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선 도와달라” 손 내민 日…동아줄 된 K-조선
기술 변화 대응 실패…전통 강자서 2%대 점유율로 ‘추락’
산업적 실익 크지 않지만, ‘외교적 지렛대’ 가능성 거론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인도한 멤브레인형 LNG 운반선. [사진=HD현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29/552795-r1dG8V7/20260629193506080nnls.jpg)
【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한때 전 세계 조선 시장을 석권했던 일본 조선업계가 우리나라에 기술 협력을 요청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019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자국에서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생산 체계를 복구하기 위해서다. 조선업 재건을 정책 과제로 내건 일본 정부의 핵심 목표 중 하나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조선업 위상이 크게 역전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과거 한국에 조선 기술을 전수하던 일본이 역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실제 기술 이전이 이뤄질지는 확실치 않다. 조선 기술 경쟁력과 공급망을 모두 잃은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 조선업계가 한국 조선업계에 내밀 수 있는 협력 카드가 제한적이어서다. 전문가들은 산업적 측면에서 실익이 크지는 않다고 분석하면서도 양국의 약점을 보완할 협력 관계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분석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 정부는 2035년까지 연간 3~5척의 LNG운반선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마바리조선·가와사키중공업·나무라조선 등 일본 조선사를 중심으로 생산 체계와 공급망을 복원하고, 이를 위해 한국 조선사에 관련 기술 협력을 요청할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조선공업회 히가키 유키토 회장은 지난 18일 도쿄 시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공급망 측면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히가키 회장의 발언에는 외부의 도움 없이 단기간에 LNG운반선 역량을 복원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일본 조선업계는 1980~1990년대 신조 시장의 약 60%를 차지했던 '전통 강자'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 조선사가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기술 투자를 확대하면서 주도권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 세계 선박 수주량 중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격차가 가장 잘 드러나는 선종이 LNG운반선이다. 일본 조선업계는 과거 공 모양의 화물창을 선체에 얹는 '모스형' LNG운반선으로 시장을 석권했다. 모스형 화물창은 내부 압력을 고르게 분산시킬 수 있어 구조적 안정성이 뛰어나다.
![가와사키중공업이 2019년 12월 인도한 LNG운반선. [사진=가와사키중공업]](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29/552795-r1dG8V7/20260629193507357shkt.jpg)
결국 일본은 2019년 마지막 LNG운반선 인도를 끝으로 신규 수주 경쟁에서 자취를 감췄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운반선 53척 중 한국 조선 3사가 34척(64%)을 수주했고, 나머지 19척(36%)을 중국이 가져갔다. 일본의 수주 실적은 없다. 업계 관계자는 "모스형은 구조가 안정적이지만 선체와 화물창을 일체화하는 멤브레인형에 비해 적재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경쟁에서 밀려난 일본 조선사는 지난 수년간 LNG운반선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대형 조선사들이 불황 속에서 조선업 투자를 줄인 점도 격차를 벌린 요인이 됐다. 1970~8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 과잉 설비 문제 등으로 불황을 겪으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문제는 미래 경쟁력까지 조정해버린 점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양종서 수석연구원은 "일본 조선업계는 1980년대 말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설계·연구 인력들을 대거 퇴출시켰고, 결국 시장 흐름을 따라갈 능력을 상실하며 완전히 도태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에 협력을 요청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LNG 화물창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로 관리되고 있는 만큼 기술 이전 가능성 자체가 불확실하고, 일본도 아직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 관계자들은 "(협력과 관련해) 일본 측에서 들어온 요청이 없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LNG운반선을 '경제 안보'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는 만큼 건조 재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일본은 전력과 산업의 LNG 의존도가 높고 섬나라의 특성상 대부분 선박을 이용해 수입한다. LNG운반선이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셈이다. 양종서 수석연구원은 "일본 정부는 자체적인 선박 생산과 해상 수송 능력을 '안보' 측면으로 보고 있다"며 "돈을 벌기 위해 조선업 재건에 나선 것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한일 조선 협력을 향한 전문가들의 시선은 엇갈렸다. 기술 협력이 오히려 잠재적 경쟁자를 키울 수 있다는 의견,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기회가 된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양종서 수석연구원은 "일본이 LNG운반선으로 한국과 전면 경쟁을 벌이지는 않겠지만, 자국 내 물량만 흡수해도 막대한 수요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다"며 "산업적 측면에서는 손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협력 카드가 많지 않은 일본이 변칙적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과거 한국이 일본에 그랬듯 LNG운반선 엔지니어들을 고액에 스카우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협력을 통해 조선업·전후방 산업·국가 대 국가 차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차별화된 기자재 기술력을 결합해 경쟁력을 높이고, 일본 에너지 기업이나 해운사가 한국 조선사에 장비나 신조 발주를 늘리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은 항해·통신장비나 극저온 기자재 등 특화된 기술력이 있고, 범용 선박 생산을 위한 로봇과 자동화 기술도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한국과 미국의 협력 관계 지렛대가 됐듯, 한일 조선 협력이 성사된다면 외교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