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감’이 불러온 한국축구의 몰락

황민국 기자 2026. 6. 29.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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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성적 자신하다 최악 성적표 받아든 홍명보호
무난한 조편성·고지대 적응 밑밥 깔고도
뻔한 스리백 고집에 낭패 본 감독의 오판
힘 못쓴 황금세대에 설영우 처신도 도마
감독 선임 흠결 밀어붙인 안이한 축구협
총체적 난국에 문체부도 대안 마련 나서

이번엔 다를 줄 알았다. 12년 전 브라질의 실패를 바탕으로 성공을 다짐했던 홍명보호는 북중미에서도 침몰했다. 역대 최고의 성적을 꿈꿨지만, 현실은 최악의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홍명보 감독 뿐만 아니라 선수와 협회까지 모두 엇박자를 냈기에 나온 결과물이다.

■감독의 오판…뻔한 축구는 모두가 안다

2024년 7월 출범한 홍명보호 2기는 이번 대회 순항을 의심받지 않았다.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이번 대회에서 하늘이 도왔다는 표현처럼 유리한 구도가 짜여졌다. 개최국보다 짧은 이동 거리(637㎞)와 무난한 조 편성(멕시코·체코·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감안할 때 조별리그 1~2차전을 치르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고지대(해발 1천571m)만 극복한다면 32강 진출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한국은 체코와 첫 경기에서 2-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신바람을 냈다. 홍 감독이 개최국 멕시코와 맞대결을 앞두고 “2002년의 4강 기록을 넘기를 바란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을 정도다.

문제는 홍 감독이 고집한 전술이었다.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에서 처음 꺼낸 스리백은 현대 축구에서 충분히 검증된 전술이다.

손흥민이 지난 25일 멕시코 과달루페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월드컵 A조 남아공전에서 0-1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홍 감독은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강호들과 맞설 플랜 A로 스리백을 갈고 닦았는데, 수비 안정성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예측할 수 있는 뻔한 그림이 됐다.

후방의 숫자만 늘렸을 뿐 위험을 감수하는 과감한 공격 시도가 없다보니 상대 역시 공간만 내주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멕시코전에서 뒷공간을 노리는 구상은 상대의 촘촘한 수비에 힘을 못 썼고, 예상하지 못한 실수에 통한의 0-1 패배를 당했다.

이미 답안지가 드러난 전술을 남아프리카공화국전(0-1 패)에서도 반복한 대가는 더욱 뼈아팠다. 0-1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후방에서 공을 돌리는 무기력한 축구는 팬들의 실망만 불렀다. 홍 감독은 “갑작스러운 부진의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며 말했지만, 손흥민(LAFC)을 선발에서 제외한 강수가 가뜩이나 뻔한 전술의 힘을 뺐다는 평가다. 홍 감독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 사석에서 스리백과 포백의 자유로운 활용을 자신했던 터라 의아할 따름이다.

■이름값만 빛난 황금 세대, 과연 최선을 다했나

북중미 월드컵의 처참한 실패는 화려한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속이 쓰리다. 이번 대회를 위해 메이저리그사커(MLS)로 활동 무대를 옮긴 손흥민을 비롯해 이강인(파리생제르맹)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해외파들의 존재감은 ‘황금 세대’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런데 그 황금 세대가 굵직한 대회에서 힘을 못 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아시안컵에선 대회 기간 손흥민과 이강인이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고, 이번 월드컵은 손흥민의 활약상이 아닌 출전 시간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큰 형님’처럼 선수들을 감쌌던 홍 감독이 이번 대회에선 작은 실수 하나 용납하지 않은 것도 선수들을 휘어잡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과정에서 뜻밖에 상처를 입은 선수도 있었다. 국내 문화에 친숙하지 않은 독일 분데스리거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가 선수단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1~2차전 기용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다행히 카스트로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전에서 월드컵 데뷔의 꿈을 이뤘으나 대표팀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게 만들었다.

자신을 둘러싼 거센 비판에 강경 대응을 선언한 설영우(즈베즈다)의 처신도 도마에 오른 것은 마찬가지다. 선수 개인으로선 과도한 비난과 인신 공격 등에 마음이 쓰일 수도 있었지만, 월드컵에 전념할 시기 팬들과 싸운다는 인식을 남겼다.

■수장 물러난 협회의 안이한 인식, 앞으로 미래는?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월드컵으로 직격탄을 제대로 맞았다. 절차적 흠결에도 홍 감독에게 다시 지휘봉을 맡기는 안이한 인식과 월드컵 실패가 맞물리면서 한국 축구의 미래 자체가 흔들리게 됐다.

당장 내년 1월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홍 감독이 이 대회까지 맡기로 했지만, 이번 월드컵 여파로 거취를 고민할 가능성이 높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월드컵 직후 물러나기로 약속한 상황에서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총체국 난국에 빠진 한국 축구는 이제 수술대에 오르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대안 마련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박지성은 “우리는 이미 몇 년 전 결과를 예상할수 있었을지 모른다. 왜 이런 상황을 맞이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하는 게 조금 비참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과달라하라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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