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장이 간다] 13. 함광복 양구읍 공수리 이장

박재혁 2026. 6. 3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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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개편 3개 마을 통합 ‘공수리’로
외지인 유입에 마을 운영 의견차 발생
오해·갈등 속 이장 역할 중요성 실감
주막할매 이야기 기반 마을 축제 탄생
외연 확장 위해 서울여대 교류 구상
주거지 부족 주택단지 사업 필요성
공수대교 휴게소·전망대 조성 목표도

동네 구전으로 만든 ‘공동체 축제’ 머무는 마을 만들기 구슬땀

함광복 양구읍 공수리 이장

양구읍 공수리는 토지면적 88.15㎢로 양구읍 전체 면적 173.62㎢의 절반을 넘는다. 공수대교에 서면 파로호가 정면으로 펼쳐지고, 강 끝 산자락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이 마을을 물들인다.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고개만 돌리면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변 산에서는 산채가 나고, 과수 농가도 곳곳에 있다.

함광복 이장은 “공수리는 순박한 주민들이 살아가는 순수한 동네”라고 소개했다. 마을 곳곳에는 파로호와 산자락이 맞닿은 풍경이 남아 있고, 주민들은 이 경관을 공수리의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긴다. 공수리에서 태어난 함 이장은 2017년부터 9년째 마을을 이끌고 있다.

공수리는 마을회 중심의 운영을 통해 주민 의견을 모으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마을 현안을 논의하며 공동체 회복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1914년 이름 얻은 공수리

공수리라는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함 이장에 따르면 이전에는 지금의 1·2·3반이 각각 공수골, 갬벌, 주막거리 등으로 불렸다. 이후 세 마을이 묶이며 공수리라는 지명이 자리 잡았다.

지명의 유래에는 큰 나무 이야기가 전해진다. 함 이장은 “공수골에는 관에서 관리할 정도로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공손수라는 나무가 있던 공수골에서 공수리 지명이 이어졌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공수리의 공간적 변화는 1944년 화천댐 건설 이후 본격화됐다. 물이 차오르면서 마을은 파로호를 사이에 두고 갈라졌고, 일부 지역은 수몰됐다. 공수리 일대에서 발견된 고인돌 등 선사 유적도 이전됐다. 그는 “댐 이후 공수리가 가진 옛 모습과 생활문화가 많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함광복 양구읍 공수리 이장이 24일 양구군청 공감카페에서 윤수진 서울여대 교수 등과 주막할매 축제 발전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갈등을 원칙으로 풀다

파로호 경관과 낚시를 좋아해 외지에서 들어온 주민들이 늘면서 공수리의 구성도 크게 바뀌었다. 함 이장에 따르면 현재 공수리에서 태어나 자란 주민은 전체의 20%가 채 되지 않는다. 주민마다 배경과 생활 방식이 달랐고, 한때는 마을 운영을 둘러싼 의견 차도 적지 않았다.

함 이장이 처음 이장직을 맡은 것은 40대 초반이었다. 주민과 어르신들의 권유로 마을 회의에 참석했다가 그 자리에서 이장으로 선출됐다. 어느 집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쪽에서 오해를 받았다. 회의에서 결론을 내도 다시 반대 의견이 나오는 일이 반복됐다.

함 이장은 이때 원칙과 절차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마을 일을 하려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규칙과 절차를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며 “욕을 먹더라도 내가 옳다고 판단한 일은 소신 있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초반에는 오해도 적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신뢰가 쌓였다. 6년째 이장직을 마치고 물러나려 했을 때 주민들은 함 이장이 없는 자리에서 다시 그를 이장으로 선출했다. 함 이장은 “주민들이 시간이 지나며 진심을 알아준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공수리는 이후 대동회 중심의 관행적 운영에서 마을회 중심의 조직 운영으로 변화했다. 지금은 마을회와 총회, 결산을 통해 운영된다. 함 이장은 “옛날의 이장은 동네 큰 어른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행정적인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며 “주민들이 필요로 하고 바라는 것을 듣는 일이 가장 기본”이라고 했다.
주막할매 축제에서 주민과 방문객들이 공연을 즐기며 화합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막할매 이야기로 만든 마을축제

공수리는 대표 작목이 뚜렷한 마을은 아니다. 산채와 과수, 어업, 임업, 농업, 전원생활이 골고루 섞여 있다. 함 이장은 “자연스러운 마을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딱 부러지게 내세울 대표 색깔이 없다는 점은 고민이었다”고 했다.

