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명 '목줄' 쥔 MBK, 약먹고 버티는 직원들…홈플러스 사태는 '사회적 재난'
노동은 '사회 안보'(Social Security)의 문제다. 우리는 IMF 구조조정 사태를 거친 후 '대량 해고'가 어떻게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지켜본 경험이 있다.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이 가속화되면서 어느새 '사모펀드'는 우리 삶의 주변에 익숙하게 다가와 있다.
사모펀드에 대한 논쟁은 자본 시장과 노동 시장에서 여전히 뜨겁게 진행 중이다. 한편에서는 사모펀드가 자본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는 '메기'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경영 효율화와 체질 개선, 그리고 새로운 자금 조달로 자본 시장에서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암'도 존재한다. 단기 수익 지상주의로 구조조정을 일삼고 기업을 망가뜨리며 결과적으로 경제 주체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주장이다. 지금 MBK의 홈플러스 인수 및 파산 논란은 사모펀드의 '약탈적 경영'의 교과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특히 수익 추구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될 위기에 처한 상황은 '사회 안보'를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MBK의 '홈플러스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MBK, 홈플러스를 사냥하다] ① '흡혈귀 경영' MBK는 어떻게 홈플러스를 망가뜨렸나?
홈플러스 강서점 식품매장이 있는 2층 계산대는 12개다. 지난 24일 그곳을 찾았을 때 불이 들어온 계산대는 3개뿐이었다. 그래도 캐셔들의 움직임은 바빠 보이지 않았다. 손님은 드문드문 계산대로 들어섰고, 카트를 가득 채운 손님을 보기도 어려웠다.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본 진열대 상당수에 적힌 상품명과 실제 배치된 상품이 달랐다. '간편과일', '친화경채소', '계란'이라고 적힌 진열대에 놓인 것은 주걱 뒤집개, 국자, 가위 등 주방용품이나 음식 보관용기였다. 수산물 코너에 다가가자 유통 지연을 보여주듯 불쾌한 냄새가 코를 덮쳤다.
그런 매장 안을 10명 남짓한 손님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카트에 무와 파 등 그나마 남아있는 채소를 담은 채 장을 보던 주민 김모 씨(60대)는 지금 홈플러스의 모습을 보면 "착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장이 생길 때부터 애용해왔는데 없어진다니 서운하다"고 말을 이었다.
식품매장 한 켠에 어울리지 않게 진열된 침구를 보고 있던 주민 이모 씨(50대)도 "많이 이용했는데 없어지면 불편할 것 같다"며 "실업자가 많이 생길 것도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매출 탑5 매장이었는데…계산대당 하루 손님 2, 30명"
1년 전만 해도 홈플러스 강서점은 이런 곳이 아니었다. 입지부터가 우월하다. 지하철이 다니는 가양역에서 매장까지의 거리는 200여 미터, 도보로 3분 거리다. 매장에서 도보 15분, 반경 1킬로미터 안에 있는 아파트 단지 수만 10개가 넘는다.
사업을 총괄하는 본사도 강서점에 입주해 있다. 홈플러스가 대형마트의 장점을 살리겠다며 실행한 메가푸드마켓 리모델링도 이곳에서 제일 먼저 했다. 본사에 매장, 협력업체, 외주업체 직원, 입점업주까지 포함하면 수천 명이 홈플러스 강서점에 생계를 기대왔다. 주변 상인까지 합하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매출로는 늘 탑 5 안에 드는 매장이었어요." 강서점에서 만난 4년 차 캐셔, 김현원 씨가 말했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모든 계산대를 열어뒀고, 캐셔 한 명이 하루 동안 500~600명의 손님이 산 물건을 계산했고, 객단가가 30~40만 원을 넘는 손님도 많았다."
홈플러스가 파산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물건이 들어오지 않기 시작하며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노조 강서지회장이기도 한 현원 씨는 홈플러스 회생을 요구하며 33일 간 단식한 뒤 이날 복귀했는데, "그 사이에도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캐셔 한 명이 하루에 맞는 손님은 20~30명 수준이다. 바쁠 때는 하루에 20명 가까이 계산원들이 일했는데, 지금은 그 절반 정도로 줄었다.
확대일로였던 이커머스 사업의 형편도 비슷했다. 11년차 이커머스 직원인 노혜주 씨는 온라인으로 주문이 들어온 상품을 매대에서 골라내 포장한 뒤 배송기사에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파산 이야기가 나오기 전만 해도 확대일로에 있던 사업이다.
