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시라는 틀에 갇힌 ‘풀’ 존재의 구원·욕망의 해방… 더 넓은 ‘자유’를 읽어내다[장재선의 한국문화 ‘논란의 초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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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 들어갈 무렵에 김수영 시집을 선물해주신 적 있어요. 김수영 시인을 좋아하셨나요?" "좋아했지." "그 이유가 있나요?"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지만 현실 참여적인 면 때문이었던 것 같아."
오세영은 이 책에서 김수영이 참여문학을 표방했으나 실제 그의 작품은 그것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수영 시의 난해성이 독자들에게도 너그럽게 수용되는 것은, 시대의 불의와 맞선 시인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문학 동지였던 김수영·김현경 부부에겐 한국 현대사의 질곡으로 인한 상처와 그것을 함께 견딘다는 연대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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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시인 김수영의 참여문학 <상>
김현승, ‘풀 = 민중’‘ 바람 = 부당권력’ 해설 1972년 책에 내놔
황동규 “생태학적 모순” 오세영은 “동풍은 파괴아닌 소생” 반론
출판계서 ‘참여문학 거봉’ 받들던 김수영, 관련 논문만 300편
타성적 표현 거부 ‘새로운 언어세계’ 만들어 해석 쉽지않지만
‘시대 불의에 맞선 시인’ 이미지로 지금껏 독자들에 호평 받아


“제가 대학 들어갈 무렵에 김수영 시집을 선물해주신 적 있어요. 김수영 시인을 좋아하셨나요?” “좋아했지.” “그 이유가 있나요?”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지만 현실 참여적인 면 때문이었던 것 같아.”
고교 시절에 국어교사였던 은사와 최근 SNS를 통해 나눴던 대화이다. 김수영(1921∼1968) 시인에 대해 여쭌 것은, 이달에 출간된 책 ‘한국 근현대시사’를 읽은 것이 계기였다.
책의 저자는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오세영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 오세영은 이 책에서 김수영이 참여문학을 표방했으나 실제 그의 작품은 그것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의 하나로 시 ‘풀’을 들었다.
김수영 유작인 ‘풀’은 참여시 혹은 민중시 걸작으로 평가받아왔다. 그걸 뒷받침하는 해석의 전형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풀은 억압받는 민중을 상징하고, 바람은 민초를 억압하는 부당한 권력이라는 것이다. 권력의 압제를 딛고 일어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이 주제라고 했다. 그런 해석이 각급 학교 문학 참고서에 실렸고, 시험 문제로 자주 나왔다.
“사랑 통해 소생하는 이야기”
오세영은 이 시를 참여시(민중시)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바람보다 빨리 눕는 풀’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풀이 바람에 저항 한번 못한 채 굴종하는 존재가 되는 탓이다. 일단 생존을 꾀한 뒤 독재권력이 물러날 때 다시 일어선다는 식으로 해석한다면, 건강한 민중의식이 아닌 기회주의 처세술을 합리화하는 시각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에 등장하는 ‘동풍’은 북풍이나 서풍과 달리 파괴의 상징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바람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 시는 참여시나 민중시가 아니라 절망에 처한 존재가 사랑의 단비를 통해 죽음으로부터 소생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풀’로서의 인생론적 진실을 깨우친 작품이다.”
과거에도 ‘풀’을 민중시로 보는 것에 대해 다른 시각이 있었다. 김수영이 생전 아꼈던 후배 황동규(서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 시인이 1980년대에 내놓은 의견이 대표적이다. “풀은 민중의 상징이고 바람은 외세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붙이면 풀이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을 싫어할 리가 없다는 생물 생태학적인 반론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21세기 들어 다층적인 시각이 나왔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이 시에서 풀은 여성의 성욕을 표상하는 상징”이라고 했다. ‘자위와 희열-김수영의 ‘풀’에 대하여’란 평론에서였다. 이명원은 “여성의 성욕이 리드미컬하게 확산되면서 동시 절정에 이르는 상징적 표현에 바쳐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제시됐지만, 각급 학교 국어 참고서는 ‘풀 = 민중, 바람 = 폭압 권력’의 등식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강고한 논리를 처음에 제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1972년에 ‘한국현대시해설’을 펴낸 김현승(1913∼1975) 시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1970년대 본고사 세대 사이에 널리 읽힌 김현승의 책은 ‘풀’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크게는 민족의, 작게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풀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상징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의 바람은 불의와 부당한 탄압의 바람으로 볼 수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 해석이 전형으로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수영 연구에 정통한 학자인 이영준은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한국 사회가 냉전기의 대립적 사고를 무심코 드러낸 것인지 모른다.”
창작과비평(창비) 등 문학계에 영향력이 큰 진영에서 김수영을 참여문학 거봉으로 받들어 온 것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을 듯싶다. 창비는 김수영이 만 47세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직후 특집(1968년 가을호)을 통해 그의 시 10편을 게재했다. 이때 함께 소개된 2편의 평론, 즉 ‘시여 침을 뱉어라’ ‘현실생활과 시’는 그가 주창했던 참여 문학론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문학사에 새로운 길 열어”
김수영은 생전 시집을 단 한 권 내놨다. ‘달나라의 장난’(1959)이 그것이다. 사후엔 각 출판사에서 시선집, 산문선집이 쏟아져 나왔다. 민음사의 ‘김수영 전집’은 1981년 처음 나온 뒤 두 번의 개정판을 거쳐 ‘정본 전집’(2018·이영준 엮음)으로까지 진화했다.
김수영에 관한 석·박사 논문은 300편이 훌쩍 넘는다. 그의 시, 산문의 세계가 다채롭고 풍성하며 해석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연극을 하다가 문학으로 들어온 그는 초기 박인환(1926∼1956) 시인 등과 함께 모더니즘에 천착했다. 그러다가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며 모든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추구하는 참여문학을 표방했다.
