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전 영국 함장도 반했다 "이렇게 많은 섬…세상의 극치" [전라도의 숨은 명산 돈대산·신금산]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말은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나 풍경이 너무 아름답거나 인상적이어서,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진도 조도면은 단일 면面에서는 가장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군도群島는 육지에서 가까운 여러 섬이 무리지어 있다는 뜻으로, 조도군도에는 가사·상조·하조·성남·관매·거차군도 총 6개의 군도에 154개의 크고 작은 섬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수많은 새들이 비상하는 듯한 조도군도의 아름다움은 한국보다 외국에 먼저 알려졌다.
"산 위에서 주위를 바라보니 섬들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섬들을 세어보려 애를 썼으나 어지간히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적게 잡아도 120개는 됨직했다, 경치는 황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세상의 극치였다(The pinnacle of the world)."

조도를 아름다움의 정점이라고도 말한 사람은 영국 해군 리라호 함장 바실 홀Basil Hall이다. 1816년 8월 두 척의 영국 군함은 중국 산둥성에서 출발해 조선 해안에 대한 지도 작성과 정보수집 목적으로 항해한다. 그해 9월 5일부터 3일간 진도 상조도에 정박했다. 지구상의 바다와 섬들을 수없이 보았던 바실 홀에게 조도의 풍경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 감동을 담아 2년 후 <조선 서해안과 류큐 항해기>를 출간했다. 이후 각국에 번역되어 서양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영국 지도에 하조도는 앰허스트섬, 상조도는 몬트럴섬 등 선원의 이름을 따서 표기하고 있다.
조도군도에 흩어져 있는 섬들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에 깎여 만든 섬들은 생김새가 다양하고 전설도 각양각색이다. 그중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로 진도 지력산 동백사 스님의 전설이 있다. 동백사에 밤낮으로 수행 중인 스님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절을 찾아온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수행자의 본분을 잊고 말았다. 그러자 노한 하늘이 천둥 벼락을 내리쳤고, 스님의 육체는 산산이 부서져 바다에 흩어졌다. 스님이 입던 가사가 떨어진 곳은 '가사도', 바지는 '하의도', 윗옷은 '상의도', 장삼은 '장삼도', 손가락은 '주지도', 발가락은 '양덕도', 그리고 심장이 떨어진 곳은 '불도'가 되었다.

여기도 돈대산 저기도 돈대산
조도는 윗섬인 상조도와 아랫섬인 하조도 두 개로 나뉘며, 1997년 연륙교가 놓여 하나의 섬이 되었다. 면사무소가 있는 하조도가 조도면의 행정과 상업의 중심이다. 바실 홀 선장이 올랐던 곳은 상조도 도리산(218m)으로 추측된다. 상조도 돈대산은 도리산으로 더 많이 불린다.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한 도리산전망대는 큰 섬에 가려진 일부를 제외하고는 조도군도의 거의 모든 섬이 조망되는 곳이며, 일출과 일몰 명소이기도 하다. 등산로는 하조도에 돈대산(271m)과 신금산(238m) 두 곳이 있다.
하조도 돈대산은 조도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인근에 돈대산이란 지명이 많아 혼동되지만 모두 돈대산이 맞다. 조도군도에는 하조도, 상조도, 관매도, 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가사도, 대마도, 서거차도 총 9곳에 돈대墩臺가 있었다. 돈대는 적의 공격을 막거나 감시하기 위한 초소로, 왜구의 침입을 막는 동시에 진도 한복산(232m) 아래에 있는 남도 진성의 수군 만호에게 위급 상황을 알리는 봉수 기능이 있었다.

하조도 돈대산은 산행마을 입구에 들머리가 있다. 등산로 주변의 밭에는 잡풀이 나지 않도록 푸른색 그물망이 뒤덮여 있다. 조도의 효자 상품 해풍쑥을 위해서다. 1월부터 4월까지 다섯 번은 벤다고 하는데, 집중 출하 때는 1kg에 1,800원 정도 하지만 1~3월에는 1kg에 1만 원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주민들은 해풍쑥이 "복뎅이여"라고 말할 정도로, 이 시기에 조도 전체 농가 수익은 100억 원을 웃돈다고 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서부사무소에서 설치한 탐방로 안내도에는 돈대산 코스, 신금산 코스 2개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인쇄된 안내 책자나 탐방 이정표에 오류가 있다. '산행마을~돈대산~읍구마을까지 2.3km, 읍구마을~신금산~하조도등대까지 5.1km'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읍구마을로 내려가는 코스는 안전을 위해 사실상 폐쇄하고 있고 이정표에도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산행마을~돈대산~유토마을(읍구언덕)~신금산~하조도등대 주차장'까지 도상거리 10km는 잡아야 한다.

