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있는데 없다 ③] 우정실무원 박창근씨 “기간제는 부당해도 참아요”

옆 사람한테 소리를 질러야 겨우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컨베이어벨트 마찰음이 가득한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집중국. 물류센터 안에는 롤러코스터 레일처럼 길게 뻗은 컨베이어벨트들이 사방으로 이어져 있고, 그 위로 소포들이 끊임없이 이동한다.
7년째 이곳에서 우편물 분류작업을 해 온 우정실무원 박창근(35·사진 오른쪽)씨는 택배물을 1초에 하나꼴로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보냈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우본)의 공무직이다.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체국본부 서울지부장이기도 하다. 박씨의 동료 중에는 여전히 기간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특히 수익 규모가 작은 지방일수록 고용 여건이 취약해 일자리 불안이 더 크다.
"사람을 뭐 이렇게 써?"
기간제만 뽑는 곳도
전남 영암과 충북 청주, 강원 강릉우편집중국은 전체 우정실무원 절반 이상이 기간제다. 부산국제우편물류센터는 우정실무원 15명 전원이 기간제다. 상시·지속업무인데도 쪼개기 계약이 만연한 현실이다. 최근 전주우편집중국에선 2개월 단위로 10번 재계약을 하는 관행이 드러났다. 이들은 공무직과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
"지역 물류센터별 기간제 비율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절반 이상인 곳도 있었어요. '사람을 뭐 이렇게 써?' 싶었죠. 기간제인 분들은 노조 가입도 부담이에요." 기간제 노동자는 당장 '다음'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서다. 정책 변화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느낄 여유도 없다.
그는 "쪼개기 계약의 가장 큰 문제는 아프거나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을 연장하려면 잘 보여야 하니까요." 그가 설명한 이유다.
기간제 대책 "환영이지만"
중요한 건 '전환'
지난달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개선 가이드라인'을 통해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고,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업무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원칙으로 하도록 했다. 1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에게는 적정수당과 공정수당도 지급하기로 했다. 정규직 채용 회피 목적의 반복적인 비정규직 채용 행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같은 일을 한다면 비정규직이 돈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도 일부 담겼다.
박씨는 이러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에 반색하며 "기간제를 당연히 그렇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가 기간제에 많이 의존하는 현실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박씨는 "오래 일하며 경험을 쌓는 숙련노동자를 늘려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을 우선해야 한다"며 "더 안정적인 고용형태로 전환해도 사업장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우본부터, 공공부문부터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올해 명절상여금이 두 배 오른 것도 큰 변화로 꼽았다. 이재명 정부는 올해부터 공무직의 명절상여금을 공무원과 동일하게 기본급의 120%로 인상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각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에서 공무직과 계약직의 명절상여금을 기본급의 120%로 맞추는 흐름이 이어졌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무직의 복리후생비를 공무원과 차별하지 말라고 권고한 지 4년 만이다.
기간제 우정실무원들이 공무직으로 전환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박씨는 "더 책임감 있게 일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은근히 기간제와 공무직 간 계급의식이 있어요. 그런 게 없어지면 더 화합하면서 노동의 효율성도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요?"
사업비 구조, 인력 압박으로 이어져
우본의 예산은 특별회계 형식이라 우편사업에서 적자가 나면 예금사업 등 내부 재원으로 이를 메운다. 박씨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력 운용이 쉽게 감축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 임금이 인건비가 아닌 사업비에서 집행된다는 점과 우편사업 계획에 인력 운용 계획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점을 문제 삼았다. 사업 여건이 나빠지면 인력을 쉽게 줄일 수 있도록 기간제를 고용하는 구조가 굳어진 이유라고 했다. 정부가 제도 개선을 강조해도 현장에선 구조적 한계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오는 9월 재출범하는 공무직위원회에는 기대와 우려를 함께 내비쳤다.

"미래 그릴 수 있는 노동 꿈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에 반영됐으면 하는 현장 문제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요새 사람들 편지 잘 안 쓰잖아요. 우편 물량이 줄어드니까 사람도 계속 줄어요. 그러다 보면 1인당 노동강도가 늘고 사고로 이어지거든요. 연차나 병가도 제대로 못 쓰고요. 인력을 좀 넉넉하게 썼으면 해요. 공무직위원회에서 인력 부분도 좀 봐줬으면 좋겠어요."
박씨에게 좋은 노동이란 "인생 설계가 가능하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노동"이다. 그는 하루 6시간 일하며 135만원 받던 시절 생계가 버거워 오후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일하는 야간 전일제로 옮겼다. 여전히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 "같이 일하는 형 중에 50대가 많은데, 20년 뒤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져요."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의 개혁이 현장에서도 체감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말에 그치면 개혁은 멈춘다"며 "분배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노동개혁은 의미가 약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식시장 활성화도 좋지만 분배 정책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전달되는지 잘 체감되지 않는다"며 "노동자 삶에 실제 변화를 주는 정책으로 덜 걱정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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