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응원 논란'은 틀렸다

이슬기 칼럼니스트 2026. 6.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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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미디어오늘 이슬기 칼럼니스트]

▲ YTN뉴스 '광주 학교에

충격적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당시 서울 배재고 더그아웃에서 나온 구호를 들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광주제일고를 맞아 결전을 치르던 배재고 선수들은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며 '응원'을 펼쳤다. 더그아웃 어디선가 “탱크데이”라는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

'충격'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이 사태가 주는 여러 황망함이 있다. 야구장 한복판에서나온 “스타벅스 가야지”는 지난 5월 스타벅스 코리아가 열었던 5·18 민주화운동과 고(故) 박종철 열사를 폄훼하는 내용의 '탱크데이' 이벤트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더군다나 메시지의 수신자로 광주제일고를 타기팅했다는 점에서 지역 혐오의 맥락을 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구호를 외치는 배재고 선수들의 기세등등함이다.

해당 경기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교 야구 대회의 왕중왕전이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될 만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공식 석상에서 소속 학교를 상징하는 유니폼을 입고, 단체로 바로 눈 앞의 상대를 향해 혐오 발화를 하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아연실색케 한다. 이에 대한 지적마저 대회 주최 측이나 배재고가 아닌 광주제일고 코칭스태프가 나서서 이뤄졌다는 것 또한 충격적이다. 혐오에 즉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피해 당사자의 항의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언론은 이 일을 대서특필했다. '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림'이라는 뜻의 '조롱'으로 응원을 수식하는 보도가 많았다. 그러나 5·18 당시 광주에서 자행된 무차별적 학살과 광주제일고가 갖는 당사자성을 감안했을 때 “스타벅스 가야지”를 단순 '놀림'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가벼운 태도다. 배재고 야구부를 '얼빠진'으로 수식하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는 틀린 표현이다. 당시 선수들의 행태는 '정신이 없어지다'라는 의미의 '얼빠진' 상태에서 한 일이라기엔 명확한 타깃이 있는 공격의 형태를 취했다.

가장 흔한 헤드라인은 '배재고 응원 구호 논란'이었다. 앞서 언급한 수식들 뒤에도 꼭꼭 '논란'이 따라 붙었다. 이는 이슈의 성격 규정을 회피하는 언론의 전형적인 태도다. 명백한 혐오성 이슈가 언론에 의해 '논란'으로 프레이밍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언론의 '논란'이라는 명명은 이슈에 담긴 피해·가해 구도를 지우고 이슈를 '온라인 설전'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표준국어대사전상 '논란'의 정의는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툼'이다. 맥락상 “스타벅스 가야지”가 지닌 의미나, 발화된 방식을 따져봤을 때 이것이 혐오성 공격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기 어렵다. 현재 여론의 향방도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툰다'는 의미의 논란과는 다르다.

▲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이 2021년 7월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을 마친 뒤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2021년 도쿄올림픽 당시 '양궁 3관왕' 안산 선수를 향한 공격들을 '논란'으로 무화시켰던 언론의 전적을 떠올리게 한다. 안 선수는 '쇼트커트' 머리를 했으며 특정 신조어를 사용하고 광주 출신이라는 등등의 이유로 “메달을 반납하라”는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당시 한국의 수많은 매체가 이를 '페미 논란'으로 명명한 것과 달리 로이터와 BBC 등의 외신은 이를 '온라인 학대'(online abuse)로 규정했다. 뉴욕타임스도 '공격(attack)', '학대'(abuse) 등의 단어를 써서 이것이 단순히 서로 다투는 일이 아닌 피해자 안산을 향한 안티 페미니스트들의 가해 행위임을 짚었다. 여성과 지역을 교차하는 혐오가 문제의 본질임은 물론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프로 야구 선수를 배출한 것으로 알려진 광주제일고는 5·18 직후 운동장이 계엄군에 점령되는 바람에 그 해 청룡기 대회에 불참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 계엄군은 선수들에 총검을 들이댔고, 야구부 소속이었던 선동열 선수의 아버지 선판규 씨가 군인들에 읍소해 겨우 피해를 막았다는 일화가 지금껏 선수들 증언으로 전해져온다(유튜브 채널 '전설의 타이거즈' 중). 광주제일고 선수들에게 5·18은 결코 남의 일일 수 없고, 이들을 향한 '스타벅스' 발언이 직접적 '공격'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벤트를 비롯한 혐오 발화가 공식 석상에서 조직적으로 흘러나오는 한편, 이에 대한 제재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정확한 현실 규정이 필수적이다.

혐오를 혐오라고 부르는 일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날 배재고의 응원은 '논란'이 될 수 없다. '배재고 지역 혐오 응원'이라 쓰고, 거기에 담긴 공격성을 명시하자. 그것이야말로 언론이 무책임하게 행해온 '논란'에의 관성을 딛고, 혐오에 관한 일벌백계를 꾀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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