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에 의존한 미국경제, 물가 부담도 커진다[천조국 리포트]
데이터센터·전력 수요 확대, 새 물가 상승 요인으로 부상
금리 인하 기대 후퇴…일부 투자은행은 인상 전망

(뉴욕=머니투데이방송) 염현석 특파원= 인공지능(AI) 투자가 미국경제의 성장세를 지탱하고 있다. 소비는 물가 부담과 관세 영향으로 둔화됐지만,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투자가 이를 보완했다. 다만 AI 투자가 늘수록 반도체, 서버, 냉각장비, 전력망, 원자재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성장 동력으로 작용한 투자가 비용 상승을 통해 물가 부담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29일(현지시간) 발표한 '2026년 하반기 미국경제 전망 및 주요 이슈'에서 하반기 미국경제가 고유가 등에 따른 소비 둔화에도 AI 관련 투자 확대에 힘입어 양호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동시에 물가는 하반기에도 연준 목표 수준을 크게 웃도는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봤다.
핵심은 AI 투자의 양면성이다. AI 투자는 단기적으로 설비투자와 산업생산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같은 투자가 전력과 장비 수요를 자극하면 생산비 상승 요인이 된다. 이 비용이 기업 가격과 전기요금에 반영되면 물가 경로에도 영향을 미친다. AI가 경기 하방을 막는 동시에 금리 인하를 어렵게 만드는 배경이다.

◆소비 둔화 속 성장 버팀목 된 AI 투자
올해 상반기 미국경제는 소비보다 투자에 의해 지지됐다. 개인소비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과 관세 인상 영향으로 증가세가 둔화됐다. 반면 민간투자는 AI 관련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구축 확대에 힘입어 비주거용 고정투자를 중심으로 늘었다. 산업생산도 반도체와 IT 장비 수요 증가로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
이는 성장률을 방어하는 요인이다. 소비가 약해지는 국면에서 기업 투자가 유지되면 경기 둔화 속도는 제한된다. 특히 AI 투자는 데이터센터 건설, 전력망 보강, 장비 발주, 반도체 수요를 동시에 동반한다. 특정 업종의 투자에 그치지 않고 건설, 제조, 전력, 금융 부문으로 파급된다.
보고서는 2026년과 2027년 빅테크 자본지출 전망이 1년 사이 50% 안팎 상향 조정됐다고 분석했다. AI 모델 고도화로 컴퓨팅 수요가 커지고, 데이터센터도 대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능 반도체와 서버, 냉각 시스템, 전력 설비가 동시에 필요해 구축 비용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투자 확대가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자본지출이 빠르게 늘면 내부 현금흐름만으로 충당하기 어려워지고, 외부 차입과 프로젝트파이낸싱 의존도도 높아진다. AI 수요가 둔화되거나 수익화가 지연될 경우 투자 조정과 금융시장 변동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도 AI 설비투자의 지속 가능성을 하반기 주요 리스크로 제시했다.

◆데이터센터 확대가 부른 전력 수급 병목
물가와 직접 연결되는 부분은 전력이다. 데이터센터는 고성능 칩과 서버 냉각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대규모 전력을 사용한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미국의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4년 25GW에서 2030년 100GW로 늘고, 미국 내 전력 소비 비중도 4.1%에서 8.5%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수요 증가 속도에 비해 공급 확대는 더디다. 발전소와 송전망은 건설과 인허가에 시간이 걸린다.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연결 대기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변압기 등 핵심 장비 부족도 병목 요인이다. 전력 공급은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기 때문에 수요가 빠르게 늘면 가격 상승 압력이 먼저 나타난다.
이미 전력 가격에는 영향이 반영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이후 전력사용료 상승률은 크게 확대됐다. 달라스 연준은 기존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 증가가 미국 전역의 도매 전력 가격을 평균 2~6% 올린 것으로 분석했다. 전력 생산 비용도 5~15%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로는 물가에 두 단계로 작용한다. 전기료 상승은 에너지 물가에 직접 반영된다. 동시에 전력을 많이 쓰는 기업이 비용 상승분을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전가하면 근원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AI 투자가 반도체와 컴퓨터 장비, 전력, 원자재 가격을 동시에 끌어올릴 경우 물가 압력은 특정 품목에 머물지 않는다.

◆물가 재상승에 좁아진 연준의 선택지
정책금리 전망도 달라졌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에 따르면 주요 투자은행 10곳 중 9곳은 연내 정책금리 인하 전망을 철회했다. 이 가운데 7곳은 연내 동결, 2곳은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인하 전망을 유지한 곳은 1곳에 그쳤다.
금리 전망이 바뀐 배경은 노동시장과 물가다. 취업자 수 증가세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금리 인하의 근거였던 노동시장 둔화 우려는 약해졌다. 반면 중동 리스크에 따른 유가 상승과 AI 관련 수요 확대는 인플레이션 전망을 높였다. 성장률 전망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지만 물가 전망이 올라간 점이 정책금리 경로를 바꾼 것이다.
연준 입장에서는 정책 판단이 복잡해졌다. AI 투자가 성장률을 지지하는 상황에서는 경기 둔화를 이유로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 동시에 전력과 장비 가격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면 금리 인하 명분은 더 약해진다. 물가가 2% 목표로 내려오는 속도가 늦어질수록 시장은 동결뿐 아니라 인상 가능성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전광명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장은 "올해 미국 경제는 AI 부문의 압도적인 투자가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AI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반도체, 컴퓨터 장비, 전력 등 핵심 원자재 전반의 가격이 상승 압력을 받으면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염현석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