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고생했으니 너도 해라?”…‘개천에서 용 난’ 이들이 사다리 걷어차는 이유 [후암동 논문 연구소]

장윤우 2026. 6. 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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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자신이 고생 끝에 힘겹게 성공이나 성취를 이뤄낸 사람일수록, 다음 사람의 고생을 줄여주는 행위를 오히려 더 완강히 반대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흔히 “나도 고생해 봤으니 그 심정을 안다”며 약자와 타인을 도울 것이라는 대중적 통념과 달리, 인간은 자신이 겪은 역경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다리를 걷어차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 저널 국제학술지 PNAS 넥서스(PNAS Nexus) 제5권 제6호에 홍콩중문대 경영대 미셸 윤선 김 교수, 미국 UC샌디에이고 라디경영대 아예렛 그니지 교수, 시카고대 부스경영대 알렉스 이마스 교수 공동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고생 끝에 얻은 성취를 보호하려는 인간의 심리 기전을 ‘사다리 걷어차기’ 효과로 명명하고, 가상의 실험실 환경과 실제 이민자 사회 데이터를 결합한 세 가지 정밀 실험을 통해 이 현상을 입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힘들게 올라온 사람일수록 후배에게 더 까칠하다

먼저 고생을 이겨낸 사람이 같은 고생을 겪는 타인에게 더 마음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정치인이나 구호단체가 모금이나 정책을 호소할 때 비슷한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을 앞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은 다르게 흘러간다. 자수성가한 사람일수록 부자로 태어난 사람보다 부의 재분배에 더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기존 연구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쪽은 의외로 최저임금보다 한 단계 위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123RF]

연구팀은 인간이 마주하는 역경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자연재해처럼 특정한 성공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우연한 고생’이고 두 번째는 의대 레지던트 과정처럼 그 고생 자체가 자격이나 성공을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목표를 위한 고생’이다.

연구팀이 세운 가설은 목표를 위한 고생을 겪은 사람일수록 그 고생이 자신이 이뤄낸 성취의 가치 안에 함께 녹아 있다고 봤다. 후배가 그 고생 없이 똑같은 결과를 얻으면, 자신이 어렵게 얻은 성취가 별것 아닌 일이 돼버린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똑같이 고생시켰는데 반응이 갈렸다

연구팀은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세 차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같은 히스패닉계 출신끼리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과 귀화한 시민의 이민 정책에 대한 생각을 비교했다. 귀화 시민들은 국경 통제나 입국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더 강하게 동의했다.

두 번째 실험은 거슬리는 소음을 들려주며 퍼즐을 풀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 집단에는 퍼즐을 풀면 토큰을 “받는다”고 안내했고, 다른 집단에는 토큰을 “번다”고 안내했다.

실험 결과, 똑같은 소음 고통을 겪었음에도 보상을 자신의 노력으로 ‘쟁취했다’고 믿은 수단적 역경 그룹은 다음 참가자를 위해 “소음을 제거해 주자”는 정책 제안에 찬성하는 비율이 훨씬 낮았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남이 쉽게 얻으면 내 가치가 떨어진다

세 번째 실험은 한층 직접적이었다. 참가자들에게 소음 속에서 7개의 퍼즐을 풀게 한 뒤 기념 티셔츠를 받을 수 있게하고 “다음 참가자들은 퍼즐을 1개만 풀어도 티셔츠를 준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고생해서 티셔츠를 얻었던 사람들은 자기가 얻을 티셔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렸다. 반면 바다 파도 소리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퍼즐을 풀었던 사람들은 다음 사람의 기준이 완화되든 말든 자신이 얻은 티셔츠의 가치를 같게 평가했다.

연구팀은 이 현상에 대해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낮춰 주는 조치가 내 성공의 희소성과 가치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심리적 방어 기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연구팀은 이 같은 심리가 이민 정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동아리 선배들이 후배들의 혹독한 신고식 문화를 유지하려는 것도, 의사들이 후배 레지던트의 고된 일을 줄여주는 데 반대하는 것도, 학자금을 이미 갚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학자금 탕감에 반대하는 것도 “나도 고생했으니 너도 해라”라는 심리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연구팀은 이 효과가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연구팀은 “고생은 본래 상황 탓이었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나중에 자신의 성취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다리 걷어차기 심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흔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논문

DOI : 10.1093/pnasnexus/pgag128

논문 정보 : Michelle Yoosun Kim, Ayelet Gneezy, Alex Imas, Pulling up the ladder: Enduring adversity increases opposition to reform, PNAS Nexus, Volume 5, Issue 6, June 2026, pgag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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