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서울 청년이 들어왔다…제천 월악산 밑 MZ들의 귀농일기
월악산 국립공원과 손잡고 '제철한끼' 제공…탐방객에 인기
[편집자주] 마을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익숙한 이웃의 빈자리가 늘고 있습니다. 지방소멸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삶터의 문제입니다. 뉴스1은 지역을 지키고 다시 살려내는 든든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제천=뉴스1) 손도언 기자 =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연 속에서 돈도 벌 수 있는 삶은 가능할까.
지난 27일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 자락에서 만난 20~30대 청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도시의 팍팍한 삶을 내려놓고 여유와 자유를 찾아 산간 마을을 선택한 이들은 이곳에서 자신들만의 '귀농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살며 한산했던 농촌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의 시골살이는 한마디로 '만족'에 가깝다.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한곳에 모여 살지만 서로의 나이나 직업보다 각자의 삶의 방식과 개성을 먼저 존중한다. 누가 더 앞서가고 뒤처졌는지 따지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한다.
한별 씨(28·여)는 2022년 서울의 문화·기획 관련 회사에서 일하다 제천으로 내려왔다.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만족감을 이곳에서 얻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이 가장 좋다. 직장 내 갑질도, 스트레스도 없는 자연에서 살고 싶어 내려왔다"며 "이곳에서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시민운동가로 일했던 민강모 씨(29), 2022년까지 서울에서 회사원이었던 A 씨(30·여), 2021년까지 서울에서 제과점을 운영했던 최유주 씨(37·여)도 비슷한 이유로 시골살이를 택했다.
민 씨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누구도 나이를 묻지 않았다"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나이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재밌고 멋있게 살까'를 더 많이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현재 덕산면에는 15~20명가량의 MZ세대 청년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제천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의 매력에 빠져 눌러앉거나, 지친 도시 생활을 접고 스스로 시골살이를 결심하는 등 각자의 사연을 품고 이곳에 정착했다.
청년들은 마을의 빈집을 매입하거나 임대해 살면서 70~80대 어르신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동시에, 삶의 경험과 지혜를 배워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박유미 덕산면 청년대표(33·여)는 "무엇보다 자연과 함께 사는 것 자체가 가장 행복하다"며 "도심에서 얻지 못했던 것들을 이곳에서 채워가며 삶의 만족도를 높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시골살이는 개인의 만족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올해 초 국립공원공단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와 협약을 맺고 월악산을 찾는 단체 탐방객 등에게 '월악산 제철한끼'를 제공하고 있다.
'제철한끼'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송계 양파와 덕산지역에서 자란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적채, 비트 등 월악산 자락의 식재료가 담긴다. 청년들은 단순히 음식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식재료의 유래와 메뉴 개발 과정 등을 설명하는 '미식 해설'도 함께 제공한다.
탐방객들은 한 끼 식사를 하며 월악산의 사계와 청년들의 지역 정착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지역 농산물 소비와 관광, 청년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셈이다.
김한수 국립공원공단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장은 "국립공원은 도시 청년들과 상생하며 탐방객들에게 질 좋은 '제철한끼 프로젝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월악산 자락의 작은 마을은 청년들의 새로운 삶터가 되고 있다. 이들의 귀농 일기는 사라져가는 마을이 다시 사람을 부르고, 관계를 만들고, 지역의 가능성을 키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k-55s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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