그는 일어와 영어에 능통해 철학, 문학을 외국책으로 섭렵했다. 특히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릴케론’은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스스로 돈벌이에 무능하다고 자조한 그였지만, 동서양의 인문학을 폭넓게 천착했다는 자존감이 드높았다.
김수영을 상찬하는 이들은 그의 치열한 공부가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길을 냈다고 본다. 그는 소시민의 생활을 시에 끌어들였다. 일상어, 심지어 비속어까지 시어로 삼았고, 그런 언어 행위를 통해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허위성을 경계했다. 시문학의 전통 어법이 아닌 현대적이고 새로운 언어 세계의 쾌감을 주며, 특유의 반복 기법으로 독자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창비를 이끌어왔던 문학평론가 백낙청(서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은 근년에 한 대담에서 김수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시 정신을 말했는데, 시대를 사는 자기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수련의 적공(積功)으로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
김수영 문학은 1960년대 이후 후배 문인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세상의 현실을 외면하며 음풍농월하지 않고 눈을 부릅떠 직면하는 태도 측면에서 특히 그랬다. 방법 면에선 끊임없이 첨단과 전위로 나아가며 힘 있고 새로운 언어를 벼렸다는 점을 후학들이 사숙했다. 그의 자장(磁場)이 민중·민족문학뿐만 아니라 이른바 난해시 조류에까지 미친 까닭이다.
김용옥 “엉터리 해석” 비판
김수영 시 작품들은 독해가 쉽지 않다. 우선 그의 초기작 ‘공자(孔子)의 생활난’을 읽어보면 왜 공자(BC 551∼BC 479)가 제목에 등장하는지 아리송하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시에서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라는 공자 말씀을 겨우 추출했는데, 철학자 김용옥 씨는 강연에서 이는 엉터리 해석이라며 열을 냈다. “죽을 때까지 도를 닦겠다”라는 다짐이라는 것이다.
김수영 대표작 ‘사랑의 변주’ 해석에서도 문학계 원로 유종호 평론가와 이시영 시인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은 유명하다. 이 작품을 무척 좋아한다는 백낙청도 “대목 대목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답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는 시 ‘풀’에 대해서도 “민중시 측면뿐만 아니라 무의미 시, 너서리 라임(Nursery rhyme·영어권 전래동요)의 재미도 있다”며 “어려운 말이 없지만 해석이 쉽지 않다”라고 했다.
김수영 문학 지지자들은 이런 난해가 틀에 박힌 상식, 타성적 표현에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4·19혁명 이후 정치적 자유에 기대어 알기 쉽게 쓰다가 5·16 정변 이후 억압이 오니까 그의 시가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있다.
김수영 시의 난해성이 독자들에게도 너그럽게 수용되는 것은, 시대의 불의와 맞선 시인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독재를 풍자한 ‘하… 그림자가 없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등의 작품이 그런 이미지를 강화했다. 그 작품들은 그가 주창한 참여문학을 스스로 실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오세영은 그런 시각에 반대한다. 이승만 정권이 서슬 퍼렇던 시절엔 입을 닫고 있다가 4·19 혁명으로 무너진 다음에 쓴 작품들인데, 그것들을 참여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류에 편승한 작품으로 본다. 이는 1960년대에 김수영과 ‘참여문학 논쟁’을 벌였던 평론가 이어령(1934∼2022)의 관점이기도 하다. <하편에 계속>

■ 시인 사생활 두고 의견 분분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살인을 한다/그러나 우산대로/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우리들의 옆에서는/어린놈이 울었고/비 오는 거리에는/40명가량의 취객들이/모여들었고/집에 돌아와서/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아는 사람이/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아니 그보다도 먼저/아까운 것이/지 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시인 김수영이 1963년에 쓴 ‘죄와 벌’이란 시. 그의 아내였던 김현경(1927∼2025) 여사의 생전 증언에 의하면, 부부 사이에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김수영은 왜 스스로 죄라고 여긴 일을 시로 썼을까. 제목에서처럼 자신에게 ‘벌’을 준 것일까.
문학 동지였던 김수영·김현경 부부에겐 한국 현대사의 질곡으로 인한 상처와 그것을 함께 견딘다는 연대감이 있었다. 김수영은 6·25 전쟁 때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겨우 탈출했으나, 이번엔 국군에 붙잡혀 포로수용소에서 2년 넘게 생지옥을 경험했다. 그가 풀려난 후 부부가 재회했지만 지독한 생활고를 겪으며 별거했다. 그로 인해 김현경이 김수영의 친구였던 이종구(1921∼2004·영문학자 겸 수필가)와 동거하는 일이 생겼다.
1955년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 부부의 연을 다시 이었다. 김수영은 이종구와의 일에 대해 아내에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으나, 우산대 폭행 사건은 오쟁이 진 남자의 오랜 울분이 폭발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만행을 시로 써 낸 시인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김현경은 김수영 사후 그의 자료들을 소중히 지켜서 문학관에 기증했다. 이화여대 영문학과에서 공부했던 그는 평생 문학을 가까이하며 ‘시인의 여편네’였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자유주의자로서 삶과 시에서 치열한 정직성을 보였던 김수영이 위대하다고 했다.
성매매를 암시해 논란이 일었던 시 ‘성(性)’조차도 정직에 철두철미한 것이라며 김현경은 옹호했다. 김수영 타계 직후 잡지 창비에 ‘성(性)’을 실었던 백낙청은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즉 쓰고 싶은 대로 쓰는 데 시가 되는 경지를 보여준다”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번째로 여편네와/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시 ‘성(性)’ 일부)
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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