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짧은 바지, 바꿔 신은 신발…개성 만점 권순우의 윔블던 2회전 진출
- 윤용일 감독 “군 복무 영향 커…리턴·스트로크 압도”
- 주원홍 회장 “몸 상태 좋아지며 자신감 붙었다”
- 비트로 유니폼에 휠라 신발, 2회전 진출 상금 2억6000만 원

윔블던은 잔디코트만 까다로운 대회가 아닙니다. 복장도 까다롭습니다. 올잉글랜드클럽의 오랜 전통에 따라 선수들은 경기 때 흰색 의류를 입어야 합니다. 개성을 드러낼 공간이 크지 않은 무대입니다.
그 흰색 속에서 권순우(28)는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화려한 색깔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몸에 붙는 짧은 바지 때문이었습니다. 권순우는 평소에도 짧고 밀착되는 바지를 선호합니다. 움직임을 방해받지 않고, 다리 사용을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사실 짧은 바지가 윔블던에서 낯선 장면만은 아닙니다. 비외른 보리와 존 매켄로가 뛰던 1970~80년대 남자 테니스에서는 짧고 몸에 붙는 쇼츠가 표준에 가까웠습니다. 흐름이 바뀐 건 1990년대 이후였습니다. 농구에서 마이클 조던과 미시간대 '팹 파이브'를 거치며 무릎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반바지가 젊은 세대의 유행이 됐고, 그 영향은 테니스와 스트리트 패션으로도 번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권순우의 바지는 낯선 파격이라기보다, 한때 테니스 코트를 지배했던 짧은 쇼츠의 귀환에 가까웠습니다.

경기 내용은 흠잡을 데가 많지 않았습니다. 세계 랭킹 208위 권순우는 30일 윔블던 남자 단식 1회전에서 스페인의 마르틴 란달루세(60위)를 3-0(6-4, 6-3, 6-3)으로 눌렀습니다. 예선 3연승으로 본선에 오른 흐름을 첫 경기까지 이어갔습니다. 1회전 승리로 2회전 진출 상금 12만6000파운드(약 2억6000만 원)를 확보했습니다.
윤용일 대한테니스협회 미래 국가대표 전임감독은 "1회전은 거의 완벽했다고 보입니다. 리턴이 워낙 좋았고 스트로크 싸움에서도 압도하네요"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군대 가서 몸이 좋아진 데 따른 자신감이 커진 것 같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농담처럼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바지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도 권순우의 몸 상태에 주목했습니다. 주 회장은 "권순우가 군 복무를 하면서 몸 상태가 아주 좋아졌다. 최상의 컨디션에 따른 자신감이 플레이에서 느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주 회장은 경기 후 권순우와 코치를 초청해 식사를 같이 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군체육부대 소속인 권순우는 후원 브랜드 비트로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다만 신발은 달랐습니다. 원래는 비트로 신발을 신으려 했지만, 착용 과정에서 발에 통증을 느꼈고, 결국 입대 전 후원사였던 휠라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휠라 관계자는 "원래 신발도 비트로를 신으려 했는데, 아파서 저희 신발을 신었다"라고 전했습니다. 비트로의 잔디 코트용 모델 여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권순우에게 더 중요한 건 브랜드보다 발 상태였습니다. 잔디코트에서는 첫 스텝이 늦어지면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집니다. 말년 병장은 멋보다 실리를 택했고, 그 선택은 1회전 완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잔디 코트용 테니스화는 미끄러운 천연 잔디 위에서 필수적인 접지력을 제공하기 위해 바닥(아웃솔) 전체가 작은 돌기(Nubs/Pimples)로 덮여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 돌기들은 미끄러짐을 방지하면서도 민감한 잔디를 파헤치지 않도록 평평하고 미세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2회전 상대는 미국의 토미 폴(25위)입니다. 폴은 1회전에서 알렉상드르 뮐러를 3-0(6-1, 6-2, 6-1)으로 꺾고 올라왔습니다. 권순우에게는 더 높은 벽입니다. 그래도 이번 윔블던 1회전은 단순한 복귀전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흰색 유니폼, 짧은 바지, 바꿔 신은 신발, 군 복무 뒤 달라진 몸 상태, 그리고 적지 않은 상금까지. 사소해 보이는 장면들이 모여 지금의 권순우를 설명했습니다. 군 생활 끝자락에서 그는 다시 투어 선수의 속도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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