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자산관리, 사람을 찾는 이유

AI에게서 완벽한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삶의 의미를 찾는 남자의 이야기를 보며 ‘다가오는 AI시대에서도 결국 사람을 찾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AI가 인간의 외로움에 위로의 말을 건넬 수는 있지만 인간관계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AI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 중 하나로 꼽히는 은행원이 되었다. 10여년 전 영화를 보며 ‘AI가 사람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을까?’라고 느꼈던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라 생각한다. 금리를 알려주는 은행원이 줄어들 것은 맞지만, 고객의 인생과 자산을 함께 설계하는 은행원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고객 상담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모양의 이야기를 들고 온다. 가족을 따뜻하게 품을 자가마련이 꿈인 사람도 있고, 세상을 떠난 뒤 상속 문제에서 어떤 자식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도 있다. 결혼을 앞두고 설렘과 동시에 불안을 털어놓는 귀여운 예비신부, 자녀에게 올바른 금융관을 심어주고 싶어 하는 아빠…
금융상담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의 삶과 마주하는 시간에 가깝다. 그래서 단순히 시황을 이야기하고, 상품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숫자와 상품을 주로 다루는 대화 속에서도 고객의 표정에 담긴 불안과 기대를 들여다보게 된다. AI가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때로는 정답보다 공감이, 수익률보다 마음을 읽는 능력이 우선이 되기도 하는 게 상담의 묘미가 아닐까?
상담에 임할 때마다 고객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나은 해답을 찾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이 묘미에 흠뻑 빠져서일 것이다. 고객의 인생 중요한 순간에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자부심이자 즐거움이다.
지금은 유튜브와 각종 플랫폼을 통해 방대한 투자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AI에 질문하면 몇초만에 국내외 경제 상황을 정리해주는건 물론, 투자 포트폴리오까지 제안해준다. 정보의 양과 접근성만 놓고 보면 고객이 굳이 시간을 들여 PB(Private Banker, 자산관리상담사)를 찾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객들이 중요한 투자 결정을 앞두고 PB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수치를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고민을 이해하고 삶 속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PB와 함께 진정한 자산관리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때그때 궁금한 것을 AI에 물어 자신만만하게 투자했던 고객도 실제 상담을 진행해보면 수익률 외에 때마다 필요했던 세금·상속·증여 문제나 개인의 자금흐름 등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우리네 인생이 저마다 다르듯 같은 1억원, 같은 투자상품 이라도 투자성향, 자금의 사용 목적과 시기, 연령대, 가족구성 등에 따라 필요한 솔루션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내 삶의 모습이 반영된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 나아가 변동성 높은 금융시장에서의 불안감이나 생애 이슈에 따른 포트폴리오 변화 등을 다루는 것은 AI가 제공하는 방대한 데이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고객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 인생의 우선순위까지 고민하며 자산관리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사람과의 상담에서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
결국 좋은 자산관리는 단순히 상품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 인생을 비추어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지, 그 선택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찾는 것은 결국 사람이 될 것이다.
/이채유 1021770@kjba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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