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사라진 한국 축구, 4년 전을 돌아볼 때[기자수첩]

한때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를 호령했던 한국은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던 한국은 48개국 체제인 북중미 월드컵에선 단 1승(2패)에 그치면서 짐을 쌌다. 역대 최악의 성적(34위)을 감안한다면 실패 그 자체다.
한국이 추락을 거듭한 사이 카타르에서 나란히 토너먼트에 진출했던 일본과 호주는 이번에도 32강이라는 최소한의 목표를 달성했다. 4년 사이 한국만 뒷걸음질을 했다.

■벤투를 선임한 시스템은 어디로?
한국의 추락은 그라운드 밖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파울루 벤투를 2018년 선임할 당시 한국에 추구해야 하는 축구 철학과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감독을 찾아냈던 시스템을 왜 스스로 포기했는지 의문이다.
김판곤 당시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은 벤투 감독을 선임할 당시 세계 축구 트렌드와 거리를 좁힌다는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후임자들은 새 감독을 뽑으면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끊임없는 재택근무 논란 속에 지도자 능력 부족을 드러냈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이 대표적이다. 카타르 월드컵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던 클린스만은 선수단 내분까지 방치하면서 경질됐다.
임시 사령탑이었던 황선홍 감독과 김도훈 감독을 거쳐 2024년 7월 홍명보 감독에게 다시 한 번 지휘봉을 맡겼지만, 왜 숱한 후보군이 아닌 그가 대표팀의 적임자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형 축구(MIK·빠르고, 용맹하게, 주도하는 축구)가 언급됐지만, 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MIK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카타르 월드컵 당시 무자격 트레이너 고용을 요구하는 월권에 이어 아시안컵에서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물리적으로 충돌했던 손흥민(LAFC)을 휘어잡을 수 있는 인물을 찾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만 나왔을 따름이다.

■잃어버린 시스템의 대가, 수동적인 축구
한국이 방향성을 잃고 표류한 대가는 그라운드에서 나왔다.
홍 감독이 월드컵의 새로운 주 전술로 준비한 스리백 자체는 현대 축구에서 검증된 전술이다.
하지만 수비 안정성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상대에 주도권을 내주고, 그들의 플레이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축구로 돌아서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강팀들과도 맞서는 능동적인 축구로 승부를 걸었던 것과 비교됐다.
물론, 승패의 확률만 따진다면 능동적인 축구와 수동적인 축구에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첫 경기인 체코전에선 짜릿한 2-1 역전승을 손에 넣었지만, 상대가 예측할 수 있는 뻔한 그림으로 강팀들에 맞서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홍 감독이 구상대로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비겨서 32강에 올랐더라도 그 이상을 바라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현장의 냉정한 평가다.
프랑스의 살아있는 전설인 티에리 앙리는 한국의 탈락을 냉정하게 짚으면서 “손흥민과 이강인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있음에도 전술이 보이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막연한 희망은 전략이 될 수 없다”고 짚었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바닥을 쳤다. 홍 감독이 월드컵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월드컵이 끝난 뒤 물러나기로 했다. 한국 축구가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돌아보면서 인적 쇄신에 나설 수 있는 기회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박지성은 한 방송에서 “한순간에 마법처럼 한국 축구의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선 최소한 10년이 걸릴 것“이라며 변화를 촉구했다. 한국이 월드컵 100주년을 기념해 6개국에서 개최하는 4년 뒤 월드컵에서 다른 결과를 얻으려면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과달라하라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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