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하나만도 못하다”던 코스피, 27년 만에 전인미답 고지 올랐다 [코스피 1만 시대 맞이①]

정채희 2026. 6. 2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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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코스피 1만 시대를 맞이하는 법]



“한국 경제, 외국 기업 하나만도 못합니까?”

1999년 여름 전국을 뒤흔들었던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 펀드’ TV 광고문구다. 외환위기(IMF)의 직격탄을 맞아 코스피 지수가 270선까지 고꾸라졌던 시절이다. 대한민국 상장기업 전체의 시가총액을 다 합쳐도 일본의 통신 거인 NTT 하나를 넘지 못한다는 서글픈 프레임은 당시 주식시장과 국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전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의 2028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3445억달러(약 494조원)로 대폭 상향했다. 일본 시가총액 1위인 도요타자동차 연간 영업이익의 11배를 웃도는 수치다. 일본 투자자들 사이에선 더 놀라운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1개사의 이익이 일본 상장기업 상위 100개사의 합계를 가볍게 초과한다”는 것이다.

27년 전 “외국 기업 하나만도 못하냐”며 눈물짓던 코스피가 도달한 오늘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변방의 외딴섬 같았던 한국 자본시장은 이제 글로벌 머니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마켓으로 변모했다. 과거의 낡은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파른 ‘퀀텀점프’다.

 디스카운트 끝났다…세계 5위 시장으로 

역사는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18일 코스피는 장중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하며 한국 자본시장의 새 지평을 열었다. 상승 속도는 경이적인 수준이다. 올해 1월 22일 사상 처음으로 5000선에 안착한 코스피는 2월 25일 6000선을 넘어섰다. 3월 이란 전쟁의 여파로 잠시 주춤했지만 7000선에서 8000선까지는 단 9일이 걸렸고, 다시 22거래일 만에 9000선을 돌파했다.

5월 말 기준 한국거래소의 시가총액은 약 4조9494억달러. 캐나다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세계 9위권에 안착했다. 국가 및 지역권별로 묶으면 미국·중국·일본·유럽에 이은 세계 5위의 거대 시장이다.

그 중심에는 ‘시가총액 1조달러 클럽’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두 개의 심장 삼성전자(약 1조5260억달러)와 SK하이닉스(약 1조3420억달러)가 있다. 글로벌 경쟁사 마이크론을 제치고 세계 기업 순위 12위권에 안착한 두 기업의 시가총액 합계는 대한민국 1년 국가 예산(730조원)의 2배를 넘어선다. 

그러나 전인미답의 고지에서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9000선을 돌파한 직후인 6월 18일부터 24일까지 시장은 극심한 변동성에 휘말렸다. 단 이틀 만에 지수가 10% 가까이 폭락했다가 다시 회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연출됐다. 한국형 공포지수인 VKOSPI는 95.48까지 치솟으며 2009년 공식 발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3월 이란 전쟁 발발 직후(83.58)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103.05) 때나 목격할 수 있었던 극단적인 수치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 매물, 한·미 중앙은행의 매파적 기조 전환,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의 여진이 겹쳤다. 여기에 레버리지 ETF 시장의 급성장과 국민연금의 리밸런싱(자산 재배분) 물량 우려가 수급을 흔들었다. 설상가상 정치권발 리스크와 금융투자소득세 재도입을 요구하는 학계의 목소리까지 더해지며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이 중에서도 시장을 흔든 가장 큰 기술적 복병은 글로벌 ‘레버리지 ETF’ 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종목을 담은 고배율 레버리지 상품이 시장 변동 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켰다는 지적이다. 레버리지 ETF는 지수가 하락하면 배율 유지를 위해 기초자산을 기계적으로 강제 매도해야 하는 구조다. 알렉산더 올트먼 바클레이즈 애널리스트는 이를 두고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Wag the dog) 시장의 최대 기술적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은 이 ‘나비효과’의 진원지 평가를 받았다. 노무라증권의 찰리 맥엘리곳은 “한국은 AI 병목 거래의 진앙 중 하나로 레버리지 ETF를 둘러싼 구조적 역학으로 변동성이 증폭되고 있다”며 “지구 반대편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키는 나비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주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레버리지 수위가 극단으로 높아지다 보니 아시아를 넘어 미국 정규장까지 기계적 하락 압력이 연쇄적으로 확산됐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대내외적 수급 악재도 불을 붙였다.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유예 종료’ 이슈다. 올해 3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주식 평가액은 약 320조9000억원. 전체 자산의 21.0%다. 문제는 이후 코스피가 반도체 초강세에 힘입어 불과 한 분기 만에 80% 가까이 폭등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이미 가이드라인을 한참 초과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허용범위를 최대 28.8%까지 넓히며 대응에 나섰으나 지수가 워낙 가파르게 오른 탓에 7월 유예 조치 만료를 앞두고 수십조원 규모의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제 관련 발언들도 뼈아팠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AI 시대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며 “초과 세수 활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를 증시를 이끄는 핵심 기술 기업들에 대한 규제나 세금 압박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학계와 노동계에서 금투세 재도입 필요 주장이 제기되면서 공포와 경계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버블 붕괴 없다”…눈높이는 최고 ‘1만5000’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하방을 지지하는 실적 장세는 강력하다.