혜주 씨는 "주문량이 한창 때의 5분의 1~10분의 1 정도로 줄었다"며 "원래는 하루 종일 3차에 걸쳐 물건을 포장하고 배송했는데 지금은 하루 일하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넘는 시간엔 바구니를 닦았는데 하도 닦아서…"라고 했다. 직원들이 보기에도 매장에 물건이 없어, 동료들끼리 "주문하는 손님이 용하다는 이야기도 한다"고 그는 말했다.
갑자기 닥친 위기의 원인은 모두가 뻔히 알았다. 4조 원의 빚을 쥐고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가 '빚을 갚겠다'며 2016년경부터 홈플러스 '알짜' 매장을 매각하기 시작한 뒤 각 매장이 진 임차료 부담이 사태의 시작이었다. 직원들이 일찌감치 우려하고 반대했던 일이었다. 이후 올해 초부터 물건 납품이 끊기기 시작하며 경영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간암 간병 중인 직원, 퇴직금으로 생계 이어가려는 직원도
그로 인한 고통은 직원들이 겪고 있다. 매장을 돌아다니며 살핀 직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일하는 중간중간 한숨을 쉬는 직원들이 있었다. 울고 있는 직원을 다른 직원이 달래주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밝은 표정을 짓는 직원을 본 것은 물품 위치를 묻는 고객에게 응대할 때뿐이었다.
멀쩡하게 장사 잘 하던 매장이, 사모펀드의 일방적 자산 매각 결정으로 갑자기 무너진 데 대한 분노와 이후 생계에 대한 걱정이 직원들의 행동거지 곳곳에 묻어있는 듯 했다. 최근 임금체불까지 있었고, 여전히 일부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지금 생활 형편을 물었다.
18년차 캐셔인 송보미 씨의 남편은 간암 투병 중이다. 자녀도 한 명은 대학생, 한 명은 취업준비생이라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다. 보미 씨는 "너무 멘붕이 와서…"라고 심정을 밝혔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지만,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눈물을 참기 어렵다고도 했다.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생활하고 있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니 잠도 안 와요. 뭘 해 먹고 살아야 하나"라고 말하는 보미 씨의 눈에 핏줄이 서 있었다.
현원 씨는 다가오는 9월 전세집 계약이 종료되면, 이사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사 시점이 되면 실직자가 될 수도 있는데 "신용대출이라도 나올지, 이자율은 얼마일지" 걱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현원 씨는 동료들의 상황도 전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며 설득해 붙잡고 있던 한 동료는 내일이면 그만둔다. 당장 돈이 없어 퇴직금이라도 받아 생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동료도 자녀 둘이 동시에 대학에 가 등록금과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퇴직금을 받으려 퇴사했다.

10만 명 생계 쥔 MBK와 메리츠는 '핑퐁게임' 중
직간접고용을 포함 10만 명(홈플러스 노사가 공동으로 추정한 수치)에 달하는 홈플러스 노동자들과 연계 업계 노동자·시민들의 무너져 가는 삶을 건져 올릴 마지막 동아줄은 법원이 쥐고 있다. 다음달 3일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인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인가가 나지 않으면, 수만 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나올 상황이다.
그 동아줄을 끊을지 말지를 두고, 자산 매각 등으로 홈플러스를 망가뜨린 MBK와 주요 채권자인 메리츠그룹은 핑퐁게임을 벌이는 중이다. MBK는 회생계획안 인가 결정을 앞두고 메리츠에 2000억 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메리츠는 김병주 회장 등 MBK 경영진이 보증을 서야 대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포브스> 발표 기준 올해 김 회장의 재산은 약 13조 7700억 원이다. 메리츠는 지난해 5월 홈플러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 당시 1조 2000억 원을 빌려주며 최고 14% 금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위기 앞에선 누구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홈플러스를 살리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MBK와 메리츠 간 중재에 나섰지만, 상황은 요지부동이다.
이런 중에도 홈플러스 매장 안에는 여전히 일하는 사람은 물론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있었다. 현원 씨는 "홈플러스 매장은 장사가 안 될 곳들이 아니다. 상품만 들어오면 한 달 안에 회복될 수 있다"며 MBK와 메리츠는 물론 정치권의 역할을 강조했다.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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