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주류세력 교체인가… 외교관·군인·검사의 위기
외교부도 흔들리며 사기 저하돼
능력보다 ‘적폐’ 여부가 인사 기준
“공관장은 주민센터 동장” 논란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공직 사회가 전에 없던 변화를 겪고 있다. 청와대가 중앙부처의 국장급 인사까지 관여하며 장관의 인사권이 사실상 소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찰청장이 대통령 취임 1년 넘게 공석이고, 국가수사본부장도 대행 체제에 돌입했다. 역대 모든 정권이 공직 사회 개혁을 내세우곤 했는데 현 정부의 인사는 범위와 속도, 방식에서 이전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재명 정부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조직으로는 단연 검찰과 군(軍)이 꼽힌다. 이 대통령을 대장동, 대북 송금 사건 등으로 기소한 검찰은 조직 자체가 형해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깡패 검찰”이라고 외치고 있어 보완 수사권도 끝내 갖지 못할 전망이다.
‘윤석열 비상 계엄’에 어쩔 수 없이 동원된 군은 ‘숙군(肅軍)’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대적인 인사 태풍이 불고 있다. 명령에 따라 잠깐 ‘계엄 버스’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역량 있는 지휘관들이 고초를 겪는다.
검사,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받는 고통만큼은 아니지만 외교부도 정상이 아니다. 지난해 외교부 1차관에 전임자보다 11기수 아래 외교관과 큰 공직 경험이 없는 40대 교수가 2차관에 임명되면서 파란이 시작됐다. 청와대는 윤 정부에서 임명된 특임 공관장 30여 명을 일시에 모두 귀임시켰다. 이에 따라 미리 귀임한 주중 대사를 포함, 미국·일본·중국·러시아 4강 주재 대사가 동시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외교부는 그동안 차관보급 이상의 보직을 맡았던 능력 있는 간부들이 유엔 대표부, 영국·프랑스·독일 등에 부임, 고급 정보들을 뽑아냈지만 이런 전통은 철저히 무시됐다. 정치적 배려에 따라 외부 인사들과 외교부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교관들이 대거 임명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외교부 주변의 한 빌딩에는 윤석열 정부에서 고위직으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직을 받지 못한 외교관 수십 명이 대기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대사 신임장 수여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은 외교관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달 초 이 대통령의 유럽연합(EU) 방문 직전 브뤼셀 주재 대사가 교체되면서 갓 부임한 신임 대사가 급히 정상 외교를 준비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특히 이 대통령이 벨기에 방문 중 “재외 공관장의 역할은 주민자치센터 동장과 비슷하다”고 발언, 외교관들의 사기가 많이 꺾였다. 영사 업무 강화도 중요하지만, 국가를 대표해 협상하고 주요 정보를 수집하는 대사의 본질적인 역할을 경시한 비유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 대통령이 외교부의 주요 업무를 의전과 영사로 한정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현직 고위 간부가 후배들에게 “(외교부)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때 빨리 나가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도, 군도, 외교부도 시대 변화에 맞는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과 전문성의 부정은 또 다른 문제다. 결국 특정 조직 전체를 적폐로 규정하고, ‘우리 편’을 심는 방식의 인적 교체를 감행하는 배경엔 공무원 사회의 ‘주류 세력 교체’라는 정치적 구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외교관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는 대외 관계가 약해지고, 군인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안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의 해체는 결국 ‘범죄자들 전성시대’로 이어지게 돼 있다.
국가의 핵심 전문 조직은 어느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중요한 자산이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조직을 흔드는 인사가 반복된다면, 그 대가는 결국 대한민국 국력과 국가 경쟁력 약화로 되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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