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드는 시신에 영안실 포화상태"...베네수 '의료 체계' 붕괴 위기
1450명 사망에 영안실·병원 모두 포화
지진 발생 나흘째인데 여전히 5만 명 실종

병원 마당에선 링거 주사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환자가 들것에 누워 밤을 보냈다. 시신 두 구만 안치되도록 설계된 영안실에는 30구의 시신으로 가득 찼고, 전기가 끊긴 영안실에는 냉장 장치가 고장 나 시신이 부패하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연쇄 강진이 덮친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와 라과이라주의 공공 병원에선 사실상 의료체계가 붕괴될 위기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카라카스의 벨로 몬테 국립 영안실에서 유가족들에게 심리 지원을 하던 카밀라 로드리게스는 2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거리 전체가 목숨을 잃은 가족들을 데리고 온 이들로 가득 찼다”고 참상을 전했다.
10년 넘게 지속된 경제난으로 취약해진 베네수엘라의 공공의료체계는 부상자 치료는 물론 밀려드는 시신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 외곽 카티아 라 마르 시(市)에는 밀려드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 등 곳곳에 야전 병원이 설치됐고, 시민들은 오토바이나 승용차, 픽업트럭에 시신을 싣고 빈 영안실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날 벨로 몬테 영안실은 끊임없이 실려 오는 시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확인하려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각한 라과이라주(州)의 영안실이 포화돼 더 이상 시신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시민들이 그나마 덜 혼잡한 벨로 몬테 영안실로 가족의 시신을 들고 몰려든 것이다.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은 마르호리 세데뇨는 "영안실 안은 정말 끔찍하다"며 "누구도 겪어서는 안 될 비극"이라고 말했다.
의료체계가 붕괴될 위기 속에서도 겨우 연명하는 것은 민간의 지원 덕분이다. 베네수엘라의 전국 장례협회 전 회장 에드가르 에르난데스는 "전국의 장례업체들이 관 200여 개와 시신 수습용 보디백 등을 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라카스 도밍고 루치아니 병원의 마취과 의사 레오메리 페레스도 AP통신에 “환자가 엄청나게 많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줬다”고 전했다.

정부의 부실한 대응이 계속되면서 시민들의 분노와 좌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 엘살바도르 등 24개국에서 보낸 수색∙구조인력 2,700여 명과 500여 톤의 구호물자가 베네수엘라 정부의 예산 및 인력 공백을 메우고 있다.
문제는 베네수엘라 당국이 치안 유지를 이유로 정부 차량과 허가받은 인력만 재해 지역에 접근하도록 하면서 이조차도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27일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이 카라카스의 한 피해지역을 방문하자 “정부는 국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야유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이번 혼란으로 임시정부의 정당성도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비영리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의 선임 분석가이자 베네수엘라 전문가인 필 건슨은 알자지라에 "정부의 대응은 전무한 수준"이라며 “미국의 지원이 있다 해도 정부의 부실한 재난 대응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한편, 호르헤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28일 TV 연설에서 "현재까지 최소 1,450명이 사망하고 3,150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민간 사이트 '베네수엘라 지진 실종자'에 따르면 29일 오전 1시 기준 실종자는 총 6만1,722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소재가 파악됐거나 생존 여부가 확인된 1만5,087명을 제외하면, 여전히 4만6,635명이 실종 상태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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