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유해란·윤이나·김민솔, '국대 경험'이 연 성공시대…월드컵 참사 속 축구협회와는 다른 길

김종석 기자 2026. 6. 2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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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란·윤이나,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서 나란히 1, 2위
* 김민솔, 한국여자오픈 이어 맥콜·모나 용평 오픈 우승으로 시즌 3승
* KGA 국가대표 육성 시스템이 만든 국제 경험의 징검다리
* 양윤서까지 이어지는 한국 여자골프의 화수분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유해란. 유해란은 우승 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시간은 제 골프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LPGA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시간은 제 골프 인생의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유해란(25)은 생애 첫 메이저 우승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순한 감사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김민솔(20)의 KLPGA투어 시즌 3승, 유해란의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 윤이나(23)의 같은 대회 준우승을 하나로 묶어주는 문장이기도 했습니다. 세 선수 모두 어려서부터 대한골프협회(KGA·회장 강형모)의 국가대표 또는 엘리트 육성 시스템 안에서 국제대회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먼저 본 선수들
한국 여자골프의 주말은 묘하게 겹쳤습니다. 국내에서는 김민솔이 28일 강원 평창 버치힐CC에서 열린 맥콜·모나 용평 오픈 정상에 오르며 KLPGA투어 시즌 3승 고지에 가장 먼저 올랐습니다. 29일에는 미국 미네소타주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유해란이 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을 제패했고, 윤이나가 2위를 차지했습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세 선수에게는 공통 분모가 있습니다. 모두 어려서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무대의 문법을 배운 선수들입니다. 선발전과 랭킹을 통해 국가대표 또는 상비군으로 뽑혔고, 국내외 대회 경험을 쌓은 뒤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습니다.

물론 성과의 주인공은 전적으로 선수 자신입니다. 매일 연습장에서 버티고, 컷 탈락과 압박을 견디고, 큰 무대에서 마지막 퍼트를 넣어야 하는 사람은 결국 선수입니다. 다만 그 선수가 어릴 때부터 더 큰 무대를 보고, 낯선 코스와 외국 선수들의 경기 템포를 먼저 경험하도록 돕는 시스템의 의미도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대한골프협회의 역할은 선수의 공을 대신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선수가 세계로 나아가는 길목에 놓인 징검다리에 가깝습니다.

김민솔이 맥콜·모나 용평 오픈에서 시즌 3승째를 올렸다. 김민솔은 상금순위, 대상 포인트, 신인왕 포인트에서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다. 박태성 작가 제공

김민솔, 국제 경험 통해 달라진 경기 운영
김민솔은 이제 '기대주'라는 표현을 넘어 KLPGA투어 최강자라는 수식어에 가까워졌습니다. 용평 오픈 우승으로 시즌 3승에 선착했고, 상금 9억6309만1428원으로 상금순위 1위, 대상 포인트 313점으로 대상 경쟁에서도 1위에 올랐습니다. 신인왕 포인트도 1434점으로 1위입니다. 단순히 우승을 많이 한 선수가 아니라, 상금왕·대상·신인왕 경쟁을 동시에 끌고 가는 시즌 지배자입니다.

김민솔의 올해 흐름은 더 상징적입니다. 4월 iM금융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뒤 US여자오픈에 출전했고, 귀국 후에는 한국여자오픈과 용평오픈을 잇달아 제패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우승이 모두 US여자오픈 출전 이후 나왔습니다. 김민솔은 한국여자오픈 우승 뒤 "US여자오픈에서 경기 운영 능력을 배우고 왔다"라고 했습니다. 핀을 무리하게 직접 공략하기보다 그린 가운데를 노리는 전략을 배웠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김민솔은 국가대표 주장까지 맡았던 선수입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 세계 아마추어팀 선수권 단체전 우승 등으로 어린 나이에 큰 무대의 압박과 태극마크의 무게를 경험했습니다. 프로 데뷔 전부터 국제대회와 국내 프로 대회를 오가며 쌓은 경험이 지금의 경기 운영 능력으로 이어졌습니다.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윤이나가 갤러리에게 인사하고 있다. 윤이나는 2019년과 2020년 국가대표를 지낸 뒤 LPGA 메이저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LPGA