급락 과정에서 8000선이 위협받기도 했으나 6월 24일 코스피는 순식간에 낙폭을 만회하며 다시 9000선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거칠 것 없는 반도체 실적, 그리고 조정이 올 때마다 랠리에서 소외될 수 없다는 개인투자자들의 포모(FOMO) 심리에 다시 불이 붙은 결과다.

전례 없는 변동성의 파고 속에서 전문가들은 ‘단기 과열’에 따른 자연스러운 이격 조정에 무게를 둔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제시한 코스피 목표 밴드를 보면 대다수 기관이 연내 1만 선 안착을 내다보고 있다.


KB증권이 1만500선을 제시한데 이어 NH투자증권은 1만1000선, 대신증권과 메리츠증권은 1만1500선까지 눈높이를 높였다. 현대차증권은 최고 1만2000선을, 삼성증권은 1만2600을 제시하며 가장 공격적인 분석을 내놨다.

조창민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코스피의 연말 이익 추정치 기준 PER 10배 수준의 밸류에이션 평균 회귀만으로도 1만 선 도달이 가능하다”며 “이익의 추가 성장과 밸류에이션 정상화가 결합하면 이론적으로 1만2000선도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영업이익은 지난 5월 1000조원을 돌파하며 역대급 실적 체력을 증명하고 있다. 연초 대비 2026년(+113%), 2027년(+142%) 연간 이익 전망치 역시 수직 상승 중이다.

변수는 전체 이익의 77.5%(약 782조원)를 차지하는 반도체 쏠림 현상이다. 조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사이클이 돌아서는 시점이 강세장의 수명을 결정할 것”이라면서도 “현재 이익 전망치 상향이 지속되고 있고 단기 약화 시그널도 없어 현시점에서 펀더멘털이 꺾일 우려는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은택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의 급락을 추세 전환이 아닌 강세장 속 과열 해소 국면으로 진단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추가적인 이격 조정 가능성은 열어두어야 하지만 이를 랠리 붕괴의 시작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붕괴 시그널의 핵심인 금리를 짚었다. “과거 사례를 보면 ‘금리의 추세적 상승’ 없이 버블이 붕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현재 금리 수준이 시장 붕괴를 만들어낼 정도의 결정적 수준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IB인 모건스탠리 또한 최근 한국 증시의 급락을 “추세적 하락이라기보다 일시적 숨 고르기”라고 평가하며 코스피 목표치로 9000선을, 강세장 시나리오에서는 최고 1만500선을 제시했다. 골드만삭스의 전망치는 이보다 높은 1만2000, JP모건은 1만5000이다. JP모건은 “한국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시장”이라며 “조정 시마다 비중을 추가로 확대하고, 최대 수준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고 강조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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