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층 살며 ‘헤일 수 없이’쌓은 장인과의 추억… 언제나 애틋[추모합니다]

장인어른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애틋하고 아련하다.
정년퇴임 후 소일거리 없이 무료하게 지내시는 것이 안타까워 무언가 작은 즐거움이라도 드리고 싶어서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화투다. 다행히도 아파트 아래위 층으로 살았기에 자주 찾아뵙고 소통할 수 있어 참 좋았다.
Go를 할까 Stop을 할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상기된 얼굴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고스톱에 인생이 담겨 있다면서 고스톱 예찬론자가 되어버린 장인께 ‘오늘은 잃어 드려야지’ 다짐하고 막상 게임에 임하면 한 점이라도 더 얻으려고 “고”를 외치며 흥분하는 내 모습은 속물근성을 지닌 인간이다. 그래도 화투가 끝나고 집 주변 식당에서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막걸리 잔이 한두 잔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가까운 노래방을 찾는다. 노래도 잘하시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 하셨기에 노래방에 가면 늘 18번으로 불렀던 노래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장인과 함께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부르면서 사위와 장인의 벽을 허물었다. 오랜 군 생활 퇴임 후 한동안 무료하게 지내는 장인을 위해 함께 고스톱을 하고 좋아하시는 약주를 함께하며 옛날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던 추억은 언제 소환해도 아름답고 따뜻하다. 그런데 장인어른께 치매가 왔다는 것을 화투를 치며 알게 되었다. 자꾸 내가 자신을 속인다며 억지를 부리고 짜증이 심해졌는데 당시에는 그것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지금도 후회스럽다. 그 당시 얼른 병원을 방문했어야 했는데…….
늦게나마 요양병원에 입원했는데 어느 날인가는 아내가 “아빠 너무 드시는 것 아냐?”라며 큰 걱정을 했다. 장모님은 “종일 병원에 있는 양반이 먹는 재미까지 없으면 무슨 맛으로 사냐?”며 그냥 내버려 두란다. 아내에게는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씀을 서슴없이 하지만 내게는 절대로 그런 말씀을 하는 법이 없다.
건강이 온전하고 공직 생활을 할 때는 편지 한 장도 가위로 잘라버릴 만큼 철두철미하고 치밀했던 분이지만 백발의 노인이 되어 깜빡깜빡 잊어버리고 괜한 일에도 화를 내며 작은 결정을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을 보면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양원에 아들까지 동반하고 갔더니 손주의 방문이 반가웠는지 입가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 것을 보면서 자주 아이들과 동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박웃음으로 손주들을 반기던 모습이 지금도 그립다.
안타깝게도 장인어른은 몇 해 전 저 먼 하늘나라로 이별 여행을 떠났다. 임종 직전 내 손을 잡고 웃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내에게는 거수경례까지 하셨다. 가정을 잘 건사한 믿음직한 큰딸에 대한 마지막 신뢰와 고마움의 표현을 하신 것 아닐까.
입관식을 지켜보면서 밀려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소홀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명을 소중히 하는 장례지도사가 면도도 해드리고 꽃무늬가 있는 관에 세심하게 눕혀드리며 예의를 표하는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어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엊그제 장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추모원에 다녀왔다. 장인어른 사진을 보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사는 게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든지 또 찾아와’라고.
조원표(전 초등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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