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란, 천둥·강풍 뚫고 70위서 1위로…메이저 대회서 대역전극

김양희 기자 2026. 6. 2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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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
유해란이 29일(한국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채스카/AFP 연합뉴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법이다. 천둥과 번개, 그리고 미네소타의 사나운 강풍도 유해란(25)의 거침없는 질주를 막아서지 못했다. 유해란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케이피엠지(KPMG) 여자 PGA 챔피언십(총상금 1300만달러) 정상에 우뚝 섰다.

유해란은 29일(한국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5개, 보기 3개를 묶어 두 타를 줄였고 최종 합계 13언더파 275타로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새로운 ‘메이저 퀸’의 탄생이다. 투어 통산 4번째 우승으로, 우승 상금은 무려 195만달러(29억9000만원)에 달한다.

이번 우승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레전드급 역전극이었다. 1라운드 당시 유해란은 1오버파 73타로 공동 70위에 머물렀다. 당시 선두였던 윤이나(63타)와는 무려 10타 차이가 났다. 하지만 라운드마다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한 타, 한 타 줄여나갔고, 결국 마지막 날 당당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는 1964년 웨스턴 오픈에서 캐럴 만(미국)이 작성한 LPGA 메이저 대회 역사상 18홀 기준 역대 최다 타수 차 역전승 타이기록이다.

최종 라운드는 하늘마저 시샘하듯 궂은 날씨로 시작되었다. 악천후 탓에 티오프가 3시간 이상 지연되면서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았다. 단독 선두로 출발한 유해란 역시 초반에는 흔들렸다. 1번 홀 보기로 출발한 뒤, 4번 홀(파3)과 5번 홀(파4)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한때 공동 2위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위기 다음에 찾아왔다. 7번 홀(파5)에서 과감한 투온 공략으로 버디를 잡아내며 분위기를 바꾼 유해란은 9번 홀(파4)에서 4.4m짜리 까다로운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다시 단독 선두 자리를 되찾았다.

유해란이 29일(한국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6번 홀에서 세컨 샷을 하고 있다. 채스카/AFP 연합뉴스

후반 들어 유해란의 샷은 더욱 견고해졌다. 12번 홀(파4)에서 티샷이 러프에 빠졌지만, 침착하게 온그린에 성공한 뒤 4.3m 버디 퍼트를 떨구며 2위 브룩 헨더슨(캐나다)을 2타 차로 따돌렸다. 헨더슨이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13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는 사이, 유해란은 흔들림 없는 파 세이브 행진으로 격차를 3타 차까지 벌리며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마지막 18번 홀, 유해란의 완벽한 위닝 파 퍼트가 홀컵에 떨어지자 동료들의 축하 샴페인 세례가 쏟아졌다. 우승 확정 뒤 어머니를 껴안은 유해란은 이후 기자회견에서 “어머니가 축하해주시며 울려고 하셨다. 제가 ‘울지 마. 좋은 일이잖아. 내 인생에 정말 좋은 일이니까 울지마’라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2023년 신인왕을 거머쥐었던 유해란은 지난달 크로거 퀸시티 챔피언십 준우승의 아쉬움을 이번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완벽하게 씻어냈다. 박세리(3회 우승)를 시작으로 박인비의 3연속 우승, 박성현, 김세영, 전인지, 그리고 2024년 양희영에 이어 2년 만에 한국인 챔피언의 계보도 잇게 되었다. 유해란은 “인생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 꿈만 같다. 너무 행복하고 정말 꿈이 이뤄진 것 같다”면서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저만 믿었던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시즌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이미향(1승), 김효주(2승)에 이어 유해란이 세 번째다.

첫날 맹타를 휘둘렀던 윤이나는 후반 막판 뒷심을 발휘하면서 최종 합계 11언더파 227타로 2위를 차지, 올 시즌 최고 성적을 냈다. 윤이나는 “어제와 오늘 조금 실망스럽지만, 압박감 속에서도 꽤 잘해냈다고 생각하고, 골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번 경험이 큰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영과 김아림은 최종 합계 6언더파 282타로 공동 8위에 올라, 한국인 선수 4명이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시즌 3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노렸던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르다(미국)도 공동 8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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