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장년기본법 첫발…"부모 공양 마지막 세대, 자녀 부양 못 받는 첫 세대" 공감
일자리·사회참여 논의 이어졌지만, 이중돌봄 해법은 과제로

"부모를 공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아이들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중돌봄 세대를 호명하다-중장년기본법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는 이 표현으로 우리 사회 중장년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정의했다. 중장년을 청년과 노년 사이의 과도기가 아닌 독립된 생애단계로 인정하고 국가 차원의 정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참석자들의 공감대가 모였다.
다만 부모 돌봄과 자녀 부양이 동시에 겹치는 이른바 '이중돌봄'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남겼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추진하는 중장년기본법은 40세 이상 65세 미만을 중장년으로 정의하고, 생애전환설계와 고용안정, 건강·심리지원, 사회참여 등을 국가가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청년기본법과 노인복지법 사이에 존재하는 정책 공백을 메우고, 중장년를 독립된 정책 대상으로 세워 생애전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박 의원은 "중장년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인구집단이면서도 부모 돌봄과 자녀 부양, 경제활동을 동시에 책임지는 세대지만 정작 정책에서는 소외돼 왔다"며 "오늘 나온 의견을 흘려보내지 않고 중장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계속 듣겠다. 선언에 그치지 않는 실효성 있는 중장년기본법을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중장년은 청년도 노인도 아닌 새로운 생애단계

첫 발제에 나선 유보영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고령사회정책총괄과장은 현재 중장년 관련 정책이 노인복지법과 청년기본법, 고령자고용법, 노후준비지원법 등 여러 법률과 부처에 분산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장년을 위한 독립적인 정책 체계가 없는 만큼 기본법을 통해 생애전환과 일자리, 건강, 노후준비 등을 종합적으로 연계하는 정책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경아 경기도 베이비부머기회과장은 이날 간담회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제시했다. 남 과장은 오늘날의 중장년은 청년과 노년 사이의 과도기가 아니라 100세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생애단계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중장년 정책 역시 청년정책의 연장선이나 노인정책의 예비단계가 아니라 독립된 정책 영역으로 접근해야 하며, 소비의 주체를 넘어 일의 주체, 다시 삶의 주체로 바라보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장년 정책의 핵심은 연령이 아니라 '생애전환(Life Transition)'이라고 강조했다. 생애전환은 단순히 퇴직이나 노후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역할과 관계, 일과 생활방식을 새롭게 설계하는 시기이며,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생애 과정인 만큼 국가가 이를 지원하는 정책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장년기본법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토론에서는 중장년기본법이 어떤 철학을 담아야 하는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이어졌다.


이기영 부산대 교수는 "퇴직 이후 25~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라며 "중장년 정책은 재취업에 머물 것이 아니라 건강과 가족관계, 사회참여, 자원봉사 등 삶 전반을 새롭게 설계하는 '라이프 디자인(Life Design)'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토론 말미에 "좋은 이념과 정책을 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기존 노후준비지원센터와 중장년내일센터, 서울시50플러스 등 이미 운영 중인 전달체계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 것인지가 기본법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수동 더함플러스협동조합 대표는 "중장년 정책이 기존의 복지 중심 접근을 넘어 사회적 관계망과 공동체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장년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 요구는 취업보다 '사람과의 연결'이었다며, 정책의 성과 역시 취업률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역사회 안에서 연결되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년은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과 사회혁신을 이끄는 핵심 자원인 만큼 이러한 관점이 기본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중장년을 바라보는 정책의 관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장년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중장년은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활용해야 할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핵심 자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본법도 '중장년을 도와주는 법'이 아니라 이들의 역량을 사회와 국가가 적극 활용하는 방향에서 설계돼야 한다"며 중장년을 바라보는 정책의 프레임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영수 노사발전재단 중장년고용전략본부장은 현장에서는 여전히 일자리 수요가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중장년은 정규직 재취업뿐 아니라 프리랜서와 사회공헌, 단기 일자리 등 다양한 형태를 원하고 있다"며 "퇴직 이후보다 재직 단계부터 생애전환을 준비할 수 있는 지원체계와 기업의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돌봄도 기본법에 담아야
이날 토론에서는 오성일 보건복지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의 제안이 눈길을 끌었다. 오 과장은 중장년기본법이 기존 노후준비지원법과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는 현재 중장년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을 더 담아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장년이 이중돌봄을 감당하는 현실을 고려해 기본법에도 돌봄 지원을 담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고용과 생애전환뿐 아니라 중장년이 처한 돌봄 부담 역시 중요한 정책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한종 서울시50플러스센터협의회장은 "자연인 조한종으로 말씀드리겠다"며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80대 후반과 70대 후반 부모, 50대인 자신, 10대 자녀까지 3대가 11년을 같이 살고 있다며, 중장년의 현실은 결국 경제와 시간, 돌봄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특히 부모의 요양과 주거 개조, 돌봄 정보 부족 등 현장에서 체감하는 어려움을 언급하며, 중장년기본법에 돌봄 관점이 충분히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발제자 마무리 발언에서 남경아 과장은 "생애전환을 전직(轉職)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지역마다 정책 격차가 큰 현실에서 국가 차원의 정책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주민 의원은 토론을 마무리하며 "오늘 나온 의견을 들으면서 중장년기본법이 새로운 법 하나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며 "중장년의 현실을 반영한 실효성 있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오늘 제기된 의견들을 입법 과정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했다.

중장년기본법이 나아갈 길, '돌봄의 사회화'
이번 간담회는 중장년을 청년과 노년 사이의 사각지대에서 독립된 생애단계로 인정하고 국가 정책의 한 축으로 세우려는 첫 공식 논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생애전환과 사회참여, 관계망 회복, 경험의 활용이라는 새로운 정책 철학이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다만 이날 논의를 돌아보면 아쉬운 질문이 남는다. 중장년을 가장 힘들게 하는 현실은 부모 돌봄과 자녀 부양이 겹친 이중돌봄이다. 생애전환과 일자리, 사회참여에 대한 논의는 풍부했지만, 돌봄 인력 확충과 장기요양·재가서비스 강화, 간병 부담 완화 등 돌봄 부담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특히 치매를 비롯한 퇴행성 뇌 질환은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간 돌봄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40~50대 가족에게 시급한 과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돌본다는 이유로 다니던 직장과 생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중장년기본법 역시 가족돌봄으로 인한 경력 단절과 소득 감소를 줄일 수 있는 지원체계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부모를 돌보고 자녀를 책임지는 세대가 돌봄의 무게를 더 이상 가족의 부담과 책임으로 떠안지 않도록 국가와 지역사회가 어떤 제도를 마련할 것인지, 이제는 그 답을 제도 속에 담아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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