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 '삼전닉스' 레버리지 ETF에 대한 금감원장의 발언은 적절성 여부를 떠나 사태의 심각성을 공론화하는데는 매우 유용했다. 이 사태는 정책 결정권자의 무모함과 무지함이 빚은 참사에 가깝다. 한 순간 증시를 도박판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상폐해야 한다는 고육책이 업계에서 나올 정도다. 시장 정상화를 위해 지금이라도 드러눕는 뒤늦은 결기를 보일 때다.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 증시 정상화를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수익을 포기하고서라도 자진 상폐를 요구할 만큼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방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2개 종목이 전체 코스피 상장사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는 기형적 구조에서 이 종목의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 상장 후 증시가 유례없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어서다. 극심한 변동성은 투자자 피해를 확산시킬 뿐만 아니라 자금 쏠림이 더 진행될 경우 ETF 운용이 불가능한 초유의 상태로 치닫게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로 인한 시장 변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주부터 금융투자협회에 관련 규제 방안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집 중이다. 지난달 27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첫 상장된 후 불과 1개월 만에 전체 시장을 뒤흔들 만큼 파급력이 커지자 규제 방안 마련에 나선 것이다.
현재로선 뾰족한 해법이 없다. 현행 1000만원인 기본예탁금 상향 조정으로 진입장벽을 높이거나 필수적인 사전 교육 이수(현재 2시간 온라인 교육) 강화, 본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용융자 제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외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대상을 시총 상위 업체 중심으로 확대해 수급 쏠림을 완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뭉칫돈을 빨아들이며 불이 붙은 증시 변동성에 풀무질을 하고 있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제동을 걸기는 미봉책이란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AI로 촉발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당분간 지속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매도 물량마저 미미할 만큼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수급이 강하다"며 “실적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한 레버리지 ETF가 중심이 된 폭탄 돌리기 같은 현 상황이 스스로 잦아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 실수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코스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0%를 웃돌고 삼성전자 우선주와 SK하이닉스 지분 가치를 반영해 급등한 시총 3위 SK스퀘어 등을 고려하면 증시가 이 두 종목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기형적 시장 구조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레버지리 ETF 상장을 추진한 건 불 난데 기름 부은 셈이다.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해외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도입한 상품이지만 효과는 별로 없고 부작용만 낳았다"며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금융위원회도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으나 청와대에서 환율 방어 논리를 앞세워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 홍콩에 상장된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서둘러 국내 상장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환율 상승을 막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주식시장에서 벌어질 파장에 대해선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이 커진다.
자료: 삼성증권
이대로 가다간 운용 시스템마저 흔들리게 된다는 심각한 염려마저 나온다. ETF는 기초지수와 펀드의 순자산가치(NAV) 간 가격 괴리를 줄이기 위해 장 마감을 앞두고 리밸런싱(자산 재조정)을 실시한다. 예컨대 시총 5조원짜리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경우 당일 본주인 SK하이닉스가 10% 오르면 변동폭을 2배 추종하기 위해 현물주식 만큼 매수한 선물주식을 마감을 앞두고 5000억원 규모의 현물로 채우는 리밸런싱을 하는 식이다. 장 마감 전 주가 변동성이 커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시총(29일 기준)은 각각 5조6801억원, 3조3619억원이다. 2개 ETF만 하더라도 SK하이닉스가 10% 오를 경우 리밸런싱 과정에서 9000억원 가량의 추가 매수가 수반되고 반대로 주가 하락시 전체 지수를 끌어내리는 강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상장된 14개 단일종목 레버리지 시총은 18조원 수준이며 거래대금은 전체 ETF의 35%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장 마감 전 리밸런싱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주가 급변동을 야기하고 전체 지수를 흔들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여기서 (단일종목 레버리지ETF로) 돈이 더 몰리면 펀드 운용 자체가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점이며 매몰비용으로 판단하고 상장폐지하는 방법 외에는 근본적 해결책이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특히 1초에도 수십번 매매를 단행하는 외국계 초빈도매매(HFT) 투자자들은 운용사의 리밸런싱 압박이 커지는 걸 악용, 주가 방향성에 베팅하는 다량의 매수와 매도 주문을 반복해 상승폭과 하락폭을 자극하며 수익을 챙기고 있다. 외국계 초빈도매매 투자자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조도 나온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장 마감을 앞두고 워낙 변동성이 심해 매수하거나 매도하려는 금액이 계속 바뀐다"며 "예상보다 더 많이 팔아야 하고 더 많이 사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라고 전했다. 지난 23일 코스피가 하루에 9.99% 폭락한 '검은 월요일'은 이런 구조로 촉발된 단일종목 레버지리가 기록적인 변동성의 진원지였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일 기초자산이 급락하자 해당 ETF는 목표 레버리지 유지를 위해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축소 압력이 커지면서 낙폭을 더 키웠을 것"이라며 "당일 레버리지 ETF의 거래대금 급증, 순자산가치 급락, 오후 낙폭 확대, 기관·투신 중심의 수급 악화가 확인되는 걸 보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변동성을 증폭시켰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분석했다.
유동성공급(LP)을 맡고 있는 증권사도 진퇴양난이다. 호가를 제공하는 LP는 해당 ETF 주가가 어떻게 움직이든 수익과 손실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수시로 반대 포지션을 구축하는 헤지(위험분산) 거래를 동반해야 한다.
한 증권사 LP 관계자는 "가격 변동성이 워낙 심해 헤지 거래도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정부가 손실과 수익을 합산하지 않고 수익에만 교육세를 매기고 있어 세금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 호가 제공이 부실하거나 위축될 수밖에 없고 괴리율 격차가 커져 결국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국회전자청원에 올라 온 국민동의청원
국회전자청원에는 단일종목 레버지리 ETF 상품의 전면적 재검토와 규제를 시행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품이 단타 베팅을 부추겨 우리 주식시장을 거대한 합법적 도박판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며 "코스닥 시장의 자금까지 빨아들여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던 투자자들이 시장 왜곡으로 인해 극심한 소외감과 손실을 떠안아 자산 형성의 희망마저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이미 홍콩에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가 상장돼 있고 미국에서도 신규 상장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우리만 상장폐지한다고 해결될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모색해 보는 게 우선 순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