유해란·윤이나, 메이저 1·2위의 배경

유해란의 경우는 더 직접적입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돼 2018년까지 태극마크를 달았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도 목에 걸었습니다. KLPGA 신인상을 받은 뒤 대한골프협회에 꿈나무 육성 기금 1000만 원을 기부하면서는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프로골퍼 선배들의 선행을 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라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메이저 우승 뒤에는 국가대표 경험의 의미를 더 선명하게 되짚었습니다. 유해란은 "태극마크가 주는 책임감은 경기력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저를 성장시켰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하며 쌓은 경험이 메이저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는 밑거름이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은 그 말 그대로, 국가대표 시절의 경험이 프로 무대의 가장 큰 결실로 이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윤이나도 같은 흐름 위에 있습니다. 윤이나는 2019년과 2020년 국가대표를 지냈고, 2019년 강민구 배 제43회 한국 여자 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최종 합계 11언더파로 우승했습니다. 중학생 신분으로 국내 최고 권위 아마추어 대회를 제패하며 일찌감치 장타와 승부 근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프로 무대에서 논란과 징계를 겪으며 멈춰 선 시간도 있었지만, LPGA 메이저 무대에서 준우승까지 올라선 것은 분명한 반등입니다. 유해란은 같은 한국 여자 아마추어 골프 선수권에서 윤이나 보다 한 해 먼저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국내 최고 권위의 강민구 배 한국 여자 아마추어 골프 선수권에서 차례로 우승한 유해란과 윤이나. 두 선수는 국가대표 시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골프협회 제공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은 총상금 1300만 달러가 걸린 여자골프 최고 무대였습니다. 유해란은 최종 합계 13언더파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고, 윤이나는 11언더파로 2타 차 준우승을 했습니다. 상금도 묵직했습니다. 유해란은 195만 달러, 윤이나는 116만9107달러를 받았습니다. 국가대표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들이 미국 메이저 대회에서 1, 2위를 나눠 가진 장면은 한국 골프 육성 시스템의 경쟁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장세훈 대한골프협회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유해란은 2018년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이고, 김민솔은 2023년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경험했다. 윤이나 역시 2019년과 2020년 국가대표를 지내며 꾸준히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선수"라고 말했습니다. 윤이나가 LPGA 진출 전 한국여자오픈 프로암 대회 식사 자리에서 영문 소설책을 보며 식사하는 모습도 기억했습니다. 장타와 재능만이 아니라, 해외 무대에 적응하려는 준비까지 이어졌다는 얘기입니다.

김민솔을 아마추어 국가대표 시절부터 눈여겨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강형모 회장. 대한골프협회 제공

KGA의 역할은 '징검다리'와 '교두보'
강형모 대한골프협회장은 국가대표 시절의 국제대회 경험이 선수 성장에 주는 가장 큰 효과로 '자신감'을 꼽았습니다. 강 회장은 "국가대표 시절 국제대회에 출전해 다양한 코스와 환경, 세계적인 선수들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결국 자신감을 얻는 부분이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해외 대회에 한 번 다녀오는 차원이 아니라, 낯선 코스와 빠른 그린, 다른 경기 템포 속에서 버텨본 기억이 프로 무대 진출 이후에도 중요한 자산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고상원 대한골프협회 국제교류팀(국가대표) 팀장도 같은 맥락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활약은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KGA의 역할을 '징검다리'와 '교두보'로 표현했습니다. 초보 선수로 출발해 시도협회를 거치고, 나이별 연맹을 지나, KGA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국가대표로 선발됩니다. 이후 선수들은 국내를 넘어 해외 경험을 쌓게 됩니다.

고 팀장은 "골프는 다양한 코스와 외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종목인 만큼 경험이 선수에게 큰 무기"라며 "어떤 환경에서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골프선수로서 가장 큰 재능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어 "협회는 어린 나이에 다양한 경험을 미리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국내 투어 이후 해외 투어에 진출할 때 적응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민솔. 대한골프협회 제공

축구의 질문, 골프의 참고 사례
최근 한국 축구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충격을 겪은 상황과도 묘하게 대비됩니다. 축구의 실패를 골프의 성공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종목 규모도, 저변도, 국제 경쟁 구조도 다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은 같습니다. 중앙경기단체가 선수 성장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선수를 뽑고, 어떤 기준으로 키우고, 어떤 국제 경험을 쌓게 하며, 실패를 어떤 시스템 자산으로 남길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대한골프협회의 국가대표 육성 시스템은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협회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수가 주인공이 되도록 얼마나 좋은 무대와 경험을 제공하느냐입니다.

양윤서가 아시아·태평양 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양윤서는 이 우승으로 AIG 위민스 오픈, 에비앙 챔피언십, 셰브론 챔피언십 등 LPGA 메이저 3개 대회 출전권을 확보했다. 대한골프협회 제공

양윤서까지 이어지는 화수분
더 고무적인 것은 이 흐름이 지금 뛰는 선수 몇 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김민솔, 유해란, 윤이나 뒤에는 양윤서(18) 같은 다음 세대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윤서는 올해 아시아·태평양 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WAAP)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우승했습니다.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고, 준우승자와 8타 차가 났습니다. 이 우승으로 AIG 위민스 오픈, 에비앙 챔피언십, 셰브론 챔피언십 등 LPGA 메이저 3개 대회 출전권도 얻었습니다. 한국여자오픈에서도 아마추어 신분으로 선두권 경쟁을 벌이며 또 한 번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한국 여자골프의 강점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화수분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선수층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국내 투어를 지배하고, 누군가는 메이저를 제패하고, 누군가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세계 무대 출전권을 따냅니다. 그 밑바탕에는 어려서부터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하고, 태극마크의 무게를 몸으로 익히게 하는 육성 시스템이 있습니다.

물론 시스템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기량만 키우는 시스템으로는 부족합니다. 규칙, 윤리, 멘탈, 미디어 대응, 자기관리까지 함께 가르치는 교육이 더해질 때 국가대표 시스템은 완성됩니다. 윤이나의 사례가 보여주듯 좋은 선수는 성적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큰 선수가 되려면 큰 무대에서 책임감도 함께 배워야 합니다.

주말의 세 이름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스타는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나지 않습니다. 좋은 시스템 안에서 먼저 세계를 보고, 오래 버티고, 제대로 배운 선수가 결국 큰 무대에서 버팁니다. 김민솔, 유해란, 윤이나가 이미 그 결실을 보여줬다면, 양윤서 같은 다음 세대는 한국 여자골프의 화수분이 아직 마르지 않았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한국 골프가 오랫동안 심어온 묘목은 지금도 자라고 있고, 또 다른 열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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