신이 그린 풍경화 같은 파노라마
하조도 돈대산은 기암괴석이 도드라진 바위산이다. 8,000만 년~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형성되었고, 응회암과 유문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응회암이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을 거치며 지금처럼 날카롭고 웅장한 바위산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수직절리가 잘 발달한 투스타바위 등 신기한 모양의 바위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특히, 손가락바위는 응회암 지형의 백미로 꼽히며, 암석의 절리를 따라 차별침식이 관찰되는 전형적인 화산암이다. 손가락바위 위쪽 전망데크에서 바라보면 층리의 변화가 그대로 보인다. 거대한 시루떡처럼 보이기도 하고 수 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책장 같기도 하다.
돈대산의 진짜 매력은 시원하게 트인 바다 너머로 보이는 섬과 하늘이 맞닿은 축복받은 풍경이다. 카메라 셔터를 아무렇게나 눌러도 그대로 작품이 된다.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인 하롱베이가 '용이 내려온 자리'라는 뜻이라면, 조도의 바다 풍경은 우아함의 대명사인 '공작새가 내려앉은 모습'이라는 '하롱꼰꽁'쯤으로 표현해도 좋다. 맑은 날에는 북쪽으로 우이도와 흑산도, 남쪽으로는 추자도와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 정상에서 유토마을(읍구언덕) 입구까지 1.4km 하산길의 경치도 감탄사가 수시로 나온다. 하산지점인 유토마을(읍구 언덕) 입구에서 창유항으로 내려갈 수 있다. 포장도로 따라 1.5km 약 30분 소요된다.

유토마을(읍구언덕) 입구 포장도로를 건너면 신금산 들머리가 곧장 연결된다. 신금산神琴山은 '신선이 거문고를 탄다'고도 하고, '날짐승 금禽'을 써 신금산神禽山이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절경이라는 뜻으로 귀결된다. 사자바위, 독수리바위, 거북이바위, 특히 금강산의 축소판이라는 만물상 등 걸출한 암릉들이 많다. 신금산 종주코스는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야 한다. 정상까지는 1.3km, 하조도등대까지는 5.5km. 오르고 내리는 고도의 기복이 크고 등산로는 거친 편이다. 국립공원이다 보니 선답자의 시그널이 전무해서 길 찾기에 애매한 지점이 두어 곳 있다. 상록수림이 울창하고 동백나무 군락지는 밀림에 가까울 정도여서 길을 잘 살펴야 한다. 반면에 급경사 절벽과 위험구간에는 데크계단이 촘촘히 설치돼 있어서 그 모양만으로도 멋진 풍경의 일부가 된다.
빨간 기둥의 팔각정인 운림정을 지나면 고래등 같은 절벽에 하조도등대가 당당하게 바다를 지키고 있다. 하조도등대가 서 있는 장죽수도長竹水道는 서해와 남해 물길이 나뉘는 길목으로, 물살이 세고 냉수대와 난류가 교차해서 수산 자원이 풍부한 황금어장이다. 하조도등대는 1909년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이후 현재까지 110년 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백색 원형 철근콘크리트구조로 등대문화유산 제29호로 지정되었다. 등대 자체의 높이가 14m인데, 50m가 넘는 가파른 기암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 시각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조도의 대표 명소 중 하나다. 등대 내부에는 전시 공간도 있어 해양문화를 알 수 있다. 하조도등대 주차장에서 창유항 입구까지 4km, 도보로 1시간 거리다. 배 시간 여유가 있다면 걸어도 좋을 길이다.


산행길잡이
산행마을-손가락바위-돈대산 정상- 투스타바위-갈림길-유토마을 입구(읍구 언덕)-신금산 정상-거북이바위- 독수리바위-동백군락지-만물상-운림정(팔각정)-하조도등대(11km, 4시간)
산행마을부터 돈대산 등산로 이정표는 잘 갖추어져 있다. 손가락바위 위로 올라가는 것은 금지돼 있으므로 바위에 오르는 것은 안전과 자연유산 보호를 위해 삼가야 한다. 정상에서 읍구마을로 가는 암릉길은 폐쇄되었다. 갈림길에서 유토마을 입구(읍구언덕)로 하산한다. 도로를 건너면 신금산 들머리다. 신금산의 데크계단은 낡고 파손된 곳이 많아서 안전에 유의해야 하며, 동백군락지는 15분 이상 미로 같은 길을 통과해야 한다. 길눈 밝은 사람이 선두에 서는 것이 좋다.
배편
진도항(팽목항)에서 조도 창유항까지 하절기 8회(07:30, 08:20, 09:50, 10:30, 12:10, 15:20, 17:00, 18:00) 운항한다. 배삯은 편도 4,900원이며 안개, 강풍에 따라 출항이 지연·취소되므로 사전에 진도항 매표소(061-542-5383)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배 시간에 맞추어 창유항에는 소형 버스가 대기한다. 버스비는 무료이며, 우체국 입구에서 하차한 후 산행마을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다. 조도에는 택시 한 대를 부부가 운행한다. 하조도등대에서 창유항까지 택시를 이용할 경우 9인승 조도택시(061-542-5071)가 1만5,000원 한다. 배 시간 임박해서 호출하지 말고 사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잘 데와 먹을 데(지역번호 061)
창유항 바로 옆에 헤밍웨이 모텔(542-8889)은 지은 지 오래 되었어도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된 편이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모든 객실에서 바다가 조망되며, 2인실 5만 원, 3~4인실 8만 원이다.
면사무소 뒤쪽에 상가와 식당이 밀집해 있다. 대성식당(542-3107)은 장어탕·우럭탕·동태탕 등 탕요리와 갈치조림을 잘한다. 2010년 제1회 토속음식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엄마손 맛집으로 유명하다. 순대국밥을 잘하는 윤희네 식당(010-2312-8227)은 순대가 푸짐하고 국물이 진하다. 중화요리 장가계(542-8880)는 면요리를 잘한다. 짜장면 7,000원, 짬뽕 9,000원.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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