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막힌 트럼프의 ‘반이민 상징’…보수 대법원, 출생 시민권 지켜내

김원철 기자 2026. 7. 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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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대통령 행정명령만으론
헌법상 시민권 범위 바꿀 수 없어’
지난해 9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출생 시민권 제한 시도와 관련한 법적 분쟁에서 대법원이 취한 조치에 대해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 시민권’을 금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제동을 건 30일(현지시각) 연방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출생 시민권 자체보다, 대통령이 행정명령만으로 헌법상 시민권의 범위를 바꿀 수 있느냐다. 연방대법원은 그럴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이민정책의 상징처럼 내세운 출생 시민권 제한이 보수 우위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출생 시민권은 미국 이민정책 논쟁에서 오래된 쟁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체류자나 임시 체류자의 자녀에게까지 자동 시민권을 주는 제도가 불법 이민과 이른바 ‘원정출산’을 부추긴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대법원 다수 의견은 수정헌법 14조의 문언과 1898년 ‘미국 대 웡 김 아크’ 판례가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폭넓게 시민권을 인정해온 법적 전통을 뒷받침한다고 봤다. 외교관 자녀 등 극히 제한된 예외를 빼면, 부모의 체류 신분만으로 미국 출생자의 시민권을 부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정치적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첫날 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이민정책 전환의 신호탄으로 삼았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으로 대법원 구두변론에도 직접 출석했다. 그만큼 상징성이 큰 사안이었지만, 대법원은 행정부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에이미 코니 배럿, 브렛 캐버노 대법관 등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함께 다수의견에 선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대법관들 중 일부도 행정부 편에 서지 않았다.

다만 이번 판결이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 전체를 멈춰 세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은 최근 다른 사건들에서는 대통령의 독립기관장 해임권 확대 등 행정권 강화 흐름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이번 결정은 그 흐름 속에서도 시민권처럼 헌법과 장기 판례에 뿌리내린 권리는 대통령의 일방적 명령으로 뒤집기 어렵다는 한계를 확인한 판결에 가깝다. 시엔엔은 캐버노 대법관이 별도 의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현행 연방법에 어긋난다’는 결론에는 동의했지만, 헌법이 반드시 그런 해석만을 요구하는지는 별도로 판단한 점에 주목하며, 향후 의회가 입법으로 시민권 범위를 조정하려 할 경우 다시 논쟁이 벌어질 여지를 남겼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출생 시민권 자체를 흔들기보다는 국경 통제, 체류 단속, 비자 심사 강화 등 다른 수단으로 이민 억제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출생 시민권 제한은 앞으로도 의회 입법이나 헌법 개정 없이는 추진하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비비시(BBC)는 “대법원이 재편된 뒤 트럼프 대통령 정치 경력의 핵심 약속 중 하나를 기각한 판결”이라며 “수정헌법 제14조가 보장하는 출생 시민권은 대통령의 펜 놀림 한 번으로 무효화될 수 없다는 분명한 제도적 질책”이라고 평가했다.

30일 미국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밖에서 한 기자가 뛰어가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의 출생 시민권을 제한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를 기각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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