함 이장은 어르신들을 만나 옛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주막거리와 주막할매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예전 공수리에는 남편을 잃은 할머니가 홀로 운영하던 주막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농사일을 도와주자 할머니는 한 해 한 번 국밥과 막걸리를 대접했다는 이야기다.

공수리는 이 구전을 마을축제의 뿌리로 삼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주막할매 축제’다. 함 이장은 “축제로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 공수리를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우리 마을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막할매 축제는 올해 4년차를 맞는다. 지난해에는 총 1700만원의 사업비로 9월 27일 공수대교 일원에서 열렸다. 목표 인원은 900명이었고, 지역 내 여러 행사가 겹쳤음에도 800여명이 찾았다.

축제는 마을이 함께 준비하고 손님을 맞는 공동체 회복의 장이다. 처음에는 회의에서 의견을 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축제를 거듭하며 주민들은 역할을 나누고 서로 배려하는 법을 익혔다. 함 이장은 “민원이 많다는 말을 듣던 마을 주민들이 이제는 공수리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공수리는 축제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서울여대와의 교류도 구상하고 있다. 함 이장은 최근 서울여대 SI교육센터 윤수진 교수와 축제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함 이장은 “축제가 더 커지려면 젊은 세대의 수요를 반영하고 외부와 교류·소통할 구조가 필요하다”며 “서울여대와 공수리의 장기 교류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열린 공수리 주막할매 축제 현장. 방문객들이 주막 체험 부스와 먹거리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빈집보다 집이 없는 마을, 머무는 마을로

공수리의 고민도 분명하다. 함 이장은 댐과 보 설치 이후 공수리의 자연경관과 관광 가능성이 충분히 살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파로호 관광의 시작점은 공수리라는 점을 봐야 한다”며 “인근 지역에는 관광자원 개발이 이어졌지만 공수리는 지나가는 마을처럼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농촌 마을 대부분은 빈집을 걱정하지만 공수리는 다르다. 함 이장에 따르면 2017년 83가구였던 공수리는 현재 91세대, 주민 150여명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함 이장은 “공수리는 빈집이 문제가 아니라 집이 없는 게 문제”라며 “살고 싶다는 사람은 있지만 들어와 살 집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높은 건축비도 요인이다. 함 이장은 귀촌인들이 머물 수 있는 주거 기반과 살아보기 체험, 주택단지 조성 같은 사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공수리는 주막할매 축제를 체험마을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폐공수분교를 활용해 주막할매 체험마을을 조성하고, 막걸리 빚기 체험 등 주막 콘셉트를 살린 프로그램도 검토하고 있다. 소외된 이웃을 챙기고 마을 특성화 사업을 기획·추진하는 일도 함 이장의 역할이다.

함 이장이 꼭 이루고 싶은 또 하나의 사업은 공수대교 인근 휴게소와 전망대 조성이다. 공수대교 주변은 파로호 물길과 노을을 함께 볼 수 있다. 자전거길과도 연결돼 있지만 방문객이 쉬어갈 공간은 부족하다.

함 이장은 “주막은 예전의 휴게소이자 사람들이 머물던 공간이었다”며 “공수대교 인근에 주막의 의미를 살린 휴게소와 전망대가 들어서면 공수리가 지나가는 마을이 아니라 머무는 마을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함 이장은 “10년 뒤 공수리의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서로 더 화합하고 이해하는 마을이 되는 것”이라며 “정이 가는 마을,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박재혁 기자 jhpp@kado.net

강원도민일보·도이통장연합회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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