥주를 끊은 지 두달 됐다. 낡은 에어컨은 전기세 걱정에 올여름 한번만 틀었다. 추씨는 “줄이다 보니 줄일 수 있는 게 얼마 없는 것도 처참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대출을 다시 받았다. 4월부터 딸과 자신 명의로 된 보험에서 270만원가량 약관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써야 했다. “돌려막기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그 생활로 돌아가는 게 죽기보다 싫은 거예요.”

지난 5월 잠정 영업 중단 뒤 폐업이 결정된 인천 서구 홈플러스 가좌점 내부가 29일 오후 텅 비어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추씨와 같은 홈플러스 직영 직원 2만여명 중 5500여명(30일 기준)은 이미 회사를 떠났다. 남은 직원들도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홈플러스 동수원점에서 일하던 박경애(58)씨는 점포가 폐점하며 7월부터 다른 점포에서 일하기로 했다. 박씨는 “다른 점포에 가서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달 벌어 한달 사는데, 월급이 밀리는 건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라며 “회사가 건강보험료를 못 내 대출까지 막히는 상황이 벌어지자 퇴사를 결정한 직원도 많다”고 전했다.

대형마트 폐점은 단지 직원들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가좌점 내 임대 매장을 운영하는 ㄱ씨는 “홈플러스 매장 안에 있던 약국도 병원도 다 문을 닫을 것”이라며 “임대 점포들도 권리금을 못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홈플러스는 재무구조 악화를 타개하려 매장 내 유휴 공간을 임대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펴왔다.

마트 주변 동네들도 ‘공동화’를 걱정했다. 가좌점 주변에서 9년째 장사해온 이아무개씨는 “원래 주택가에서 장사하다가 임대료 비싸게 내고 옮긴 이유가 홈플러스 유동인구 때문”이라며 “휴업 이후로 주말에 점포 앞에 서 있던 차량도 사라지고, 손님이 확실히 줄었다”고 전했다. 추씨는 “엄마와 함께 온 고등학생이 ‘없어지면 안 돼요. 제 추억이 담긴 곳이에요’ 하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50일 가까이 기업 정상화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방문했지만 누구도 책임 있는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노조는 30일 법원 요청에 따라 “회생계획안 제출 및 가결 기한을 추가로 연장해 달라”는 내용 등을 담은 의견서를 냈다.

일터를 떠난 추씨도 “마음 둘 데를 찾지 못해” 농성장을 찾는다. “‘최저시급 노동자인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버림받는 느낌이 듭니다. 많이 화가 나는데, 그래도 농성장에서 피케팅하는 동안은 여기에만 전념할 수 있어요. 다른 동료들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하면, 덥고 굶더라도 여기 있는 게 마음 편해요.”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