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레닌상 대신 마제파 기념비 제안…'역사 재정립' 박차

(서울=뉴스1) 유철종 전문위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중심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크라이나의 독자적 역사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지난 2014년 '유로 마이단 혁명'(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시민혁명) 당시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수도 키이우 중심부 타라스 셰우첸코 대로에 우크라이나 전사 집단 '코사크'(우크라이나명 코자크) 지도자 이반 마제파의 기념비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날 최근 러시아의 공습을 받은 키이우 페체르스카 라브라(동굴 수도원)에서 열린 마제파 흉상 제막식에 참석해 연설하며 이같은 제안을 내놓았다. 그의 연설은 텔레그램 채널로 생중계됐다.
젤렌스키는 마제파 기념비 건립이 "역사적 정의를 회복하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러시아는 수 세기 동안 마제파의 이름을 더럽혀 왔으며, 우크라이나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우리 국민에게 마제파가 배신자였다고 믿게 하려 했다"면서 "이 거짓말은 실패했다. 영원히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시위대는 2014년 마이단 혁명 당시 셰우첸코 대로에 서 있던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지도자 레닌의 동상을 무너뜨렸다. 레닌이 이끈 1917년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일부로 편입된 역사에 분노한 시위대가 동상을 철거한 것이다.
마제파는 17세기 말~18세기 초 드니프로강 동부 지역의 코사크 공동체를 이끈 헤트만(군사·정치 지도자)이었다. 그는 당초 러시아 제국 표트르 대제의 충신이었으나, 스웨덴과 러시아가 맞붙은 '대북방전쟁'(1700~1721년) 과정에서 코사크 헤트만국을 러시아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목적으로 스웨덴 국왕 카를 12세 편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가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마제파는 반역자로 낙인찍혔고, 작위와 훈장을 박탈당했다. 러시아정교회도 그가 차르에 대한 충성 서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파문했다.
1709년 폴타바 전투에서 패한 마제파는 스웨덴 국왕 카를 12세와 함께 오스만 제국령 벤데르로 피신했다가 현지에서 병사했다.
이후 수 세기 동안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역사 서술은 마제파를 배신자로 묘사해 왔다. 반면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를 러시아 지배에서 벗어나 우크라이나의 독자적 국가 정체성을 추구한 인물로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어져 왔다.
2014년 친서방 세력이 집권한 후 우크라이나에서는 마제파의 이름을 딴 거리들이 생겨났다. 그의 초상은 현지 10흐리우냐 짜리 지폐와 동전에도 새겨져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독립 투쟁에 헌신한 역사적 인물들을 기리는 국가 추모공간인 '영웅들의 판테온' 조성 법안도 제출했다고 밝혔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 및 소련 시대 기념물들을 철거해 왔다. 러시아 지배의 흔적을 지우고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독립을 강조하려는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일환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에는 우크라이나군 특수작전군 산하 특수작전센터에 "영토를 지키는 데 큰 전공을 세웠다"며 'UPA의 영웅들'이라는 명예 칭호를 부여해 폴란드 측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UPA는 2차 대전 당시 소련에 맞서 싸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무장 조직으로 우크라이나에선 반소(反蘇) 독립투쟁 세력으로 영웅시하지만, 폴란드에서는 자국민 약 10만명을 학살한 극단주의 조직으로 받아들여진다.
러시아에선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회복 운동을 '역사 왜곡'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cjyo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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