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반도체는 “예스”, 원전은 “노”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2026. 6. 2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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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의 신규원전 사업에
영남 지자체 4곳만 신청
반도체 세우려면
高신뢰성 전력공급 필요한데
SMR 유치마저 외면
호남의 이율배반
지난 18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 곳곳에 신규원전 유치를 염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정부는 전날 제11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신규 원전 2기를 영덕에 건설하기로 확정했다/뉴스1

한국수력원자력의 신규원전 부지선정평가위원회에 참여해 1년여 활동했다. 지난 5월 20일 현장 답사차 경북 영덕의 신규부지 후보지로 가면서 해안 도로에서 본 대형 현수막이 기억난다. ‘인구 소멸 경기 회복, 원전만이 해답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원전에 대한 지역 사회 시각이 달라졌다는 건 듣고 있었다.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영덕군은 6월 17일 대형원전 부지로 최종 선정됐다.

영남권엔 부산 기장(고리), 울산 울주(새울), 경북 경주(월성), 경북 울진(한울)에 기존 원전 단지가 네 곳 있다. 영덕이 신규 단지로 합류하면서 영남은 다섯 개 원전 단지를 갖게 됐다. 기장의 고리원전 단지 내엔 SMR(소형 모듈 원자로)도 한 세트 네 기를 짓기로 했다. 반면 호남엔 전남 영광 한빛원전 단지만 하나 있을 뿐이다. 반도체는 고(高)신뢰성 전력 없이는 존속이 불가능하다. 산업 배치의 지역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호남에 반도체를 세우려 했다면 우선 전력 인프라를 보강하는 일이 급했다. 그게 순서에 맞는다.

하지만 이번 신규원전 유치에선 영남 지자체끼리만 경합했다. 대형원전은 경북 영덕과 울산 울주가, SMR은 부산 기장과 경북 경주가 유치를 신청했다. 호남 지자체에선 한수원 쪽에 기류 탐색 시도도 없었다. 현재 가동 또는 건설 중인 원전이 영남에 24기, 호남은 6기이다. 이미 4대 1의 불균형인데 신규 대형원전과 SMR까지 영남 쪽으로 가게 됐다.

호남 민심이 원전을 거부하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한국갤럽의 지난 1월 신규원전 찬반 조사를 보면 호남은 ‘찬성 42%, 반대 28%, 모름·응답거절 29%’였다. 모름·응답거절을 떼어놓고 보면 찬6, 반4였다. 대구·경북보다는 찬성 비율이 낮았지만, 부울경보다는 되레 미세하게 높았다. 호남이 신규원전을 신청도 하지 않은 것은 지역 여론보다는 민주당 지배 지자체와 지방의회, 민주당 성향 사회단체 등 지역 정서 주도층의 반원전 분위기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 SMR까지 외면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증거를 무시하고, 의견 차이를 억누르고, 따돌림을 두려워하는 배타적 집단사고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정부와 호남 정치권은 반도체 클러스터를 호남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호남에 태양광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형적인 ‘규모 착각’이다. 호남에 현재 10.9GW의 태양광이 있다. 태양광 이용률은 15% 정도다. 원전의 경우 한수원의 올해 목표 이용률이 89%다. 태양광 실 발전량은 같은 용량 원전의 6분의 1밖에 안 된다. 현재의 호남 태양광을 다 합쳐봐야 대형원전 1.5기면 충당하고도 한참 남는 발전력이다.

태양광 가운데 국내 최대는 전남 해남군의 ‘솔라시도’ 태양광단지다. 48만평 규모다. 경북 경주 월성원전 단지에는 5기 원전이 가동 중이다. 월성이 면적으로 솔라시도의 1.6배에 불과하지만 전력 생산량은 200배를 넘는다. 솔라시도 같은 거대 태양광단지를 200개 만들 것인가, 신규원전 단지를 한 곳 조성할 것인가. 호남 지역민들에게 그렇게 한 번 물어보라.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하다. 반도체 공정은 365일, 24시간 가동돼야 하고 순간 전압 변동과 전력의 미세 흔들림에도 예민하다. 천문학적 투자로 대용량 전력저장장치(ESS)를 갖다 붙인다 해도 한계가 있다. 예컨대 여름 장마가 10~20일 지속되면 대응이 가능하겠나. 반도체와 태양광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태양광이 장점 많은 에너지인 건 맞다. 그러나 태양광을 ‘친환경 에너지’라고 말하는 것은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2020년 얘기이지만, 민주당 정부 때 환경부 장관을 지낸 분이 위원장이고 전직 차관이 선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환경대상위원회라는 조직이 그해 환경정책 대상(大賞)에 부여군을 선정했다. 이유는 태양광, 축사, 폐기물시설을 허용하지 않는 3불(不) 정책으로 쾌적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지역 입장에선 태양광이 축사나 폐기물시설 수준의 반환경 설비일 수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호남 입장에선 열망일 것이다. 다만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을 절실히 원했다면 어느 지역보다 먼저 원전 유치에 적극 나섰어야 했다. 서로 모순돼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을 펼 때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 한다. “반도체는 예스, 원전은 노”는 이율배반의 논리 오류에 해당한다. 정부는 올해 안에 2040년까지 적용되는 ‘12차 전력기본계획’을 확정하게 된다. 거기서 추가적인 원전 건설 여부를 다룰 것이다. 당연히 추가 건설 결정이 나와야 한다. 그 경우 호남이 신규 원전단지를 희망하고 나선다면 다수 국민도 좋게 볼 것이다. 첨언 하나 한다면, 충청을 포함한 범수도권에도 신규원전 단지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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